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반지처럼 오늘 당신의 사랑이 어떤 색인지 알려주는 반지가 있다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당신이 오늘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얼굴로 당신을 마주하고 싶다. 애인의 얼굴로, 때로는 친구의 얼굴로, 때로는 당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익숙한 얼굴로 혹은 낯선 이의 얼굴로. 만약 당신의 오늘이당신이 지나온 세월들 에게 고개를 돌린다면, 나는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아는 얼굴로 지나간 시간들을 위로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당신이 나를 좀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 아니,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 좀 더 쉽기를 바란다. 내 사랑이 당신의 생각처럼 닿을 수 없는 머나 먼 곳에 전설로 남아버린 보물이 아닌 오늘의 당신을 잠시 행복하게 했던 초콜릿 한 조각처럼, 당신이 손 만 뻗으면 만질 수 있는 풍경 속에 있다는 것을.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나, 반지를 낀 사람의 마음에 따라 색이 변한다는 ‘애정반지’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미움은 보라색으로 슬픔은 파란색으로 사랑은 빨간색으로 변하는 반지의 색은 당시 우리의 아침인사이자 작별 인사가 되었고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안부 인사가 되었다. 물론 나이가 먹은후 그 반지는 체온 변화에 색이 변하는 화학물질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아 버리고 말았지만 그 반지의 색이 꼭 마법만 같이 느껴졌던 낭만의 시대가 자신에게도있었다는 그 사실이 지금의 S를 위로하는 때가 있다.
그 반지의 색이 진실한 마음이라 믿을 수 있었던 그 시절, 반지는 잡동사니 같은 에피소드들을 수두룩하게 안겨주고 유행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얄궂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체온 덕에 서로 ‘쟤가 사실 나를 싫어했다’며 상처를 받기도 했고, ‘쟤가 사실 나를 사랑했다’며 착각하기도 했었다. 자잘한 사건들 가운데에서도 S에게 유난히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한 친구가 S의 반지를 물들인 ‘사랑’의 색을 보고 ‘같은 여자인 자신’을 사랑한다며 S에게 절교를 선언했던 일이었다. 덕분에 S는 ‘동성은 사랑해선 안된다’고 혼이 난 뒤 베개에 수많은 의문들로 짙어 진 서러움을 닦아냈다.
나는 엄마도 사랑하고 여자 친구들도 사랑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더이상 그들을 사랑하면 안되는 것인가?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나는 그들을 너무도 사랑하는데. 나는 이세상에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과연 어떤 것은 사랑해도 되고 어떤 것은 사랑하면 안되는 것인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사랑하는 건 무엇인가? 나는 앞으로 그 둘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것인가? 좋아해야 하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운 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S는 당시 제일 좋아하던 책에서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강아지는 좋아할 수 있지만 사랑할 수 없다’ 라는 것. 그렇게 S는 해답은 찾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답은 찾은 것은 아니었기에 그 어정쩡한 기분을 오래도록 끼고 살았다. 그 해답을 이해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S의말들은 ‘좋아하는’과 ‘사랑하는’ 사이 애매한 지점에서 우물쭈물 거리는 바람에 종종 S를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 본인이 사랑하는 것들을 ‘좋아한다’로 축소시키기엔 너무도 사랑이 가득했던 어린 날의 s는 어떤 때에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적합한지를 너무 신중하게 앓은 나머지 서서히 벙어리가 되어갔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는데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드라마, 영화, 음악, 책, 심지어 주말에 술집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까지, 온 우주가 한 마음으로 사랑을 추적해온 거대한 역사책 속에 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인데 왜 누군가에게 ‘사랑을 해보았냐’고 물어보면 다들 하나같이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반문만이 돌아오는지는 의문이다. 사랑은 정말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찾을 수 없는, 아니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을 찾으려 그 길고 방대한 역사책을 써왔다는 말일까.
사랑이 아니라 부정할 수 없는 것을 앞에 두고도 사랑이 사랑인지를 몰라 사랑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랑이 신화화 되어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남자들의 모습들이나, 매체들 속에 그려지는 사랑은너무 추상적이고 마치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이데아처럼 느껴진다. 또 다른 신화화 된 사랑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들, 재정립하고, 분류하여, 서열을 매기는 그 과정에서 오히려 사랑은 실체 없는 추상 뒤로 사라져간다. 요즘 SNS에 흔히들 올라오는 ‘이런 애인을 만나라’, ‘사랑할 땐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와 같은 사랑의 조건들을 나열 해놓은 게시물을 본적이 있는가. 사랑의 대상을 정의하고, 사랑을 서열화하고, 그 방식을 규율로 강요하는 과정에서 사랑은 흐려져 간 것이다.
그래서 s는 오히려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랑보단 애정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사랑 애에 뜻 정을 붙인 심장과 순수한 마음, 애정. 사랑을 좀 더 쉽게말하기 위해서는 애와 정, 두가지의 접근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전자는 거시적이고 총체적인 측면에 조망되는 사랑이고, 후자는 미시적이고, 디테일한부분의 세밀한 분석을 요구하는 사랑일 것이다.
애를 사용한 사랑의 말들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인류애, 이성애, 동성애, 모성애, 동료애를 예시로 들 수 있다. 애의 사랑이란 시선의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사랑의 주체인 나와 특정 대상 사이의 특수한 관계의 형태가 아닌, 사랑하는 대상을 가운데에 넣고 그가 있는 풍경 전체를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시선이다. 이 시선 속에서 사랑은 소유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대상의 성장과 그 자체를 아끼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정을 사용한 사랑의 말들도 생각해보도록 한다. 다정, 우정, 동정, 걱정, 생각보다 ‘정’을 사용하는 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눈만 감았다 떠도어디에서도 포착되는 그런 따스한 풍경들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다양한 마음과 감정들, 그리고 그 감정들이 드러나는 따듯하고 사소한 순간들. 어딘가를 향하는 나의 버스 창문 밖으로 소실점이 되어 시야 밖으로 사라질 때 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엄마의 손길, 잠든 나의 어깨에 이불을 덮어주는 친구의손길. 그렇게 생각하면 사랑은 훨씬 포착하기 쉬워진다.
나는 매일 새롭게 마주하게 되는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볼 때 마다 애정반지의 색을 확인하듯 묻고 싶다. 오늘 당신의 사랑은 무슨 색을 띄고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