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노인들에게 고통스러운 것 질병, 고독, 빈곤도 있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무위이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젊어서 나 나이 들어서 나 똑같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올해 나이 89세 엄마의 하루 일과는 무위의 일과이다. 자고 먹고, 싸고 단 세 가지로 이루어지는 일상을 살아간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는다. 눈이 아프다는 이유다. 좋아하던 자연인이다도 어느 날부터는 보지 않게 되었다. 6시 내 고향도 빠지지 않고 보던 열혈팬이었는데 그마저도 이젠 싫다신다. 덕분에 오랜 시간 엄마의 동반자였던 텔레비전도 이제 휴면 중이다.
이 무료한 일상 중 일탈이라면 운동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는 날 뿐이다. 희미한 정신 속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잠시 문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면 자신의 겉옷을 챙기고, 마스크를 찾는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도 몸뻬 바지를 입어야 한다. 집 밖으로 나가는 시간만큼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그러나 그 시간도 잠시,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고, 쉽게 지쳐버린다. 잠시 외출이라도 할 때면 나갔다가 바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버린다.
친구 하나 없는 고독한 하루가 무위 하게 지나가던 어느 날 오디오 북에 전래동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하는 전래동화를 종 종 보기도 했는데 그것도 눈이 아프다는 이유로 듣지 않았다. 그런데 오디오북은 듣기만 하면 된다. 주의 집중이 짧은 엄마에게 유아 동화 중 흥부놀부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재미있어하셨다. 듣고, 또 틀어다라고 셨다. 그 뒤부터 전래동화 매일 듣고 있다.
콩쥐팥쥐, 심청전, 춘향전, 홍길동전, 박씨전, 무서운 옛날이야기,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전래동화라면 빼놓지 않고, 모두 들었다. 나에게 익숙한 전래동화도 엄마는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시리즈도 모두 들었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시리즈도 발견했다. 이모나, 할머니 이야기는 아이들의 감성에 맞게 재탄생한 동화라면 이야기꾼 할아버지의 것은 날것 그대로이다. 아이들 잠자리 동화라는 타이틀로 100편의 이야기가 있는데 아이들이 많이 들었을까? 그런데 이게 할머니에게는 딱 맞는 스토리였는지 엄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매일 찾기 시작했다.
고독하고 무 위한 엄마의 하루에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 친구가 생겼다. 병들고 고독한 89세 할머니의 첫 남자친구다. 이야기 친구 덕분에 엄마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무위한 삶에서 벗어났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할아버지 친구를 찾는다. 친구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는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을 잘 지언정 이야기 친구와 항상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