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과 며느리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어쩌면 가장 곤란한 사람은 아들이자 남편일지도 모릅니다. 고부갈등은 마치 아들을 뺏기지 않으려는 시어머니와 남편을 가지려는 아내의 팽팽한 줄다리기 시합 같아요. 남편은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으니 중립을 선언하고 한 발 물러서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섣불리 개입하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뿐이지만, 무조건 피하는 것 또한 능사는 아닙니다. 일단 대부분의 남자들은 고부갈등이 있을 때, 배우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부모님에게 아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자체가 부모님에게 맞서는 것이고 불효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다짜고짜 공격적으로 부모님에게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인다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하지만 많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원하는 것은 그런 과격한 행동이 아닙니다. 차분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통한 조율과 중재를 바라는 것이죠.
간혹 아내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럴 리가 없다며 놀라거나 믿지 않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아내는 남편이 시어머니만 생각하고 나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끼겠죠. 아들인 나에게는 한없이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일지라도 며느리에게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남편들이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남편들에게 당신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고 인정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주어진 역할, 자리, 입장에 따라 누구나 생각이나 행동이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 똑같은 말 한마디일지라도 자식인 내가 부모님에게 얘기했을 때 어머니라는 위치에서 받아들이는 것과 며느리가 얘기했을 때 시어머니라는 자리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어머니가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드나요? 어머니에게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남편 한 사람뿐입니다.
그렇다면 남편이 아내에게 남의 편이 아닌 '내편'이라는 말을 들으려면 중간 역할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부모님께서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는 일은 내 탓으로 돌리고,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아내 덕으로 돌려보세요. 내가 부족한 건 내 부모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지만 며느리가 부족한 것은 시부모 입장에서 마냥 이해하고 품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일은 아내가 생각하고 시작한 것으로, 부모님이 서운해하실 만한 일은 나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실수로 만들어 보세요. 남편들의 가장 흔한 실수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잡을 때입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 의견을 듣고 아내를 배려하겠다는 생각으로 "아내에게 물어보고 전화할게요, "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어떠한 사정이나 이유로 거절한다면? 시부모에게는 결국 며느리가 만남을 거부하고 거절한 것이 됩니다. 그러니 차라리 처음부터 "회사 일정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이 정도의 답변이 적절합니다. 그러면 아내에게 다른 사정이 있어서 거절을 할 때도 부모님에게는 회사 일정 때문에 곤란하다고 얘기할 수 있잖아요. 선의의 거짓말은 이런 것입니다. 모두가 기분 상하고 불편한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중간에 끼인 자'의 역할이고 센스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평소 시어머니의 언행이 불편했던 며느리가 참고 참다가 어느 날 이 문제를 터트렸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편을 들겠다며 '어머니가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아내가 기분 나빠하고 자꾸 스트레스받잖아요" 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시부모님은 절대 시어머니의 잘못은 없다며 애초에 그런 일은 없었다거나 다른 의도로 한 말인데 며느리가 이상하게 잘못 받아들이는 거라며 이 분란의 모든 원인을 며느리로 지목하시니 갈등의 골은 더 깊어만지고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남편의 심리에는 아내의 편을 들어주고는 싶지만 내가 내 부모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는 싫은 이중적인 마음이 깔려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은 쏙 빠지고 아내를 앞세워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다른 남편은 이렇게 대처 합니다. "어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좀 과하신 것 같아요.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것보다 아내는 저와의 결혼생활을 훨씬 더 잘 해내고 있고 저도 다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는데 어머니가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아내 보기 민망하고 곤란해요. 심지어 저는 어머니 그 말씀이 이러저러하게까지 들리고 생각되어 진짜 아닌 것 같으니 앞으로는 제 입장 생각해서라도 조금 조심해주세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전자의 경우 시부모는 본인들의 행동을 뒤돌아보기는커녕 며느리가 괘씸하고 화가 나며 착한 내 아들이 며느리한테 넘어가서 며느리 편만 든다고 억울하고 서럽다며 난리가 납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시어머니는 일단 며느리가 얄밉고 아들에게 서운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로 인해 내 아들이 불편하구나, 곤란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해요. 물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시부모님도 몇십년간 살아오면서 굳어진 사고방식이나 말투, 언행이 금세 바뀔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중한 내 아들을 위해서, 내 아들이 나 때문에 기가 죽거나 난처해질까 봐 며느리를 대할 때 의식적으로라도 한번 더 생각하고 조심하게 되는 거죠.
남편의 중립은 중립이 아닙니다. 남편이 양쪽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아내의 편을 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남편분들, 잊지 마세요! 당신의 메인 역할은 더 이상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당신의 형제들로 구성된 가족의 구성원이 아닙니다. 결혼과 동시에 당신과 당신의 아내가 새로운 가족이 되는 것이고, 두 사람 새로 만든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