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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t Nov 01. 2020

사랑이라는 말

사랑이란 그 단어의 무게와 크기와 농도에 대한 단상

사랑의 도시 파리. 불행하게도 s는 파리에서 단 한번도 무언가를 ‘사랑한다’ 라 말하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이 수식어는 (현재까지는) s에게 ‘이해할 수 없는’ 으로 남게 된 듯하다. 사랑을 찾을 수 없는 도시가 사랑이라는 말로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를 불러들이는 모순. 하지만 이 모순의 도시에서 s는 사랑이라는 단어(이는 사랑으로 번역되는 모든 단어들도 포함한다)의 무게와 크기와 깊이를 몸소 실감하게 되는 순간들을 종종 마주하곤 했다.   


1. 사랑의 무게

사랑의 무게로 무너져 버린 퐁데자르 다리

일요일마다 s와 점심을 같이 먹던 친구네 집 근처에는 퐁데자르 다리가 있다. 퐁데자르는 난간에 사랑하는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전설 덕에 ‘파리에서 꼭 가봐야 한다고들 말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 믿거나 말거나 스러운 장난 같은 소문 때문에 결국 퐁데자르는 자물쇠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난간이 무너져 내려버렸다. 지금은 부서진 난간 대신 자물쇠를 걸 수 없도록 투명한 유리 벽이 설치 되어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자물쇠의 걸쇠가 조금이라도 걸릴 수 있는 모든 틈새에는 빼곡하게 불굴의 의지를 지닌 사랑들이 새로이 채워지고 있다. 언젠가는 또 이렇게 걸린 사랑의 때문에 아예 다리 전체가 무너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과는 어떠한 합리적 연관 관계도 찾을 수 없어 보이는 앙상한 철골 다리를 바라보며 s는 ‘그러고 보면 사랑이라는 말이 보통 무게가 아닌 것 같다’ 고 생각한다.


2. 사랑의 크기

사랑해 벽에는 몇가지의 언어가 사랑을 고백하고 있을까

또, 몽마르트 초입의 작은 공원에는 어떤 예술가가 이 세상에서 채취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언어들의 ‘사랑해’를 주워다 한쪽 벽면 가득 써 놓은 ‘사랑해 벽’ 이 있다. 파리에 머무는 대부분의 이방인들은 이 타국에서 자신의 모국어로 쓰인 ‘사랑해’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이 공원으로 모여든다. 끽해야 s의 스튜디오 크기 하나 정도 밖에 못될 이 작은 벽을 담아간 모든 사람들의 사랑의 사진들을 인화해 펼쳐 놓는다면 아마 파리 전체를 여러 번 덮고도 남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이라는 말은 크기 또한 보통 큰 게 아닌 듯하다. 아마 올해 여름 한철에 만도 파리를 충분히 덮을 만큼의 사랑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3. 사랑의 농도

내가 파리에서 만난 가장 못생긴 다리가 한때 지진처럼 나를 흔들었다


s는 15구에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많고 많은 아파트 중에서 이 아파트를 고집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미라보 다리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22살이었나, 저녁에 가까운 오후 창가로 쏟아지는 뭉근한 햇살 아래 이루어졌던 ‘미라보 다리’와 의 운명적인 첫 만남을 기억한다. 초현실주의 시의 선구자 아폴리네르가 사랑했던 연인 마리 로랑생 과의 사랑을 흘려 보낸 다리, 맞잡은 연인들의 손 아래로 센느 강처럼 사랑이 흘러가는 다리.  

그 사랑의 다리 위라면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랬다. 미라보 다리 아래 저 멀리 흘러가는 사랑의 그림자라도 마주 하고 싶어서 s는 학기가 끝나자 마자 무작정 짐을 싸서 이 몇 십만 키로 떨어진 낯선 타지로 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s가 그토록 연모해왔던 미라보 다리는 파리에 있는 모든 다리를 통 털어 제일 볼품없고 못생긴 다리였다. 어중간한 초록색으로 칠해진 밋밋한 철제 난간은 녹이 슬어 사방 칠이 벗겨져 있고 난간도 너무 낮아 발이라도 헛디디면 강으로 고꾸라지기 안성맞춤으로 보이는, 시작에서 끝으로 끝에서 시작으로 몇 번을 오가도 사랑의 순간과 맥락이 유사한 그 어떤 풍경도 마주할 수 없는 다리. 산타클로스가 사실 아빠라는 걸 알았을 때와 꼭 같은 기분이 랄까, s는 이 실상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씻을 수 없는 실망으로 미라보 다리를 건너 다니던 s에게 같이 시 수업을 들었던 친구는 어느 날 아무래도 아폴리네르가 네발로 기어갈 정도로 술에 진탕 취해서 시를 쓴 게 틀림없다고 심심한 위로의 농담을 건네게 된다. 그 농담을 곱씹던 S는 자신이 수없이 경험하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바보같이 사랑이라는 말에 속아넘어갔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천재지변처럼 s를 흔들었던 ‘그’ 미라보 다리의 풍경은 사랑의 주체였던 아폴리네르도, 사랑의 대상이었던 마리 로랑생도, 관계의 종말도, 술이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 미라보 다리도 아닌 사랑이라는 그 말에 취한 감각들이 빚어내는 사랑의 정경이었던 것이다. 아폴리네르는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시집의 제목을 알콜이라 지은 걸 보면) 사랑, 아니 사랑이라는 그 말이 그 어떤 독한 술보다 우리를 더 깊은 취기의 심연 속으로 빠트릴 수 있다는 걸.


사랑이라는 말이 장면 위로 내려 앉는 순간, 사물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든 감각들은 사랑의 독한 도수에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취기에 비틀 거리는 시각, 후각, 촉각, 청각, 미각들은  자신의 개별적인 수용 방식을 잃고, 서로가 서로에게 넘어지고 겹쳐지며 독특한 공감각을 심상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사랑이 ‘사랑의 근사한 정경’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하나의 쉬운 예시를 들어보자. 카페 한 구석에 한 여자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한 남자를 마주하고 있다. 여자는 주저하고, 망설이는 신중한 태도로 무모하게 사랑이라는 말을 그와의 사이에 내려놓고, 남자는 무책임하게 그 행위에 동의하는 화답을 보낸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흘러, 그들의 관계가 완전한 마침표를 찍고, 여자는 더 이상 남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게 된 그 시점 즈음에 여자는 무심코 사랑이라는 말이 내려 앉았던 그 자리에 다시 앉게 된다. 문득 여자는 습관처럼 익숙하고 평범한 이 풍경들이 낯설게 일렁거리는 것을 목격하곤 낯선 ‘기시감’을 느낀다. 그녀는 파손된 과거의 장면을 문득 다시 꺼내게 된다. 무모하게 사랑이라는 말을 던졌던 그 순간, 그 장면 속의 온도, 분위기를 따라 흐르던 음악, 자신의 손위에 포개어 졌던 남자의 손에서 전해지던 감촉과 이리저리 뒤섞여 공기 중을 떠다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향기들이 왜 이리 아름답고 견딜 수 없게 슬퍼지는지 여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우습고 아이러니 하게도 여자는 그 장면의 주인이었던 그 남자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도 없는 데 대책 없이 일렁거리는 그 장면의 부서진 파편을 주워담던 여자는 그 장면의 가장 밑에 묻혀 있던 하나의 단어를 꺼낸다. 사랑. 사랑이 만들어낸 그 정경을 다시는 살려낼 수 없다는 종말에 의식에 파묻힌 여자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 자리를 뜬다. 과거의 구멍 속으로 사라진 그 남자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다. ‘사랑’을 사랑했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던져지는 그 순간부터 사랑을 부른 사람도, 사랑이라 불려 진 그 사람도 사라지고 사랑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치한다. 사랑이 아닌 것들도 사랑으로 포장하면 전부 사랑으로 환원되는 ‘사랑’ 이라는 말의 무게와 크기와 그 깊은 농도에 대해 생각한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사랑이라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크고 무겁고 진한 나머지 본디 그 자리에 있었던 그 대상들을 한계를 넘어서는 무언가로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곤 했다. 그 왜곡에서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것으로 깎아내고, 나 자신마저 이 과정에서 너무 아프게 깎여 들어가야만 하는데 왜 우리는 굳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걸까. s는 여전히 사랑을 알 수 없다.


그렇게 사랑을 생각하며 s는 한참동안 퐁 데 자르가 보이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마 조금 있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미라보 다리를 건너가면서 또 같은 생각을 하느라 다리 앞을 한참 동안 서성거릴 것이다. 갑자기 전화가 울린다. 한국에 있는 s의 애인이다. s의 애인은 s가 파리로 온 다음부터 매일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서 전화를 건다. 아침잠이 많아 고생인 s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왜 이 시간에 전화했냐는 말에 그는 혹시라도 잠 들었을 까봐 전화를 걸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런 짓 까지 해서 내 목소리를 들으려 하느냔 말이야.


- 그걸 왜 물어봐? 당연히 사랑하니까 그러지


맙소사, S는 또 이 사랑은 얼마나 자신을 파먹고, 내 세계를 왜곡 시키려 들까, 그 가늠할 수 없는 크기를 가늠하며 S는 걱정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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