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1944년 카페 드 플로르의 1층에서 사르트르는 레이몽 크노에게 초현실주의운동이 그 남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크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l'impression d'avoir eu une jeunesse" (청춘을 가져본 적 있다는 느낌).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옛 사람들의 말에 감탄하게 된다. 청춘을 가져본 적 있다는 느낌, 이보다 더 사랑을 잘 묘사할 수 있는 문장이 있을까? 시간의 흐름이라는 절대적인 권력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녹음이 우거지고 꽃이 피어나는 계절 속에 살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랑하는 동안 우리는 사랑이 닿은 그 모든 순간들이 노화되어 뒤쳐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랑이 남기고 간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 끊임없이 몸부림친다. 삶의 결말을 눈 앞에 둔 노인조차도 첫사랑을 말할 때면 세월이 남기고 간 그 흔적들이 무색하리만치 16살 꽃피는 시절의 얼굴을 하지 않던가. 나에게 노화되지 않는 청춘의 순간을 선사해준 당신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나의 사랑 또한 당신에게 변하지 않는 청춘의 순간으로 남기를 기도한다.
2.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사랑이 너무 많아 병이 된 사람의 품에서 사랑을 모르는 사람으로 자랐다. 감은 눈만 뜨면 시선 가득히 사랑이 포착되는 곳에서, 눈 뜨는 법을 몰라 바닥만 손끝으로 더듬거리며 사랑이 사랑인 줄 모르는 장님으로 너무도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사랑 속에서 사랑을 더듬거리면서 손에 닿는 모든 사랑들을 사랑이 아니라 부정하는 일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일 될 수도 있었던 긴 시간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나의 가장 큰 죄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받는 방법을 몰랐고, 사랑 하면서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는 것일 거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내 인생의 반절은 사랑받기 위해 낭비했고 그 나머지 반절은 사랑하기 위해 낭비했지만 두가지 중 단 하나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나는 내게 남은 시간들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에 최선을 다해 내 시간을 낭비해볼 생각이다.
3. 사랑할 사람들에게
머리가 굵어가는 나이에 다다를때 까지 내 인생의 절반정도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버지를 반정도만 가지고 꽤 긴 시간을 살았던 셈이니, 지금까지도 나는 그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개인적인 취향, 삶을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갔던 독일 출장에서 사온 시계를 볼때마다 문득, 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곤 한다. 어두운 밤에도 빛날 수 있는 형광 손목시계를 채워주던 그 투박한 손. 아버지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어두운 길에서도 내가 스스로 앞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빛이 나는 형광시계를 채워주고 묵묵하게 뒤를 바라보아주는 것. 내가 앞으로 그 어떤 누구를 사랑하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 그 사람이 어두운 길에서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도록 빛나는 형광시계를 채워주는 시선이 되고 싶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혹여나 넘어질까봐 마음 졸이며 그의 뒤를 지키는 따듯한 시선으로 내가 사랑할 당신을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