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 글쓰기 수업

내 인생의 글쓰기 멘토

by 해질녘

작가의 일이란 결국 인간의 캐릭터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다. - 리처드 프레스턴 (베스트셀러 작가)


내 인생의 첫 번째 글쓰기 멘토는 내 일기장이었다. 일기를 쓰라고 말씀해 주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덕분에 나는 지금도 일기를 쓰고 있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감사하기도 하다. 펜과 종이로 기록하던 습관들이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자판만 두들기면 쉽게 기록이 되었고 언제든지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기록이 되었다.


일기장이 왜 글쓰기 멘토냐고 묻는다면 글 쓰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문법의 오류조차도 받아주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쓰면서 내면의 소리를 자신에게 한번 들려주고 글을 통해 쓰레기 같은 감정들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너저분하게 흩어진 생각들을 정리해 준다. 글을 쓰면서 치유도 되지만 많이 배우기도 한다.


글을 쓰는 것을 흔히 마라톤에 비유하지만 나는 마라톤이라기보다는 결승점이 없는 경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가 있다면 항상 그 스토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 스토리의 주인공이 인생의 끝에 다다르면 그만 쓴다고 맞을 것 같다. 죽기 전까지 나 역시 계속 생각하고 읽고 쓸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언제나 화자가 있고 스토리가 있다. 그 누구의 삶도 존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스토리는 다시 그 인물의 시련과 극복 그리고 그 과정을 무수히 반복할 뿐이다. 어제의 일상이 다른 누군가의 일상이 되는 것이 스토리였다. 그 스토리는 비슷하지만 그 비슷한 스토리를 다르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기자들이나 글 쓰는 사람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된다. 같은 이야기이지만 거기에 약간의 감정과 연극이나 드라마 같은 효과를 주어 좀 더 스릴 있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풀어나갈 수 있다면 읽는 사람의 마음에 좀 더 깊이 와닿을 수도 있고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런 스토리에도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글 쓰는 사람이 글쓰기의 윤리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살면서 거짓말을 한 번이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실제 발생한 사실을 그대로 적는 것보다 (라면 형제 화재 사건처럼) 약간의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읽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여러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글쓰기 윤리는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부터 꼭 익혀야 할 그런 법칙이 아닐까 생각된다.


뉴스거리는 단순히 어떤 일이 발생한 사실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사설이나 칼럼은 각 분야에 대한 전문가의 판단과 정확성으로 세상의 문제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그래서 신문 사설이나 논평은 자주 읽으려고 했다. 그들의 글에는 배울 것이 참 많았다. 회사 생활을 해보니 내부 직원이 바라보는 시각과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똑같을 수 없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에는 내부 문제를 내러티브 논픽션으로 서술할 수 있는 신문사와 같은 기관이 없는지 안타깝다. 그런 언론기관 있더라도 대부분 회사나 지자체에 우호적인 뉴스나 내부 뉴스 같은 정보 전달 내용을 보도하기 때문에 독립된 언론 기관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부 문제에 접근할 수 없는 외부 언론이 충분히 그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도 없었다.


내부 전문가들의 생각과 외부 전문가들의 생각이 다른 것처럼 어떤 문제에 대해 본사 직원의 생각과 지점 직원이 생각하는 것이 다르듯이 그 다른 것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있어도 구체적으로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회사 내부의 문제는 외부로 나갈 수 없었고 대부분 함구하고 있었다.


사내 뉴스를 봐도 내부 문제에 대해 논평을 달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논리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잘 없었다. 그런 논평을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칫 내부의 적이 되거나 다른 직원들로부터 너는 그런 사람이라고 낙인찍힐 수도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은 조직 생활에서 좀 더 신중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기사를 만드는 순간 오히려 그 사람이 기삿 거리가 되는 사회에서 ** 교수나 ***교수처럼 교수라는 직함이 우습게 보이는 날이 올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말은 하고 싶고 말한 것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것은 어른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 사람의 심리는 늘 있어 왔던 일이었고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이성은 없고 자신의 감정만 쏟아내는 글은 읽는 사람도 기분이 나빠진다. 우리 사회가 글 쓰는 일에 대해 글을 쓰고 평가받는 일에 대해 얼마나 인색하고 학교에서 조차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하물며 학교 신문을 만들고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문집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모두가 다람쥐 쳇바퀴 속에 갇힌 다람쥐처럼 자신의 맡은 일만 하며 달리지 말고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 회사가 어떻게 변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창조적 논픽션은 철저한 진실성 준수에 달려 있다. 구체적 사실에 의존해 정직하게 현실 세계를 쓰고, 기억과 상상에 의존해 이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더 멋진 스토리를 쓰겠다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면 그것은 픽션이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풀기 위해 존재하는 사실을 사용하는 것은 창조적인 논픽션이다. p148.


몽테뉴는 사사로운 자기 경험이 다른 이에게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을 글감으로 삼는 오만함은 정당화된다고 말했다.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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