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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t Nov 01. 2020

사람과 사랑의 변증법

사람이 사랑으로, 사랑이 사람으로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봉긋한 가슴을 눈여겨봐 두었지.

날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파 먹어야 하니까.


내 사랑- 전윤호


각이 날 선 ‘사람’의 모서리를 깎아내면 사랑이 된다. 둥근 ‘사랑’의 모서리에 깎아낸 모서리를 덧대면 사람이 된다. 그렇게 사람은 사랑이 되고, 사랑은 사람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갈아내고, 사랑받는 사람은 그 사랑으로 비로소 온전 해진다.


사람과 사랑의 변증법에서 사랑 ‘하는’ 사람은 비극적인 구조 속에 있는 듯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이라 굳게 믿어 그 시퍼렇게 선 날을 가슴에 안고 어루만지다가 스스로가 사랑으로 닳아간다. 그토록 사랑이 절실해 암흑 속에서 사랑을 더듬거렸던 그는 어느 날 눈을 뜨고 깎여나간 자신의 신체를 보고 한탄하게 된다. 그토록 사랑을 찾아 헤맸는데 사랑이 지나간 흔적만이 남았다고. 그러나 그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사랑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인간이 자기 자신의 얼굴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듯, 사랑이 된다는 것은 사랑을 하나의 객관적인 대상로 직접 포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면 사람과 사랑의 변증법적 구조 속에서 사람은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승리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이 되어보지 못한 사람을 결코 사랑을 알 수 없다. 사랑을 위해 자신을 깎아낸 적이 없는 사람은 또 다른 암흑에 눈이 멀어 두려움을 사랑인 줄로만 알고 더듬거리다가 두려움에 사로 잡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욕구와 요구, 집착으로 이루어진 암흑은 사람을 아무것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는 심연 속에 가두어 놓고, 점점 강해지고 넘쳐흐르며 더 더 깊은 심연 속으로 사람을 끌고 들어간다. 즉각적으로 충족될 수 있는 욕구와 사랑을 인질로 삼은 권력에 의한 요구와 그에 대한 집착에 눈이 멀어 두려움이 사랑인 줄로만 알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있기를 고집하는 것이다. 그는 사랑으로 아프게 깎여나간 사람이 없다면 더 이상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력이 사라지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랑의 흔적조차 본 적이 없는 그는 두려움이 사랑의 본질이라 믿으며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 움켜쥔 채 공포에 떠는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마치 통나무를 붙잡고, ‘이것은 코끼리 다리이니 나는 코끼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라고 말하며 코끼리 위에 앉아 ‘코끼리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니 나는 코끼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바보가 되는 것이다.

 

사랑은 충만이 아닌 상실에서 시작된다. 상실된 것을 다른 무언가로 대체하여 메우기 위함이 아니고, 상실의 주변을 맴돌며 상실을 애도해줄 수 있는 시를 짓는 것이 사랑이다. 상실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고, 상실을 무언가로 대체하려는 사람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대체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상실에 머물러있을 수밖에 없다. 크기가 맞지 않는 뚜껑들 만을 줄 세워놓고 채워질 수 없는 무언가를 채울 것을 요구하지만 그러한 일은 상실을 다시 곱씹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에 더 깊은 상실 속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나 상실의 아픔을 알고 상실을 위로해본 사람은 안다. 상실의 아픔을 위로하는 일은 무언가로 채우는 일이 아니라 아픔을 디딜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아픔을 나누고 애도를 기다려줄 수 있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것을. 상실의 아픔을 위로해본 사람만이 자신의 아픔을 나눌 수 있다. 이것이 사람이 사랑이 되고, 또 다른 사랑으로 사람으로 온전해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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