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
아무리 좋아도 집처럼 좋은 곳은 없고, 아무리 맛난 음식도 집밥처럼 맛있는 것은 없고, 아무리 좋은 만남도 오래된 만남처럼 좋은 인연은 없겠지요. 제가 바로 그런 심정입니다. 실컷 잘 놀고 잘 먹고 있으면서 무슨 투정이냐고 물으신다해도, 사실인걸 어떻하나요. 드디어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날, 잠시후면 일본 나가사끼와 사세보에 도착한다 하네요. 제 성격상 육지에 내려서 이곳저곳 다니다보면 또 다른 재미를 가득 담겠지만, 어젯밤 가족들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카톡으로 전화도 해봤습니다. ^^
어제는 선상 프로그램 마지막 일정, 아침부터 다양한 명사들과 관객들을 만나고 다녔네요. 좋은 프로그램은 많고 각 홀마다 진행되는 시간이 중복되어 욕심처럼 모든 것에 다 참가할 수 없음이 아쉽지만, 저의 선호도를 기준으로 열심히 듣고 보고했지요. 유홍준교수는 싸인 한번 받았다고 왠지 더 친근, 3번째 강연 '추사 김정희'까지 어느 한구절 빼 놓을 것이 없이 유쾌하고 즐거웠구요. 신세대 광고천재, 이제석씨의 '안돼라는 관념에 도전하기'라는 강연도 정말 유익했어요.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이자, 고 노무현 대통령묘소를 건축하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건축으로 유명한 승효상 건축가의 강연도 감동 그 자체. 안상학시 인이 들려주는 백석시인과 이육사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알지 못했던 유명인사로 임진택 명창의 판소리 공연을 보았는데요, 엄청 유명한 분이시더군요. 우리 전북 김제출신으로 기존 판소리가 아닌 창작판소리 명창으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독보적인 소리꾼이자 우리나라 마당극 연출의 선구자라는 평을 읽었습니다. 대학시절 우연히 우리 판소리를 알게되어 새로운 판소리를 창작하였고, 당시 김지하의 '오적'이라는 시를 판소리로서 창작, 시대를 풍자하는 소리꾼이 되었다 합니다. 어제는 김구선생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듣는데,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이라는 말이 들려오더군요. 또 판소리 가락명은 몰라도 어딘가 들음직한 자진모리 중중모리 등의 말이 떠오르면서 한 순간에 반해 버렸답니다. 제 방앞에 계신 그분 방을 노크해서 싸인해달라고 조를 뻔했다니까요..
오늘은 제가 또 어떤 인연과 사건을 만날까요. 저도 모르지만, 인생이란게 알수 없는 일로 채워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 어느 곳에 있든지, 제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 였음을 다시한번 깨닫구요, 남은 인생동안 사유와 실천을 한몸으로 만드는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도 하네요. 오늘은 안상학 시인이 들려준 백석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뿐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