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일 Nov 13. 2024

어쩌다 마흔의 스노우보드



여름이 끝날 무렵 이사를 왔다. 큰맘 먹고 강원도에 왔는데 해수욕장 폐장일이라니. 여름 바다를 놓친 대신 그동안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아이들은 아빠 덕분에 강릉 경포호와 속초 영랑호를 돌며 두 발 자전거를 마스터했고, 가족이 다 함께 등산을 하는 동안 계절은 서서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었다. 바닷가의 겨울도 나름의 낭만이 있었지만, 겨울 바다의 파도는 한없이 높고 바람은 매서웠으니, 멀리서 바라보는 일에 만족해야 했다.



겨울을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면 딱 한 가지 있다. 모든 운동에 유능하지만 일에 바빴던 남편과 무언가 배워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내가, 유일하게 같이 할 수 있는 것. 바로 연애 시절 함께 탔던 ’스노보드‘다.



“언제 아이들이랑 스키장을 가보겠어?” 이왕 강원도에 이사 왔으니 스키장은 가야 하지 않겠는가! 도시에서 스키장을 가려면 이동 시간도 많이 걸리고 숙박비가 들지만,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키장이 40분 거리에 있으니, 주간권으로 실컷 즐기다 돌아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당당히 말해 놓고는 걱정이 슬금슬금 쌓인다. 어쩌다 마흔에 다시 스노보드라니. 이게 가능한 걸까.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려오고, 뼈가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십여 년 전에 탔던 보드 감각이 남아있을까, 슬로프에 서기 전까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몸과 체력에 대한 걱정도 앞섰지만, 마음의 저항도 문제였다. 좀 더 현실적으로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과 무게를 가진 중년이라는 분기점에 서 있으니. 나이의 앞 숫자가 바뀐다는 부담감이 도전하는 마음을 자꾸 움츠러들게 했다.



그럼에도 도전하는 용기에는 적절한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차가 없어 걷는 일이 생활화되었기에, 가을 등산을 의외로 가볍게 해냈다는 것. 그리고 일 년 만에 물구나무를 섰을 때 몸은 균형 감각을 다시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원래부터 체력이 좋거나 유연한 사람도 아니었다. 허리를 숙여도 팔이 허공에 있을 정도로 유연성이 엉망이었다. 손목이 너무 아파 스트레칭을 시작했고, 유튜브 요가로 20분씩 유연성을 길렀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 3분, 1년 반을 물구나무에 투자하니 벽에 기대지 않고 서는 날이 찾아왔다.



그러니 모든 변명을 일단 쓸어 담아 버리자.  나이가 어떻든, 언제 시작하든, 운동 감각은 몸 어딘가에 새겨지는 법이니까.



에세이 <무한도전>에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러다가, 일본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44살에 처음 스노보드에 도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에 포기했다가, 우연한 기회로 마흔이 넘은 세 사람이 만나 스노보드에 도전하는 가볍지만 유쾌한 에세이다. 위화감이 전혀 없는 스노보드 웨어 핏과 중후한 멋까지 느껴지는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겼다. 덕분에 나도 용기를 내어본다. 벌써 두근두근, 하얗고 폭신한 슬로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십 년 만에 다시 스키장 갈 준비에 돌입했다. 먼저 중고로 스노보드 웨어를 구했고, 합리적인 가격의 장갑과 보호대를 주문했다. 엄마를 잃어버리진 않을까 과한 염려가 담긴, 눈에 잘 띄는 코랄색 비니도 함께다. 평소 입는 후드티를 껴입기로 하고, 안 쓰던 친환경 마스크를 꺼내 새로 사는 일은 최소화했다. 가격이 나가는 고글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부부의 실력을 검증하는 일이었으니. 아니, 실력까지도 아니고, 그냥 잘 내려올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드디어 시즌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남편과 나는 임시로 알바 중이었기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평일의 어느 날, 스키장으로 향했다. 심지어 다른 학부모 한 분도 함께였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어른들이 스키장에 놀러 가는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니.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남편은 착실한 직장인이었고, 나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지냈는데, 이런 날도 찾아오는구나 신기했다.


그렇게 마흔의 어른들은 잠시 젊음을 착각하는 시간을 허용하며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갔으니.




슬로프 정상에 서니 콩닥을 넘어 쿵닥으로 심장이 뛰쳐나올 기세다. 제일 떨리는 순간은 스트랩을 채우고 일어선 다음, 슬로프 경사의 시작점에 서는 순간이다. 서자마자 넘어지는 창피는 당하지 않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




‘오. 오. 오!’ 기특하게도 일어서진다. 양다리와 양 발이 데크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한 단계 나아가 스무스하게 턴도 가능했다. 몸은 한번 배운 것은 기억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깊게 엣지를 쓰거나 스피드를 즐기는 일은 무리였다. 어딘가 부러지면 회복이 더딘 나이라는 걸 알기에. 십 년 만에 대단치는 않지만, 녹슬지 않은(?) 보드 실력을 검증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전, 유튜브로 기초 동영상을 보도록 했다. 보드 타는 방법도 머릿속에 이미지화하기를 바라면서. 다 함께 스키장으로 향했던 대망의 날. 각자 한 명씩 맡아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물을 무서워했던 아이들이었는데, 눈에서 넘어지는 일은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배우는 속도는 차원이 달랐고, 우리는 자신감이 붙었다. 두 시즌 동안 조카들을 강원도 스키장으로 초대했다. 이사 와서 함께하지 못해 미안했는데, 이렇게라도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비록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전문 촬영가가 따라붙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는 남편이 있었으니. 멀리 리프트 위에서 나와 둘째를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넘어질까 걱정되는 마음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내려가는 아이를 기특하게 바라보는 엄마가 뒤에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림자 같은 엄마 안전요원이 없어도 괜찮은 날이 왔다.



겨울이면 코감기로 고생했던 아이들은 강원도의 맑은 공기와 튼튼해진 체력으로 추운 겨울을 만끽했다. 지금까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새로운 경험으로 채우며, 소중한 추억이 새하얀 눈처럼 쌓여갔다.







스노보드는 아이들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오랜만에 즐겁고 특별한 시간이 되었으니. 히가시노 게이고는 스노보드를 배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노보드가 재미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스노보드에 빠져들었던 진짜 이유는 ‘향상’이었다고. 아주 작은 것을, 어제 못한 것을, 오늘 해냈다는 기쁨이었다고.



스노보드가 아니면 어떠한가!

안 되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나에게.

쓸모와 효용을 생각하며 주저하는 마흔의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가끔은 마음이 가는 대로 아이처럼 시도해 보는 일.

두려움을 조금씩 밀어내며 나아가는 동안,

잃어버렸던 호기심과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마흔인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