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이기적인 글쓰기

by 해질녘
이기적 유전자(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사람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나는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추천하고 싶다. 광대하기도 한 우주의 영역과 동물의 영역을 통해 인간과 우주 그리고 자연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그 책 속에 기록되어 있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런 부분도 아니고 자칫 허무주의와 회의주의에 빠져 인생을 헛살았다는 좌절감을 주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증명을 하고 있다.


나도 그들처럼 단적인 예로 내가 신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겠다. 다른 것은 증명할 수 없겠지만 이것의 증명만으로 나는 나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1. 신이 있다면 존재가 있다.

2. 우리가 없다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존재하면 신은 존재한다.


너무나 간단한 사실이다. 존재 자체만으로 신의 존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이 시공간이라는 곳에서 존재는 현실에 존재하는 나와 우리들이 알고 있다. 이 존재는 우리가 유전자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생명의 큰 틀은 우리가 이 유전자를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인 구조(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유전자 조작은 가능하지만 자연적인 상태에서 그 유전자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개가 인간을 닮아 말을 하고 요리를 하고 생각을 하고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전자에도 어떤 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을 직접 탐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동물을 통해 인간을 간접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물의 특성과 인간의 특성은 동물적인 본성에 있어서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지구상의 많은 생물들이 그런 특성들을 지니고 있음으로 인해 지금껏 지구상의 많은 생명체들이 순식간에 멸종하지 않고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신은 새로운 것을 창조했을지 몰라도 존재하고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은 인간 밖에 없는 것 같다. 생태계 교란종은 인간의 이동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생물학적인 파괴현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개체와 집단의 관계를 보면 어떤 집단에는 이타적인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도 있지만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가 있다. 어떤 특정 개체가 생태계를 교란시키거나 심지어 종족 말살이라는 비참한 비극으로 끝나는 일도 없지 않다. 이기적인 인간들로 인해 만들어진 인간 사회의 문제를 유전자가 설명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유전자 조작만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그들의 잘못된 생각들을 바꾸고 싶다.


태어나자마자 자기 주위에 있는 개체를 파괴하고 어미가 가져다주는 먹이를 혼자서 차지하려는 이기적인 새끼의 행동이 나는 학습된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새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모두가 본인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을 하면 그들의 존재나 행동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의 틀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대중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생명과학분야에서 인기 있는 과학서적이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인간이 인간의 사고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모든 해석의 베이스는 인간 삶의 경험과 생각들이라는 것이다.


생물의 생각이 아니고 그들의 언어가 아니고 그들의 행동을 인간의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가 여기에 가득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집단을 형성하며 서열을 정하며 인간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소통을 하며 유전적인 특성에 따라 생물학적인 각 기관이 형성되고 심지어 그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 감정조차도 그 생물의 특성에 맞게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생물들이 같은 종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교감을 하지 않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생물들 간의 교감이라는 중요한 생물학적인 부분이 있는데도 리처드 도킨스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인간사회는 유전자로 설명할 수 있는 동물들의 삶과 다르다. 내 유전자가 글을 쓰라고 명령을 내린 적은 없다. 전쟁에 참여하라고 명령한 적도 없다. 그런데 전쟁은 이기적인 유전자가 이타적인 유전자를 끌어들여 죽으러 가는 곳인데 그 어느 누구 하나 말리지 않는다.


꿀벌들의 전쟁은 다수의 꿀벌이 침략자(말벌)와 맞서 싸우지만 꿀벌에게는 처음부터 이기는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수많은 일벌의 죽음이 한 마리 말벌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의 운명을 그런 식으로 몰아넣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세상이 바뀐다는 것과 누군가의 희생이 오늘의 행복을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타적인 유전자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이기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시 '학교 가던 아이는 죽어'를 끝으로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웃으며 손잡고

학교 가던 아이는 죽어

학교 앞 신호등이 되고


친구와 배를 타고

학교 가던 아이는 죽어

학교 앞 개울의 다리가 되고


동생과 손잡고

학교 가던 아이는 죽어

학교 앞 행길 가의 표지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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