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를 따야만 한다. 이번 주에 고추를 따지 않으면 다음 주에 시골을 내려온다는 보장도 없다. 고추나무에서 고추가 말라버릴 수도 있다. 비가 올 듯 하지만 날이 선선하여 고추를 따러 나갔다. 시골 어르신들의 고추밭에 비하면 풀밭이나 마찬가지이다. 시골 어르신들의 고추밭에는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런데 우리 고추밭은 빨간 고추를 따려면 풀을 헤치며 숨바꼭질 하듯 고추를 따야만 했다. 그렇지만 붉게 익은 고추가 탐스럽게 여물어 있었다. 고추 따는 아낙네가 되어 고추를 땄다. 그저 심어놓기만 한 고추가 이렇게 잘 되었다면 시골 어르신들 밭의 고추는 더 풍년일 것이다.
고추를 바구니에 담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추를 보니 파란 고추며 아직 붉게 익지 않은 고추까지 따왔다.
여름휴가철이면 엄마의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던 생각이 난다. 고추 따는 엄마를 도우러 밭에 나갔다. 늘 고춧대를 꺾으며 고추를 따던 나를 향해 엄마는 "아야 고춧대 다 부러진다 너는 고추 그만 따라"라고 했다. 그럴 때면 고추 따기가 싫었던 나는 절시구나 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새벽부터 시작해 오전 시간을 고추밭에서 고추를 땄다.
"이제 고추농사 그만해야지" 하던 엄마는 허리가 망가지도록 고추농사를 짓다가 허리 수술을 하고도 고추를 땄다.
자식들은 엄마가 고추농사를 짓지 못하게 된 3년 동안 지금껏 엄마가 남겨준 고춧가루로 반찬을 해 먹었다. 망해도 3년 먹을 것은 있다는 말처럼 엄마가 아픈 후 3년 동안 엄마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음식 솜씨를 남겨준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엄마의 손맛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엄마의 손맛에서 스스로 자립을 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고추농사는 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추를 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매일매일 붉은 고추는 익어가고 매일매일 고추를 따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고추를 씻어서 태양에 바짝 한번 말려준다. 그리고 하루 동안 태양에 마른 고추는 골고루 몸을 말려줄 고추 건조기 안으로 들어가 이틀 이상은 말리게 된다.
고추 건조기 안에서 세상에 나온 바짝 마른 고추는 다시 깨끗이 몸을 닦고 상품으로 단장을 한다. 그대로 봉지에 담겨 시장으로 나가거나 꼭지를 따고 고춧가루로 만들어져 김치를 담글 준비가 된다.
두 주 전 어두움과 적막함 고요함만 흐르는 밤이었다.
"에 마리요 누구 없소?"
이 시간에 찾아올 리 없는 시골집에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나갔다. 어둠 속에서 현관 유리문에 얼굴을 대고 집안의 동태를 살피는 할머니 한분이 서계셨다. 그모습으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처럼 보여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누구세요"
"고추 잔 따주시오"
"네? 저 고추 안 따는대요. 그리고 고추 딸 줄도 몰라요"
"그러지 말고 고추 잔 따주시오"
고추를 딸 줄도 모르는 나에게 고추를 따달라고 막무가내이신 할머니셨다. 누구시냐고 물어보니 이름을 밝히셨지만 내가 들어본 동네 어른의 이름은 아니었다. 아마 저 아랫마을에서부터 고추 따는 사람을 사려고 윗마을까지 올라오신 거였다. 내가 할 수 없다고 하자 윗집 90세의 할머니 집으로 올라가셨다. 한동안 어두움이 내려앉은 집 앞에서 실랑이를 하신 듯하더니 집으로 내려가지 않으시고 머뭇거리며 우리 집 앞을 떠나지 않고 계셨다.
시골의 여름은 붉은 고추와의 전쟁이다. 늙은 어르신들은 여전히 고추농사를 포기하지 못하고 자식들은 올해는 그만하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시골에서 보내온 고춧가루를 거절하지 못한다.
고추를 따는 것도 노인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사람을 사서 하거나 품앗이를 해야 하지만 이제는 품앗이할 사람도 없어서인지 섬마을까지 외국인들이 들어와 고추를 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올해 여름도 홀로 시골집을 지키시는 어르신들은 외롭게 고추를 따고 무거운 고추를 끌고 집으로 홀로 들어간다. 그리고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고추를 열심히 고르고 햇빛에 말리고 있다. 해 질 녘 불타오르는 붉은 노을처럼 붉은 고추가 한여름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 외로운 시골 노인들의 여름이 고추농사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