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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Nov 27. 2024

주말부부, 따로 또 같이 자립의 시간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주말부부. 과연 2년 동안 떨어져 사는 시간은 어땠을까. 내가 생각하는 주말부부의 최대 장점은 자유와 집중이다. 일주일에 5일이라는 평일을 각자의 자리에서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니. 아이들 돌봄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지만,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배움의 시간을 획득했고, 일이 점점 더 바빠지는 남편은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렇게 평일은 각자의 성장을 위한 윈윈의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물리적 거리는 할 수 있는 일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어주었다. 생애 처음으로 독감에 걸려 끙끙 앓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씩씩하게 지나갔다. 떨어져 있는 일은 도움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일인 동시에 자립심을 키우는 일이기도 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운전, 카센터에 가는 일, 집을 관리하는 일 등, 하나둘씩 못했던 일들을 해내는 뿌듯함이 늘어갔다. 기대하는 마음을 접으니, 그림자처럼 따르던 서운함과 실망감도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



그렇게 각자의 평일을 알차게 누리고, 금요일의 해방감으로 만나는 가족은 서로가 더 반갑다. 주간의 이슈들을 꺼내 공유하고, 주말에는 여행하듯 함께 즐길 수 있었으니. 한 지붕에서의 10년보다 주말부부로 공유했던 2년이란 시간의 밀도가 더 촘촘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떨어져 지내는 동안 예전의 일상에 대해 돌아보기도 했다. 남편은 일에 몰입하는 만큼 다른 일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 스타일이었고, 모든 일을 세심하게 돌보는 나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십 년 동안 각자 해오던 일만 묵묵히 했더니, 가운데로 흐르는 강의 폭이 넓어지면서 점점 더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상대가 하는 일을 당연하게만 여기며 살았던 것은 아닌지. 세탁기를 못 돌리는 남편과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아내로 살아왔으니, 주말부부의 후반부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서로의 역할을 바꿔보기로 했다.






“아니, 하루가 왜 이렇게 바빠..”



일요일에 밀린 빨래를 돌리고, 삼시세끼를 차려 먹고 치우는 고단함을 느껴보았던 남편. 1인분의 집안일과 먹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느꼈을 터. 회사 일이 아니어도 하루가 바쁠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그 일요일의 아침,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강원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장거리 운전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2년 동안 장거리 운전을 하며 허리를 두들겼던 남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스쳤다. 주말부부는 서로의 역할에 대해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배움의 기회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새로운 사실도 깨닫게 되었으니. 우리는 너무도 다른. 아니,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년 동안 바쁘게 살던 때는 미처 몰랐던 일이었다. 주말을 함께하며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지니, 그간의 소통 부족 문제가 수면 위로 서서히 떠올랐던 것이다. 핑퐁핑퐁 오고 가야 할 대화가 툭툭 끊기고, 대화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했다. 어느 날 우연히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정확히 논리형 2명과 감성형 2명이 살고 있다는 것을. 남편과 첫째는 대문자 T형으로 대단히 이성적이었으니, F형으로 지극히 감성적인 나와 둘째가 남편과 가끔씩 삐그덕거렸던 것이다.



평일에 떨어져 있을 때 과거의 대화를 복기해 보았다. 환기와 보류의 시간으로 삼으며. 때로는 떨어져 있는 애틋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주로 감정이 앞섰던 표현에 대해 반성했고, 혼자서 은근히 기대하는 일도 접었다. 부탁이 있으면 주말에 만나 담담하고 침착하게 의견을 전달했다. 남편도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나의 말을 공감하고, 진지하게 듣는 연습을 하면서 조금씩 부딪히는 일이 줄어들었다. 주말부부라는 거리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변화의 시간을 만들어 준 셈이다.




인생의 중요한 이야기를 함께 할 사람은 결국 남편이다.

아이들의 성장, 양가의 일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관한 이야기까지도.




떨어져 지냈던 시간은

오롯이 혼자 서 있을 수도 있고,

힘들 때는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적절한 균형을 잡아보는 좋은 배움의 기회였으니.



다시 함께하는 시간이 왔을 때,

그 배움이 ‘배려’라는 형태로 잘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같은 방향을 보며,

따로 또 같이 나아가야 하는 우리는, 부부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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