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곳은 양양(襄陽)이었다. 도울 양. 볕 양. 좋은 볕이 있고, 멋진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 밝은 기운의 이름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곳곳에 펼쳐지는 곳이다.
강원도는 어디든 좋지만 도시보다는 한적한 느낌의 시골이 좋았다. 속초에서 양양으로 넘어와 탁 트인 남대천을 건너며 생각했다. ‘바로, 여기라고!!’ 이성과 논리보다 감성과 직관이 먼저 작동하는 사람인지라, 허술한 센서를 ‘촉‘이라 우기며 마음을 앞세웠다.
계곡, 산, 바다, 모두를 가진 곳. 걷는 길마다 회색 콘크리트보다 자연의 지분이 많은 곳. 설악산의 절경을 마주하며 운전대를 잡으면, 조각나지 않은 온전한 하늘이 눈앞에 펼쳐진다. 도시에서 벗어나 또렷하게 계절을 감각하는 매일의 일상을. 두 해의 사계절을 마중하고 보내면서 삶의 속도가 느려졌다. 비교할 대상도, 부러워할 누군가도 없었다. 로컬의 시간은 자연의 속도에 맞춰서 정직하고 느리게 흐른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일상은 아이들에게도 좋았다. 산, 바다, 발길 닿는 모든 곳이 그대로의 자연이다. 특히나 여름은 최고의 계절이다. 바다에 뛰어들고, 모래성을 쌓고, 하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 수 있으니까. 6월과 9월의 한적한 바다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일은 이곳에 살면서 누리는 특권 중에 하나다. 물이 무서워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도시의 아이들이었는데. 어느새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시골의 아이들로 달라져 있다니. 과연 2년이라는 시간이 어떤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될지. 미래의 너희들에게 벌써 묻고 싶어 진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드는 도시의 놀이터가 가끔은 생각났다.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쇼핑몰과 친구들과 놀러 갔던 키즈 카페도. 분명 도시만의 편리함과 즐거움이 있었다. 다만 사는 곳마다 즐길 거리가 달라진다는 차이일 뿐. 지금 사는 곳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아낌없이 누리면 어떨까. 이제는 강원도의 여러 지역 축제와 행사를 구경하며 주말과 연휴를 채운다. 한 푼을 아끼기 위해 집밥을 고수하던 도시 생활자에서, 식비 걱정을 내려놓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행복도 추가되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상으로 리셋. 매일이 여행이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는 여러 장점들이 있다. 작은 학교는 인원이 적기 때문에 한 명씩 모두가 소중하고 귀하다. 고학년은 저학년을 챙기고, 저학년은 형과 누나들을 좋아했다. 누군가의 형이고, 누나이고, 동생이기에 어울리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쉬는 시간에는 다 함께 축구를 하고 놀이를 찾으며, 자기중심적인 마음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배운다.
작은 학교의 일상은 알차고 즐겁다. 매일의 화상 영어와 충실한 교과 수업. 밴드와 바이올린, 코딩과 보드 게임 같은 재미있는 방과 후 수업이 있다. 학교에는 1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세 그루가 있는데, 일 년에 두 번 이 나무에서 트리 클라이밍을 한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외부 체험학습을 가고, 고학년을 위한 2박 3일 수학여행도 있다. 아마도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것이 모두 무료라는 것.
뿐만 아니라 도내, 군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에 출전해 주인공이 되어보는 기회도 많다. 잘하는 일에서 상을 타면 성취의 경험을, 못하는 일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좋은 실패를 배운다.
치열한 경쟁보다 함께 도전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법을, 결과보다 과정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시간. 도전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실패해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부디 이 시간들이 훗날 아이들이 만날 더 큰 도전 앞에서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얘들아, 양양 떠나면 뭐가 제일 서운할 것 같아?”
“급식이요!! “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먹는 일이었으니. ‘급식‘이라는 두 글자에 아이들은 진심이었다. 매일 아침 주간학습안내보다 그날의 식단표를 먼저 확인한다. 지역에서 재배하는 제철 재료들로 만들었으니 신선하고, 맛도 좋고, 양 또한 푸짐하다. 봄에는 딸기를 따고, 쑥을 캐서 떡을 만들고, 여름에는 옥수수를, 가을에는 고구마를, 겨울이 다가오면 배추와 무를 뽑아온다. 계절의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시간을 아이들도 온몸으로 느끼며 지내고 있었다.
느린 사람이었다. 세상의 속도가 버거웠다. 그런 고민을 안고 살다가 우연히 읽었던 <슬로 라이프>는 내게 큰 위안을 주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느려도 괜찮다고.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라고. 과잉 상태에서 벗어나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 보라고 알려주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이 책을. 아이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던 어느 날, 다시 생각해 냈다. 그리고 이 문장이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텔레비전을 켜고 ‘문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자. 즉, 문화의 본래 뜻인 스스로 사는 것을 즐기는 능력을 되찾자는 것이다.
‘스스로 사는 것을 즐기는 능력을 되찾자 ‘
이렇게 생생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았던 적이 언제였을까.
아이들이 인생을 살면서 힘든 날이 찾아올 때면.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가도 된다는 것을.
스스로 삶을 즐기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뒤처져도 충분히 괜찮은 시간.
경쟁에서 잠시 로그아웃했던 시간.
우리들의 로컬 라이프를 기억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