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것을 느끼지 못하고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걷는 길에 밝은 빛이 환하게 비취었다. 가로등 불빛이 켜지는 시간이었나 보다. 깨닫지 못했던 주변 환경을 감지하며 밝은 빛에 잠시 눈이 부셨지지만 다시 갈길을 재촉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다 해가 떴다 날씨가 변덕쟁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지만 한낮은 여전히 찜통이었다. 그 텁텁한 기운을 걷어내 주던 것은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도시에 밤이 내려앉은 시간 잠시 밖으로 나가 공기를 쐬고 싶어 진다. 집 밖으로 혼자 산책을 나섰다.
비가 내릴락 말락 하다.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제발 나의 짧은 산책시간에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빠른 걸음으로 익숙한 길을 걸어 나갔다. 산책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앞으로 걸어가는 한 사람이 보였다. 한두 방울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산을 쓰고 걷고 있었다. 신호등 앞이다. 이 신호등을 건너면 좀 더 자유로운 걸음으로 경쾌하게 팔을 휘저으며 걸어보리라. 그런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걸음을 잽싸게 돌려 나무 아래 길로 돌아섰다. 다시 집으로 향한다.
어둠이 차고 있는 비 내리는 산책로에는 나뭇잎이 젖어 맥이 없다. 그 모습이 이미 가을비에 젖은 낙엽 같다. 시간의 흐름은 서서히 찬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어두움이 내려앉은 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길을 나는 혼자 걷고 있다.
갑자기 가로등 불빛이 비춰을 뿐인데 어두움에서 밝은 산책로가 되었다. 감각을 의지해 걸어가야 하는 길을 불빛의 인도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맨발로 걷는 여자도 우산을 쓰고 걷고 있다. 내리는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 있다면 산책을 더 할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빗속에서도 우산을 쓰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까지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분들이 보인다. 정겨워 보이는 동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