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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Dec 04. 2024

마흔이지만 함께 자라요


남편이 새로운 제안을 받아 도시를 떠날 무렵, 여성구직활동 지원사업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 건 우연이었을까. 자격 조건이 충족된다면 도시보다 낮은 경쟁률로 통과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쩌면 나의 오랜 경력 단절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신청서를 작성하여 보냈다.



한 달 정도의 기다림 끝에 합격이라는 행운을 얻었다. 마흔에 나를 위한 배움의 지원이라니. 로컬의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여러 배움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회를 대신 받은 것일 수도 있으니, 부단히, 열심히, 즐겁게 배워보리라 다짐했다. 길고 길었던 끝자락의 겨울을 보내고, 저만치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무엇을 배울까 생각하다가, 공부에 대한 감을 살리고 싶었다.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를 배울 때 독학이라는 방법에 의지하며 살았다. 독학의 가능성을 처음 알게 해 준 일본어. 아마 15년은 지났을, 일본어능력시험 1급 자격증이 집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테다. 일본어를 듣지도, 말하지도 않은지 무려 10년은 되었을 터이지만, 배움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의지가 슬슬 차올랐다.



하루 만에 도착한 문제집의 두께에 살짝 풀이 죽었다. 그렇지만 연필의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외국어를 쓰는 시간이라니. 선선한 새벽 6시의 공기를 느끼며, 단어 외우는 시간이 그렇게나 좋았다. 아들의 영단어와 엄마의 일본어로 채워진 아침의 시간. 바다를 마주하며 공부하는 시간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2주 정도 2급 문제집과 친분을 쌓다가, 어쩐지 1급도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기왕이면 예전 급수를 다시 증명하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공부를 시작한 지 3주 만에 JLPT 1급 시험을 접수했다. 단어를 부지런히 외우고, 청해는 뉴스와 방송을 찾아보고, 독해는 시간 배분을 위해 모의고사를 함께 풀었다. 3개월 동안 일상의 틈새시간을 일본어로 채워나갔다.  


어느 여름날, 춘천의 한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수능 보러 온 듯한 긴장감에 심장이 계속 두근거렸다. 곳곳의 빈자리를 보면서 ‘나도 오지 말걸’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래도 보러 왔으니, 잘 치를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결과야 어떻든 도전이 중요한 거라고. 조금은 연륜이 쌓인 마흔의 기개를 되찾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나가자, 저 멀리 학교 밖에서 손을 흔드는 남편과 둘째가 보였다. ‘엄마, 드디어 시험 끝났어!!’



한 달 뒤 발표된 점수는 당당하게 내밀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기어코 1급 커트라인을 넘겼으니, 스스로에게 칭찬도 해주고 싶었다. 빳빳한 종이의 합격증이 우편으로 날아왔을 때의 감격이란. 마흔에도 자발적인 공부의 즐거움은 가능하다고. 배움에 있어서 늦은 때란 없다는 걸, 일본어를 다시 만난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6개월 동안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자고 생각했다. 일본어뿐 아니라, 다른 온라인 클래스 수업과 관심 있던 조향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해보고 싶던 일은 따로 있었으니. 잘했던 일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보다, 못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마주하는 시간이 더 기다려졌다. 그것은 바로 동경의 대상이기도 한, 그림 그리기였다.



”그림을 너무 못 그려서 왔어요…. “


마흔에 어린이가 된 기분이었다. 누구나 못하는 일 하나 정도는 있기 마련인데, 못하는 일들 앞에서 유난히 주눅 드는 나에 대해 궁금했다. 그런 먼지 쌓인 마음을 들여다보고, 툭툭 털어낼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그리는 일이 어렵고, 미술적 지식이 1도 없는 초보자를 위해 선생님은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다양한 종류의 연필, 콩테, 목탄을 만지고, 종이에 그리면서 차이점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리고 미션을 제안하셨다. 그림을 어려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기 위한 재미있는 방법을. 마음에 드는 도구를 하나 골라서, 그릴 대상을 하나의 선으로 그리시오. 단, 종이를 내려다보지 않아야 한다고.




차마 엄마가 그렸다고 말할 수 없었던, 첫 시간의 부엉이를 시작으로. 색연필, 아크릴, 파스텔, 과슈, 판화 등 여러 도구들을 다뤄 보았다. 비록 3개월 동안, 주 1회 수업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기적은 없었지만, 어려워하는 일을 계속해보는, 그 시간 자체가 힐링이었다고. “에이~ 괜찮아요. 모두 스타일이 다른 건데요. 계속 그려보면 돼요.” 여전히 작고 신중하게 그리게 되는 나에게, 선생님이 해 준 이야기는 큰 힘이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빈틈과 서투름에 슬며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자신의 못난 구석을 너무 미워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못하는 일에 대한 마음의 저항을, 주홍글씨처럼 새겨놓고 살지는 않았는지. 그림을 그리며 깨달았다. 문제는 자신의 빈틈이 아니라, 빈틈에 대한 시선이었다고. 진짜 어려워서가 아니라, 어려워하는 마음이 걸림돌이 되어 한 발짝 내딛기가 더 힘들었던 거라고.





사실은 제일 어려워하는 일을 꼽자면, 글쓰기였다.


그리고 배우는 시간을 통과하며 알게 되었다.

완벽한 상태는 결코 오지 않을 거라는 걸.

그저 계속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걸.



못하는 일에서 덤으로 얻은 ‘작은 용기’를 갖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를 개설해서 10개월 동안 계속 글을 써왔다. 이제는 나의 ’허술함‘ 가볍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그러니, 마흔의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못해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마흔에도 우리는 아직 자라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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