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다니는 작은 학교에는 가족 텃밭이 있다.
‘신청서‘라는 가벼운 종이 한 장이면 2미터가량의 밭이랑 한 줄을 얻을 수 있다. 검정 멀칭 비닐까지 곱게 씌운 완벽한 텃밭을 말이다. “그 땅은 못 써“ 교장 선생님이 마을 어르신들의 만류에도 황폐했던 땅을 직접 일궈 가족 텃밭으로 만드셨다는 놀라운 사실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나 알게 된 이야기다.
그 힘든 과정을 건너뛰었는데도 걱정스러웠다. 집에 있던 식물이 시들어갈 때마다 자신감도 같이 사그라들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래도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면 아이들이 크면서 우리집에도 살아남는 화분들이 생겼다는 것. 이사오기 전에 친정에서 받았던 화분을 건강히 돌려보내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식물도 살려서 나누었다. 숨이 붙은 채로 집 밖으로 살아나가는 식물들을 보며 뿌듯했다. 나도 이제 조오금 식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노라고.
모종을 심는 날은 4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이었다. 학교 수돗가 앞에는 다양한 봄철 모종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추, 깻잎, 쑥갓, 대파, 토마토, 오이, 가지, 고추, 옥수수 등 바람에도 부러질 듯한 여린 모종들을 박스에 조심히 옮긴다. 준비된 텃밭으로 가서 이식기로 구멍을 뚫어서 심고 흙을 덮어주면 된다. 얇은 플라스틱 컵에서 너른 땅으로 적당한 간격으로 자리 잡은 모종들. 여러 번 물을 흠뻑 주고, 아이들 이름이 적힌 나무 팻말을 박으면서 벌써 열매를 수확하는 상상에 젖어든다. ‘아, 나에게도 밭이 생기다니!!‘
밭은 함께 자라는 공간이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오이와 호박의 넝쿨손이었는데. 지지대가 없어서 갈 길을 잃은 옆 집 호박이 우리 집 대파를 부여잡고 일어서고 있었다. 식물의 성장과 생명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눈으로 확인했던 순간이다. 한편으로 ’함께 자란다‘는 의미는 병충해를 같이 겪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옆 밭의 오이와 똑같은 증상으로 진딧물이 생기고, 잎이 누렇게 변하기도 했다. 때로는 순탄하지 않은 과정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 관심을 갖고, 돌보고,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이 자주 바빠지는 나에게 텃밭은 인내를 배울 수 있는 장소였다.
마음이 심란한 날은 텃밭으로 달려간다. 몸을 움직여 물을 주고, 작물들을 살피고, 단단하게 여문 채소들을 따다보면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있다. 시끄러웠던 마음도 잔잔한 물결처럼 고요해져 있다.
이른 새벽, 제 손으로 딴 상추와 오이를 먹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인생이 별 건가. 매우 대단치 않은 일이 실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마음을 어디에 쏟으며 살 것인가는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자꾸 뿌옇게 흐려지는 초점을 바로 잡는 방법은 단순하고,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텃밭에서 모든 고민은 서서히 작아지고 가벼워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새벽 6시 반, 물을 주러 가면 부지런한 교장 선생님께서 나와 계신다. 토마토 곁순은 어떻게 따야 하는지, 물을 좋아하는 작물은 어느 것인지, 텃밭 초보자는 귀를 열고 열심히 배우는 시간이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공동 텃밭에는 아이들의 체험을 위해 고구마가 심어져 있는데, 어느덧 무성해진 고구마의 잎과 줄기를 보며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고구마 줄기도 한 번 뜯어보세요"
‘아, 맞다. 고무마 줄기!‘ 좋아하는 채소이지만 선뜻 엄두가 나질 않았다. 손질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의 오후 시간이 삭제되고, 까맣게 물들 짧은 손톱을 내려다 보며 머뭇거리다가 그 날은 발길을 돌렸다.
이 많은 잎과 줄기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다음 날 텃밭을 서성이다가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지나가는 어르신께 여쭤보니. ”추석지나면 다 걷어야 돼. 부지런히 뜯어먹어. 그래야 고구마에도 영양분이 잘 가.“ 라는 말씀을 남기며 유유히 자리를 뜨셨다.
추석이 지나면 이 많은 줄기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지는구나. 큰 고구마를 캐고 기뻐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한다. 그날 이후 고구마 줄기 전도사가 된 나는, 친한 언니들과 날을 잡아 고구마 줄기를 뜯으러 갔다. 수확량보다 비싼 새참 가격이 문제였지만 넷이여서 즐거웠고, 능률도 배로 올랐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손질 진행 상황과, 정성들여 만든 요리를 사진으로 공유했다. “오늘 고구마 줄기 데이였네!” 그렇게 명명해준 언니들과 함께 추억으로 남을 하루였다.
“ 뉴스 보니까 강원도 서리 내린다던데. 곧 고구마 캐야 될건디…”
어느 날, 늦은 저녁 아버님께 전화가 왔다. 텃밭에 갈 때마다 아버님 생각이 나는 건, 도시 며느리의 계절 감각은 아버님의 택배 덕분이었으니. 매해 계절마다 택배로 양파, 시금치, 당근, 감자, 호박, 옥수수, 감, 땅콩, 참깨 등 직접 농사 지으신 채소가 가득 담아 보내 주셨다.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양이 많아서, 가까운 이웃들에게 나눔하는 일도 도시에서 즐거웠던 일 중에 하나였다.
그 말씀을 듣고 고구마 줄기의 마지막 수확을 노리며 학교에 전화를 했다. 아버님은 정확하셨다. 곧 걷어낼 거라고. 정해진 날짜를 듣고서 단디 준비를 하고, 친한 언니와 텃밭으로 향했다. 동네 어르신들이 텃밭 관리를 도와주셨는데, “이게 더 맛있는 부분이야!”라며 좋은 것을 골라 우리에게 주셨다.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은 잎을 떼어내 예쁜 종이백에 담고, 내가 가져갈 것은 급하게 줄기 더미 상태로 트렁크에 실었다. 대체 이게 무어라고. 온라인 마켓에서 파는 데친 고구마 줄기 한 줌의 가격 3,480원을 알면서도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 사이 고구마 줄기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 생겼났기 때문이다. 이제 이 고구마 줄기를 예쁜 꽃다발처럼 사람들에게 건네줄 차례다!
내게 텃밭의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고구마순 김치아니였을까. 매년 추석이면 어머니는 큰 통 가득 고구마순 김치를 싸주셨는데, 결혼하고 처음 먹어본 이 음식이 너무도 신기하고 맛있었다. 천천히 줄기를 까고, 절이고, 양념해서, 어머니의 맛을 흉내내어 본다. 그 김치를 내 손으로 직접 담갔을 때의 감격스러움이란. 맛도 제법 그럴듯했다. 몇 일만에 고구마순 김치는 동이 났으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허전한 1프로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긴 세월에 걸쳐 완성된 어머니의 그 찐한 손맛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는가.
어쩌면 나는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내 작디 작은 손과 마음으로는.
꾹꾹 눌러 보내주셨던 채소와 음식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을.
평생 일만 하시면서 가족들을 챙기셨던 어머니는 올해 몸이 안 좋으셔서 일을 그만두셨고, 더이상 어머니의 고구마순 김치를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받아왔던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텃밭을 가꾼 그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