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net Nov 01. 2020

내 사랑을 읽을 사람들을 위한 작은 지침서

사랑을 노래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에 대하여

오토픽션 : auto(자전) 더하기 fiction(허구), 소설이자 자서전이고, 소설도 아니고 자서전도 아닌 장르. 진실과 허구의 공존이 둘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나’의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장르. 이 장르에는 하나의 규약만이 존재한다. A(저자), N(화자),P(주인공)의 일치.


이 글은 사랑에 대한 오토픽션이다. (바르트의 말을 빌리자면,) 사랑의 언어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비틀리면서 자신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육체적인 언어이자자연의 언어 어야 할 것이다. 어디 한 곳에 매여 있지 않은 ‘살아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오토픽션이 필요했다. 이 글 속에는 세 가지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세가지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존재한다면, 의 규약을 어기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셋은 공통적으로 ‘나’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카르멘>의 돈 호세처럼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생에 돋친 가시가 되어 괴로워하는 상사병 환자’의 톤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동일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A(저자)의 목소리, N(화자)의 목소리, 그리고 P(주인공)인 S의 목소리. A의 목소리는 방백의 목소리이다. 그는 논리적인 언어로 학문적, 이론적 차원에 다루어지는 사랑에 대해 합리적 설명을 제시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사랑의 ‘살갗이 벗겨지는’ 섬세한 감각에 대해 알지는 못한다. 그는 대체적으로 사랑에 있어액자 밖의 입장을 취하려 한다.

N의 목소리는 독백의 목소리이다. 그는 N과 S의 중간지점에 존재한다. 자신의 위치를 조감할 수 없는 S를 대신해 장면의 밖에서 S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술하고 있다. N은 합리적인 언어로 S를 말과 행동들을 설명할 수 있으며 동시에 차가운 A의 언어를 살아있는 말로 직조해낼 수 있다. 사랑이 한 세계와 또 다른 세계 사이의 경계 점에서 비롯된다 가정하였을 때, N이야말로 사랑의 담론을 기술하기에 가장 적합한 목소리를 가졌다 할 수 있을 것이다.

S의 목소리는 고백의 목소리 이자 침묵의 목소리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즐거움, 고통, 기쁨과 괴로움, 슬픔, 후회, 이별과 상처의 서사들이 뒤섞여 끓고 있는 냄비에서 넘쳐 흐르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뜨거운 목소리. 자신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이 이야기를 끝맺어야 하는 의무를 지닌 S의 고백은 주저하고, 초과되는 감정들을 제대로 주체할 수 없어 더듬거리는 목소리다.         


이글에서 말해지는 사랑은 말하는 누군가의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어느 누구의 사랑도 아닐 수도 있다. 직접 경험한 것 일수도 있고, 혹은 가까운 누군가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인 양 떠들어대는 것일 수도 있고, 단순히 누군가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사랑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사랑이 아닌 것을 두고 사랑이라 착각하며 엉뚱한 곳을 헤매는 말들 일수도 있다. 글 속에 임재하는 사랑의 주체와 대상들 또한 마찬가지다. A는 되도록 이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애인’이라는 하나의 호칭 하에 묶기 위해 노력했다. 보통 애인이라 하면 다들 ‘에로스적’사랑을 나누는 대상으로만 생각되어지곤 하는데 사실 연인 만이 ‘애인’이라는 호칭을독점한다는 것은 부조리하다고 생각한다. 애인은 연인 일수도 친구 일수도, 동료 일수도, 엄마 일수도 있고, 가족 일수도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사랑하는 애완동물일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가르쳤던 내 스승들은 글을 쓸 때 이와 같은 애매하고 유보적인 태도는 썩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주제에 따라서는 이러한 태도가 글에 어울리는 문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의 본질은 역설과 오해, 모호함이라 했으니까. 누군가가 ‘정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알아듣겠네, 왜 이딴 식으로 글을 쓴 거지’ 라고 비난한다고 해도 이번 만큼은 괜찮을 것 같다. 베케트의 말처럼 사랑은 우리의 사유를 더 잘 실패하게 만들고, 새롭게 다시시작하게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