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약산진달래 Jul 25. 2021

마당으로 나온 닭

새벽 다섯 시, 되면 자명종처럼 울리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가 지난번 들었던 소리보다 더 크고 우렁찬 목소리이다. 한 번으로 그치면 좋으련만 30초 간격으로 계속 울어댄다. 그것도 한 시간 이상을 쉬지도 않고 말이다. 아침에 우는 녀석은 언제나 수탉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암탉에게 맘껏 뽐내는 것인지 도대체 아침에 그렇게 오랫동안 울 수 있는 것인지 성대가 대단하다.   

닭이 새벽에 우는 이유는 닭의 눈이  빛에 민감해서 라고 한다. 어두움 속에 있다가  빛이 밝아오는 것을 느끼고 닭 울음소리를 낸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오겠지만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한 시간 이상을 끝없이 울어대는 녀석의 모가지를 정말 비틀고 싶어 몸부림치는 새벽이다. 새벽 내내 울어대는 녀석을 당장 잡아 닭 모가지를 비툴 줄만 안다면 날도 더운 복날 닭볶음탕을 해 먹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닭울음소리를 듣고 난 후 밖으로 나가보니 새벽부터 여름날의 시골 어르신들의 일손을 바쁘기 그지없다. 해가 일찍 뜨는 이유도 있지만 한낮의 더위를 피해서 새벽 일찍부터 서둘러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시골집으로 이사를 온 이후 닭장으로 만든 창고 안에만 지내는 닭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닭에게 눈독을 두고 있는 도둑고양이들이 판치는 곳에서 함부로 닭을 마당에 내놓고 기를 수는 없었다.  


이제 완전한 성인 닭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밖으로 내보낼 생각을 해보았다. 닭장 안으로 들어가 문밖으로 몰아내 보았지만 닭장 안에서만 지내던 닭들은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구석으로 숨거나 높은 곳으로 달아나려고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다. 분명히 청계 닭은  시조새의 후손일 것이다. 날갯짓이 장난이 아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인지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분간이 안 되는 것이지 암탉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내 손에 잡히고 말았다. 암탉을 잡아 문밖으로 내려놓았다. 그 후 수탉도 나의 몰이를 피해 문밖으로 날아올랐다. 닭들이 답답하고 어두운 닭 장안에만 지내다 처음 밝은 세상 밖으로 나온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처음 만나는 밝은 세상에 어리둥절하던 두 마리 닭들은 처음에는 먹이를 쪼아 대다가 빛이 강해서인지 좁은 음지로 들어갔다. 그 후 그곳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더 멀리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곳이 자신들이 지금껏 지내던 닭장과 가장 비슷한 공간이라고 생각한지도 모른다.   


오후가 되어 다시 닭장으로 닭을 집어넣기 위한 닭몰이를 시작했다.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날아다니는 닭들을 몰아 닭장 안으로 들여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닭몰이를 하다가 이번에는 수탉이 지붕과 연결되는 담벼락으로 날아 올라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얌전한 암탉을 간신히 잡아 닭장에 집어넣었다. 


어린 시절 닭 그림을 보면 언제나 지붕 위에 올라가 모가지를 하늘로 올려 대고 닭 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붕 위에 올라간 닭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왜 닭을 그렇게 그려 놓았는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담벼락 위에 올라가 있는  수탉의 모습을 본 순간 그 그림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수탉의 위엄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동안 수탉은 높은 담장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잠시 높은 곳에서 탁 트인 세상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는지 그대로 멈춰버린 듯했다. 그러나 눈이 잘 보이지 않은 것 같은 닭 눈에 보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사이 암탉은 혼자서 닭장 안으로 들어가 불안한 울음소리를 계속 내고 있었다.  수탉은 그 소리를 들었는지 높은 곳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금껏 멋진 모습을 보여주던 것과는 반대로 수탉은 들어가는 입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을 했다. 간신히 암탉의 작은  목소리를 듣고 닭장 안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 들어갔다. 다시 닭장의 평화가 찾아왔다. 


닭몰이를 하면서 문쪽으로 닭을 몰아 대는데 자꾸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활짝 열린 닭장 문을 바로 앞에 두고도 눈을 껌벅이며 다른 곳으로 피신하기 바쁜 닭들의 모습을 보며 닭대가리라는 별명이 왜 생겼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닭대가리는 내가 더 자고 싶은지와는 상관없이 시끄럽게 울어댈 것이 분명하다. 혹시 새벽에 비라도 내린다면 모르겠다. 


"제발 나의 새벽 단잠을 깨우지 말아 다오^^"


이전 05화 새벽에 닭이 우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