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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Sep 05. 2024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병원에 자주 다니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잠시 머물다간 사람들은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장기입원환자들은 계속 보는 얼굴이기 때문에 어느 시기가 되면 자연히 얼굴이 익숙해지게 되고 보호자들과는 안면을 트고 지내게 된다.

엄마가 운동치료를 하는 시간에  매트 바로 앞자리에 아저씨가 운동치료를 하러 보호자와 함께 내려오신다.  아저씨는 말을 못 하시고, 소변줄을 차고 다니신다. 보호자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치료실에 들어오지만 특별히 운동을 하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장기입원치료를 받으며 운동치료를 하는 환자들은 개인보험이 아니라 회사에서 들어놓은 보험으로 치료를 받으시는 분들이다. 아저씨의 보호자인 부인과는 언니 동생으로 부르고 있는 중이다.  엄마의 치료를 기다리며 내가 언니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얼마나 되셨어요"

"올해로 8년 차"

웃는 얼굴로 언니가 대답했다. 편안한 얼굴이다.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일하다가 떨어져서.."

"그렇군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전두엽과 소뇌가 다쳐서..ㅠㅠ"

환자가 입원을 하면 의사들은 환자의  뇌 사진을 보여주며 어느 부위에 손상을 입었는지 알려준다. 사실 집중해서 듣기는 하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츰 의사가 엑스레이를 보여 알려준 뇌의 상태와 그 부위가 우리 몸의 어떤 기관을 담당하게 되는지 계속 듣다 보면 차츰차츰 알게 된다. 전두엽과 소뇌가 담당하는 우리 몸의 기관이 어디인지. 그리고 전두엽과 소뇌가 손상을 입으면 어떻게 변하는지

"인지능력이 없고, 운동도 하기 싫어하고, 신경질도 많이 부리고, 아주 몹쓸 병이야^^"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웃었다.

"하하 하하 "

"하하 하하"

언니도 따라 웃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언니는 웃으면 한마디 덧붙였다.

아저씨가 어떻게 병실에서 생활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운동치료실에 올 때면 아저씨는 운동 매트에 누울 때 꼭 베개를 3개 올려놓아야만 하고, 운동을 하기 싫다고 몸을 뻣뻣하게 만들어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내가 인사를 할 때면  아는 체를 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현실에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치료실의 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니 그 얼굴이 내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디딘 자리만 바라보며 한발 한발 나아가 보자. 그렇게 평생 물질을 한 해녀들처럼 그렇게 80 90 평생을  살아가 보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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