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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Jun 17. 2021

보내는 마음

늙은 노모는 자식들이 이제 간다는 인사말에 힘없는 몸을 일으킨다. 어릴 적 개구쟁이였던 손주는 군대에서 모은 돈으로 할머니 용돈을 드린다. 그 돈을 받은 노모는 서럽게 울어댄다.

자식들은 이제 차를 타고 내려온 먼 길을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이다. 닫힌 방문을 열어 달라던 노모는 자식들이 차에 올라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표정 없던 얼굴이 애잔한 얼굴로 가득하다.

먼 길을 내려온 것이 고맙고 아직까지 살아있어 자식들 고생시키는 것이 미안하고, 자식들이 모두 안전하게 돌아가기를 기원한다.  이제 오랫동안 다시 못 볼 것을 생각하니 살아생전 다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늙은 노모의 시선은 자식들의 차가 모퉁이를 돌아 큰길로 빠져나갈 때까지 멈추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잠을 청했다.



시골집에 자주 내려오는 오라버니는  맛있는 것을 해놓았는지 물어보고 음식을 안 해놓으면 타박을 한다. 나에게 엄마가 지내던 시절을 기대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음식을 하기 싫어하고 손님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것도 젬병이다.

엄마를 만나러 시골집에 내려올 때마다 엄마의 손맛이 그립다. 아쉽게도 늙은 노모는 이제 음식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행히 삼겹살과 쌈장만 사 오면 텃밭에 오이와 상추가 자라니 손님 접대를 대충 끝낼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시골집에 필요한 일들을 해결하고 나면 돌아갈 곳으로 휙 하니 떠나 버린다.


시골집에서 지내다 보니 나도 이제 떠나는 사람에서 보내는 사람이 되었다. 언제나 손님으로 찾아왔다가 손님을 대접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시골에 잠시 들렀다가 다시 돌아가는 가족들을 보며 먼 길을 내려와 주어서 고맙기만 하다. 맛있는 것을 사 들고 내려와 주니 더 고맙다. 시골집의 필요를 채워주고 가니 또 감사하다.



엄마가 자신의 집을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사람들로 찾아오는 이들로 온기가 돌아온다. 그러나 막상 손님들이  떠나고 나면 조용한 시골에 병들고 늙은 노모와 단둘이 덩그러니 남는다.

남도의 끝 섬마을 너무 멀고 멀어서 식구들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떠나고 나면 다시 내려와 주시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발견한다.

마지막은  떠나는 이들이 남겨둔 흔적을 정리한다. 시골집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늘 한두 가지는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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