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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별쌤 Nov 17. 2024

울어서 죄송해요..

눈물 속에 담긴 이야기

아이돌 같은 모습을 한 멋쟁이 20대 초반의 청년이 상담센터에 내원했다. 

밖에서 만나면 심리상담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밝은 모습이다.

실은 그의 엄마가 몇 달 전부터 상담을 받는 중인데 상담하는 중에 갑자기 말했다.


'원장님, 아무래도  아들도 데려와야 할 것 같아요. '

'왜 그런 마음이 생기셨을까요?'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면서 생각난 건데 날 닮은 아들도 참 아팠을 것 같거든요~ 

아이가 표현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라 그냥 괜찮으려니 하고 살았는데 참 안쓰러워요~' 

'어떤 부분이 그렇게 안쓰러우세요?'

'이유야 어찌 됐든  아들이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을 했고 다시 엄마가 재혼을 하는 과정에서 

어린 아들이 견뎌야만 했을 몫이 너무 컸던 것 같아요..' 


그런 대화를 나눈 지 한주만에 엄마가 아들과 함께  내원했다.

'반가워요~ ㅇㅇ씨~! 오늘 오시면서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엄마가 계속 가자고 권유하셔서 따라왔기에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어요..'


'그러셨군요~ 엄마는 아들이 조금 걱정이 되셨나 봐요~'

'엄마가 내 걱정을 하셨어요?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리고 10분 정도 얘기를 더 나눈 후 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않은 눈물의 습격에 너무나  당황한 그는 상담실 천정 쪽을 구석구석 살펴보더니 내게 말했다.

'뭐죠? 난 잘 울지 않아요.. 왜 내가 울고 있죠? 이 방에 초음파 쏘는 것 맞죠? 그래서 내가 울게 된 거죠?' 

'초음파 같은 건 없어요. 당신도 몰랐던 당신의 마음과 만나다 보니까 그 순간의 당신으로 인해 슬퍼진 거죠..'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그는 말했다.

'죄송해요.. 눈물 흘리면 안 되는 건데...'

'눈물 흘려도 돼요~ 울지 않아서 마음속에 눈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거예요~ 편하게 우세요~'

이 말을 듣고 그는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며 울었다.  

엄마와 함께 살면서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랐고 그 고통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기에 더 아플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린 나이에 여러 상황에 떠밀려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게 됐고 그 일을 하며 받았던 

스트레스가 심했었는데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을 아끼던 계부에게 잘 보여야 된다는 생각이 컸기에 묵묵히  참아냈다.  

잘 해내야 엄마도 좋아하실 거라 믿었으니까...

그의 눈물 속에는 하지 못한 얘기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얘기들을 쏟아내면서 그의 눈물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상담센터에 필수 준비물 중 하나가 갑 티슈이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거의 대부분 상담을 시작하게 되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들은 꼭 얘기한다. 

'울어서 죄송해요..'

우리 세대에는 그랬다. 우리가 울면 부모님이나 선생님, 웃어른이 꼭 말씀하셨다. 

'울음 뚝~! 울긴 왜 울어?  잘못한 것을 인정한다면 눈물이 나와? 우는 게 더 나빠~' 

울면 안 된다고... 넌 울 자격도 없다고... 우는 게 더 잘못하는 거라고...

그래서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이 죄송한 일이고 예의 없는 일이라 믿었다.

속상함의 눈물, 억울함의 눈물, 미움을 받는 것 같아 서러움의 눈물, 분노의 눈물, 슬픔의 눈물 등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지만 울면 안 되는 거였다.


난 눈물이 많았다. 감수성이 풍부해서 슬픈 얘기를 들어도 울었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도 울었다.

억울하거나 서럽거나 속상할 때도  당연히 눈물이 났다.

하지만 내 눈물은 늘 혼이 났다.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단정 지어졌다. 

그래서 눈물 속에 담긴 내 얘기는 꺼내지 못하고 눈물과 함께 잠수를 탔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작은 다툼을 하는데도 역시 눈물이 났다. 

날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날 서운하게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만으로 충분히 눈물이 흘렀다.

남편은 눈물을 해결하는데 서툴렀다. 그래서 내가 울면 힘들어했다. 

'송아(남편이 날 부르는 애칭)가 울면 내가 얘기할 수가 없잖아. 분위기 가라앉으니까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결혼을 했는데도 내 눈물은 여전히 혼이 났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중에 내가 책을 내게 된다면 책 제목을 '울어도 돼~ 편하게 울어~'로 쓰겠다고..

지금은 예전처럼 그렇게 울지 않는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눈물까지 꺼내서 눈물을 이해해 줬고 달래주었으니까..

눈물은 잘못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한 얘기들이 있다고 신호를 보낸 것뿐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함께 나오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배설 후 느끼는 시원함과 같은 감정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렇게 고마운 눈물이다. 

가짜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면 눈물에 담긴 것들에 관심을 주어야 한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참 많이 울었다. 

이 딸은 아직 드리지 못한 사랑이 많이 남아있는데 내게 사랑만 주시고 떠나셨다.

사람들은 날 위로하는 방법으로 내 앞에서 아버지의 '아' 자도 꺼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날 가장 따뜻하게 했던 위로는 

내 앞에서 내 얘기를 들으며 아무 말 없이 함께 흘려주었던 지인의 눈물이었다.

그렇게 눈물은 고마웠다.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눈물을 난 좋아한다.

그 눈물 속에 담겨 있는 그들의 하지 못한 얘기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을 흘렸지만 상담실 문을 열고 나갈 때는 그들은 부은 눈으로 웃으며 얘기한다.

'선생님 감사해요.. 수고하셨어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직 눈물이 매달려 있는 그들의 눈은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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