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정리하다
긴 여름의 끝을 이제 마무리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텃밭을 정리하고 가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날의 텃밭은 얼마나 황홀한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못할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고나서 부터 한 계절을 꼬박 채워 시골에서 지내본 적이 없다. 2박 3일, 길어야 일주일이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풀을 베기 위해 낫질했던 기억이 살아났다. 밭을 메기 위해 호미질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름날의 텃밭이 얼마나 풍요로운 가는 잊고 있었다. 올해 여름날의 텃밭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저 고추 밭에서 붉은 고추를 따는 것만 기억나는 여름이었을 것이다.
봄날은 씨앗을 뿌리는 시기이다. 텃밭에 나가 싹이 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생명의 신비로움을 발견하다. 학교에서 배우던 여름은 식물이 자라는 시기였다. 그러나 여름날의 텃밭은 결실의 색들로 칠해지는 풍요의 시간이다. 푸릇하게 피어나고 빨주노초파남보로 익어가는 열매들을 만난다.
여름날의 텃밭은 뜨거운 삶의 현장이다. 태양과 함께 함께 불태우듯 자라나고, 열정적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어느덧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날 때가 되었다.
초록빛 상추도, 수분을 머금은 오이도, 오동통통 호박도 그렇다. 초록옷을 입고 빨간 속살을 가진 수박도, 수염을 기른 옥수수도, 깊게 파인 줄을 가진 노란 참외도 그렇다. 끝없이 열리는 보랏빛 가지, 방울방울 붉은 방울토마토 형제들, 주렁주렁 열린 통통한 토마토도 그렇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께 붉은 저녁노을처럼 불타오르는 고추는 어떠한가?
한여름을 도시에서 시골로 나를 끊임없이 달려오게 만든 것도 텃밭의 열매들의 부름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바람과 비와 태양 속에서 자연의 숨을 받으며 온몸에 영양소를 듬뿍 담은 텃밭의 열매들과 이제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뜨거웠던 청춘 같은 여름이 가고 있다.
이제 가을의 주인공이 텃밭으로 이사 올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텃밭의 풀을 뽑고 말라버진 오이와 호박 그리고 상추 대를 뽑아냈다. 아직 토마토와 가지가 남아있지만 먼저 여름 열매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뿌리를 뽑히고 가지에서 꺾여버린 노랗게 익은 호박이 여름 끝인사를 하는 날이다.
안녕! 불태웠던 나의 여름날이여, 논시밭의 열매들이여,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