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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원 Jul 25. 2020

죄목은 사랑

 

 


 미경이는 갓 태어난 나를 안고 기쁨보다도 어딘가 크게 어긋남을 느꼈다. 신생아가 너무 연약해 보여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미경이는 방금 태어난 생명의 종말을 생각했다. 아득하고 멀게 느껴져도 언제나 성큼 눈 앞에 다가와있는 끝. 이 아이는 앞으로 몇 겹의 행운에 쌓여 무럭무럭 잘 자라겠지만 그 행운이 없다면… 자칫 당연해 보이지만 절대 당연하지 않은 그 몇 겹의 행운이 없다면… 미경이는 역시 상실과 획득의 세계에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했다.


 그 낭패감은 계속됐다. 불쑥불쑥 튀어나와 온 정신을 쿵쿵 찧어댔다. 어느 누구도 삶을 쉴 수는 없으므로 누구나 매 순간마다 죽음과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하는데, 어린 자식의 진폭은 너무나 선명했다. 막내딸이 다치거나 열이 끓는 날이면 미경이의 마음은 고장 난 TV처럼 지지직거렸다. 꼭 사랑하는 만큼만 불안했는데, 그 점이 가장 괴로웠다.


 5년 후 막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기 위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가 미경이는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막내는 죽음, 한날 한 시에 온 가족이 손을 잡고 죽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러면 아무도 슬프지 않다고 덧붙이는 다섯 살 배기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그런 일은 없어. 그런 행운은 없어.


 유전자를 타고 내려간 자신의 두려움을 가만 둘 수 없었다. 미경이의 손에는 갈색 점과 빨간색 점이 많은데 내게 일일이 자주 세게 했었다. 이 점들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많아질 거야. 이 점들이 많아지면 엄마는 죽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단순한 노화의 표식이었고 사람은 노화하고 노쇠해가다 보면… 미경이에겐 최선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온 몸에 백신처럼 퍼진 은은한 상실의 기운은 나를 단련시켰나? 아니다. 미경이에게만 최선이었다.


 그날 새벽은 지옥이었다. 지옥 같은 것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개가 아픈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전조를 보이긴 했다. 토를 몇 번 했다. 여름이 봄을 바짝 쫓아온 나날이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이라는 생각에 며칠을 두고 봤다. 하지만 개가 아픈 건 날씨 탓이 아니었고 개 안쪽에 축적된 시간이 나를 향해 던지는 피구공이었다. 개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도 나를 핥고 애교를 피웠다. 나를 고문하지 마라. 나는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 나를 제발 미워해. 울면서 개의 머리를 꼭 껴안았는데 고소한 아몬드 냄새가 났다.


 해가 뜨자마자 동물병원으로 갔다. 다행히도 개는 수술만 받으면 살 수 있었다. 개를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의 죽음은 어떤 형태가 되던지 나에게 형벌이 되겠구나. 죄목은 사랑. 수술실로부터 개의 행운이 한 꺼풀 벗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잘 회복한 개와 산책하다가 여자 둘을 만났다. 그들은 천천히 다가와 우리 둘에게 인사했다. 그들은 개를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슬픈 눈을 했는데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우리 장군이보다 조금 작네 그치. 응 조금 작다. 리트리버 키우시나 봐요. 그랬었는데 얼마 전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어요 우리 장군이.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장군이 편하게 갔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자기 이불을 가지런히 펴놓고 그 위에 누워있더라고. 자는 것처럼 갔어요.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였다. 나는 그들이 개에게 마음껏 인사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아프면 안 돼. 건강해야 해. 오래오래 살아야 해. 우리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또 보자. 그들은 쪼그려 앉아 개의 이마에 입 맞추고 일어나 나에게 인사한 후 터벅터벅 멀어져 갔다.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죄수였다.  


 그들을 만난 이후로 자고 있는 개를 한 번씩 깨우는 강박이 생겼는데 모두에게 피곤한 강박이었다. 잠결에 너무 먼 여행을 떠날까 봐 두렵다. 또 잠자는 개의 심장박동을 세어보는데 조금이라도 빠르면 공기가 물처럼 느껴지곤 한다. 개와 함께하는 삶은 행복하고, 고통스럽다. 아까의 말을 정정하겠다. 어쩌면 형기는 이미 시작됐다. 나는 탈옥수가 아닐까. 수사망이 점점 좁혀지고 있는 가운데 어쩔 바를 모르는 탈옥수. 감옥의 이름은 상실, 잠시 맛 본 자유의 이름은 획득이다.


 그렇다면 형기의 시작은 도대체 언제인가? 그 대답은 미경이의 어머니의 어머니, 그의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의 어머니의 어머니… 가 알 것이다. 죄목은 역시 사랑.


2020.07.25,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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