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나왔다가 옆 마을 어르신이 힘겹게 다리 위를 건너오는 것을 보았다. 허리가 다 구부러진 채 보행기를 밀고 아랫집 고롱 나무 아래로 향하고 계셨다. 오랫동안 빈집이었던 아랫집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후 종종 어르신들이 찾아오시나 보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그 옛날 고롱 나무 아래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이는 정자나무였다. 한여름의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삼삼오오 모여 들던 나무 아래. 언제나 북적이던 어른들로 아이들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모처럼 엄마를 모시고 내려갔다. 9월말인데도 사그라들지 모르는 따사로운 햇살도 가을바람과 어우러지니 상쾌하기만 했다.
"엄마랑 같이 왔냐?
"네......"
"아이고 핸식이네야."
"......"
"느그엄마는 들리냐? 말은 하냐? "
"......"
"너는 효녀여야 너 같은 효녀가 없다. 내가 다 알재 한두 해도 아니고 벌써 몇낸이냐?"
"......"
"나도 광주 가서 병원에서 돈 400만 원 쓰고 왔다. 귀는 150만 원짜리"
"......"
"느그엄마는 수천만 원 썼겠지 맻년이냐! "
"......"
"느그 엄마 같은 사람이 없었는데 "
"......"
"샘옆에 노인정 있을 때 뭐 떨어지면 바로 가져오고, 그때가 좋았재"
"......"
"느그엄마는 그래도 너가 보살핀 게 그대로 여야 "
"......"
"나는 이제 다 늙었다. 내 나이가 구십네 살이어야 느그엄마는 보다 많이 묵었재. 느그엄마는 아직 애래야."
"......"
귀가 잘 안 들리신 어르신들은 자신 말만 하신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들리지 않는다.
시골집 감나무 아래 앉아있는 엄마 사진을 언니에게 보냈다. 언니는 늘 고맙다란 말로 답글의 끝을 맺는다.
"너 때문에 울 엄마 이쁜 얼굴을 오래 본다. 고맙다. "
나는 특별하다. 세상에 나 같은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나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늙어가고 초라한 것 같지만 아름답다.
시골의 하늘은 예쁘고도 예쁘고도 너무 아름답다. 저 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변화 속에서도 늘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일까? 언제나 모든 것을 다 포용해 줄 것 같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인생의 고민 따윈 바람에 날아가는 구름처럼 흩날려가 버린다. 변화 속에서도 한결같고 묵직하며 아름다운 파란 하늘같은 삶을 소망해 보는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