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이어서인지 병원에 가면 종종 청년들을 볼 수 있다. 재활치료를 위해 입원한 환자들의 자녀이다. 아버지는 장기입원, 엄마는 간병을 위해 자동 병원생활, 그렇다 보면 집에는 자녀들만 있거나 할머니들이 와있게 되는 상황이다.
엄마의 운동치료를 마치고 치료실을 나오려다 아버지의 돌보고 있는 청년을 보며 내가 남자 환자에게 말했다.
"부모들이 애들 속을 썩이고 그래 "
"아니에요"
20살을 갓 넘긴 것 같은 앳된 얼굴의 긴 머리를 한 청순한 청년은 아버지의 다리를 손으로 붙잡고 운동매트 위에 올려놓으며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애들이 부모 속을 썩여야 하는데, 예쁜 딸 두셨어요. 딸이 최고예요"
내가 뱉은 말인데 익숙하다. 어젠가 내가 많이 듣던 말이다.
손을 배 위에 모으며 반듯하게 매트에 누워 있는 남자환자는 이제 운동치료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 아들도 했어요."
아버지는 딸뿐만 아니라 아들도 좋은 아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 같다. 나는 자식농사를 잘 지은 집이라는 생각을 했다.
척추 마비로 두 다리가 마비된 이 남자환자를 간병 중이던 부인이 다리를 삐끗해 발목 연골이 나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속이 상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가족을 돌보다 부인의 몸이 상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종종 남자환자의 팔순이 넘은 어머니가 간병을 하기도 했는데 근래에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도 몸이 좋지 않다고 한다.
발목을 다친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 요양 중이었다. 그리고 딸이나 아들이 병원을 교대해서 오가며 아버지의 수발을 들어주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오늘 부인의 발목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걸어도 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공교롭게도 병원에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다. 가만히 걸어가는 사람을 차가워서 박았다는 것이다.
엄마의 병원비를 납부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1층 로비에서 서성거리는데 원무과에서 입원수속을 하는 그부인을 만났다. "몸은 좀 어떠세요?" 나의 물음에 "많이 좋아졌어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다리를 절둑거리며 걷고 있었다. 오늘 교통사고로 며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요. 더 잘 치료하라고 그랬나 보네요."
위로아닌 위로를 건넸다.
언제 좋아질지 알 수 없는 부모를 둔 자녀의 마음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부모를 평생 돌봐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밖에서 바라보면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까?''괜찮아질 날이 올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족이니까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형제자매이니까, 설령 짐이 될지언정 살아있어 준 것만으로, 옆에 있는 것만으로 고마울 때가 있다. 존재 자체가 힘이다. 고통을 서로 나누며 역경을 이겨냄으로 가족의 사랑은 더욱 돈독해지는 것이니까.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함께 하는 것이 감사하고, 버티기 힘겨울지라도 현재에 순응하며, 오늘은 더 사랑하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