며느리들이 가장 분노하는 포인트는 바로 친정이 공격받았을 때 아닐까요? 가장 흔한 예로는 '사돈'이라는 호칭 대신 '너네 엄마'라는 표현에 많은 며느리들이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보통 며느리들은 이미 시부모에게 시달려 너덜너덜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나 하나 이렇게 지친 것도 모자라 우리 엄마를 지칭하는 표현이 너네 엄마라니! 사돈이라는 관계는 참 가깝고도 먼, 어려운 관계인데 말이에요. 시대가 변했음에도 친정엄마는 여전히 '딸 가진 죄인'이라고 혹여라도 내 딸이 흠 잡힐까 염려되어 늘 저자세로 시어머니를 대합니다. 딸 입장에서 안 그래도 괜히 엄마에게 더 미안해지고 속상해지는 상황에서 시어머니에게 '너네 엄마'라는 단어까지 듣고 나면 이제 며느리는 말 그대로 '시'자에 학을 떼고야 마는 거죠.
대부분 상견례 자리에서 이런 류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시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저의 엄마에게 "저는 이제 아들 결혼시키면 홀가분할 일만 남았는데, 사돈은 이제부터 애들 뒷바라지 시작이시네요."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바로 저의 엄마는 "네 그러게요, 저희 딸이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제가 더 잘 챙겨야죠, 모쪼록 잘 부탁드려요."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남편보다 학벌, 직업, 집안, 외모, 성격, 뭐가 그리도 부족한지 아직도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어쨌든 그날 이미 친정부모님은 한없이 낮추고 숙이고 계셨고, 시부모님은 당연한 듯 우위를 선점하고 서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보통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런 문제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대부분 독박 육아가 힘든 딸을 도와주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친정엄마의 일이고, 그저 아이를 '보기 위해' 혹은 아이를 '보여 드리러' 만나는 건 시부모님이잖아요. 이럴 때 시어머니들의 변명은 동일합니다. "네가 나보다 친정엄마가 편하잖아." 네, 맞습니다. 시어머니보다 친정엄마가 편해요. 그래서 여행도 쇼핑도 시어머니보다는 친정엄마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시월드에서는 그런 즐거운 일은 시어머니와 함께 하기를 원하고, 아이를 돌보거나 경제적 지원 등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은 친정으로 슬쩍 떠넘깁니다. 정말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워킹맘들 사이에서는 이런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나고는 하죠. 갑작스러운 일로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을 때 발을 동동거리며 양가 부모님에게 연락하면, 시어머니는 다른 일정이 있다고 거절하시지만, 친정엄마는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만사 제쳐두고 달려옵니다. 바로 내 딸을 위해서. 그래서 딸들은 결혼하면 친정엄마와 더 애틋해지나 봅니다.
하지만 가끔 이 시기에 그동안은 정말 별로라고 싫어했던 시어머니지만 출산, 육아를 거치며 오히려 "그래도 정말 나를 생각해주시네." 혹은 "힘드실 텐데 정말 많이 도와주시네."라는 감정을 느끼며 같은 여자로서 가장 고생하는 시기를 함께 넘기니 전우애 같은 감정이 생겨 오히려 사이가 조금은 좋아지는 경우도 있긴 있더라고요. 그러나 반대로 "그래도 우리 시어머니는 좋은 분이야." 라며 큰 불만 없이 지내던 며느리도 손주만을 위하고 우선시하는 시어머니를 겪으며 '역시 이곳에서는 나 혼자 이방인이구나' , '역시 시는 시구나'를 느끼며 보통의 흔한 며느리가 되고 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그 사이에 있는 나. 늘 크고 작은 비교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럴 때마다 한결같은 결과에 도달합니다. 아, 역시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는 다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