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4 박인걸 <억새 풀>
비가 온다네요. 매일 은행나무 가로수를 바라보는데 어젠 유독 노랗게 물들어보이더군요. 바람불면 한방에 다 날아갈텐데... 했는데 비가 온다네요. 책방 옆 어떤 찻집의 은행나무는 아직도 푸르름이 남아서 다행... 하긴 그 나무도 누런 빛이 성글거리긴 하더군요. 가을없이 겨울을 맞이하긴 싫으니, 하루라도 가을빛에 남겨진 못난이 빨간 고추알들의 함성도 듣고 싶으니, 시간이 조금만 게을러지면 좋겠다 싶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모든 학원 가족들이 살코기 치킨으로 맛난 간식을 먹었는데요, 그 간식을 준비해주신 부모님의 배가 더 불렀다는 후문이 있었어요. 부모맘이 그런가봐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는 일. 저는 언제 그런 기쁨을 부모에게 주었을까. 준적이 있기나 했을까를 곰곰이 되돌아보기도 했네요. 분명이 있기는 했겠지 싶어 가족달력을 다시 1월부터 넘기면서 함께 시린 시도 읽어보면서 엄마와 동생들의 모습을 눈에 잘 찍어두었습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 가족에 대한 애정을 벗어나서 전혀 얼굴도 본 적이 없는 타인에게, 또 영역을 넓혀 무생물체에게까지 측은지심을 느끼는 일이죠. 그 마음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데,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세상에 똑같은 사람 없듯이 마음역시 참으로 오묘하고 복잡해서 ‘사람의 한 길 마음‘ 이란 표현은 정말 날카롭고 무섭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부디 그 날카로움이 타인의 마음에 상처내지 않기를...
오늘은 다시 학생시절로 돌아가는 날. 어떤 영시를 만날까 궁금하구요. 지난 시간 들었던 영시, 세익스피어의 소네트18번, 1행만 암기되었나봐요. 너무 쉬워서요~~ 수업 전에 양심 상 한번 더 읽어보는 복습의 자세를 가져야겠어요. 오늘 배울 영시 중 맘에 든 시가 있다면 내일 아침에 올려드릴께요. 오늘은 박인걸시인의 <억새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억새 풀 - 박인걸
가을 억새 풀 섶에 서면
나도 억새인 걸 깨닫는다.
찬 바람 부는 비탈에서
이리저리 쏠리며
억세게 살아온 세월
예리한 칼날 세우고
스스로를 베며 참아온 나날 들
피 맺힌 마디에서
아픈 비명이 들려온다.
짙푸른 젊음
꼿꼿한 자존심도 사라진
휘주근한 풍경은
힘든 삶의 흔적이다.
夕陽의 긴 그림자
무엇 위해 견딘 세월이던가.
고운 단풍 낙엽 될 적에
스스로 스러질 억새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