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기온은 내려갔지만 아침 기온은 아직 더운 날 산책

by 약산진달래

산책을 나가기 전 우유라도 한잔 마시고 나가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가 놓여있는 바닥이 홍건 했다. 냉장고 문을 잘 닫지 않은 것이다. 어젯밤 내내 냉장고에 불이 들어와 있더니 냉장고 문이 닫히지 않았다고 알려주는 사인인 것을 알지 못했다. 역시 살림은 내 체질이 아니다. 아쉬운 대로 냉기가 빠져버린 우유 한잔을 마시고 엄마를 깨워 요플레를 드렸다. 어제 사놓은 것인데 상하기 전에 빨리 해치워야 할 판이다.


아파트 입구를 나서는데 매미소리가 짧게 내 귀에 찢어지게 들려왔다. 고독한 매미의 마지막 절규처럼 느껴진다. 어제 내내 아파트 창문 창살에 달라붙어 울어 재끼던 그 매미 일지도 모르겠다. 오전에는 죽은 매미처럼 달라붙어있다가 오후에는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려오던 매미 울음소리는 처절했다. 그토록 목청껏 울어대던 매미는 우리 집에서 자신의 구애를 받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어느 한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공원 입구로 들어서니 들어보았던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줄넘기 줄이 탁탁 시멘트 바닥을 때리는 일정한 소리였다. 그 소리에 맞추어 심장도 강력하게 펌프질을 할 것이다. '줄넘기를 하는 여자의 심장은 얼마나 튼튼할까? 드러난 종아리가 탄탄한 것을 보니 심장도 무지 튼튼하리라' 부럽기만 하다. 한 달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줄넘기를 하고 있는 낯선 여인에게 존경심이 우러났다.


어젯밤 창문을 열지 않고 처음 잠을 잤다. 입추의 기온이 밤에 영향력을 준 것인지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도시의 열기가 식어버린 것인지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집안에서는 지낼만했다. 어쩌면 이대로 지구의 온도는 낮아질 수 있겠다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한낮의 도시는 여전히 무더울 것을 암시하듯 태양이 내리쬐는 길을 따라 걸으면 땀이 나기 시작한다.


앞서가는 어린 강아지가 걷기가 싫은지 주인을 따라가지 않다가 주인이 앞서가니 그제야 쫄랑쫄랑 따라가기 시작한다. 어린 강아지의 눈망울이 선하다. 도시의 산책은 사람의 전체 얼굴을 보기 어렵지만 강아지의 얼굴만이라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비둘기 한쌍이 다정도 하다. 비둘기들이 쌍쌍으로 다니는 것을 보았다. 한 마리가 앞서면 안마리가 쫓아간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여전히 같은 공간 안에 머무는 녀석들이다. 먹을 것이 많은지 공원 안에 비둘기 떼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런데 모두 혼자가 아니라 쌍쌍이라는 것이다. 매미처럼 비둘기도 구애의 시절을 맞이한 것일까?


적당한 듯하지만 부족한듯한 아침 공원 산책은 3000보이다. 나의 심장을 튼튼하게 해 줄 만큼의 걷기는 아니었지만 종아리에는 약간의 탄력을 부여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미뤄두고 미뤄두었던 냉장고 청소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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