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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Nov 20. 2024

남편의 두 번의 퇴사로 깨닫게 된 것들


“일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대화를 나누다가 남편의 말에 일시정지가 되었다. “프로젝트 하나 맡아서 끝내면 재밌지!” 일이 재미있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이곳에 오게 된 이유의 시작은 남편의 그늘진 얼굴이었으니까. 우리 스스로 진단명을 번아웃으로 내리고, 내려온 지 몇 달 만에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다시금 깨달았다.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처럼 어딘가에 소속되면 시들어가는 사람이 있지만, 일을 해야 생기가 도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익숙한 이야기였다. ‘일은 곧 재미’라는 공식을 대입하는 분이 한 분 더 가까이에 계셨으니.



“어머니, 일하는 거 안 힘드세요?”

“재밌어! 일하면 얼마나 재밌는데!”



그런 시어머니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그동안 너무 바빴기에 쉴 줄 몰라서라고 그렇다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쉬엄쉬엄하라고.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이유에는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남편은 일에 몰입함으로써 에너지를 얻고, 활력이 생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 번 일을 맡으면 끝까지 해내는, 진득한 성실함을 가진 프로 일잘러였다는 것을.



도시에서 퇴직을 결정하기 전 자주 답답함을 토로했다. 일의 힘듦보다도 변하지 않는 회사의 분위기에 대해.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해도 수용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15년 근속했던 회사에서 버티는 것도 더 이상 답은 아니었다. 남편의 번아웃에 대한 처방전으로 바로 ‘이직’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어딜 가도 금세 적응하고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이 잠시 쉼표 같은 시간이 있기를 바랐다. 소진했던 내면의 에너지를 회복하고, 빳빳해진 마음을 유연하게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집의 심플한 가계부가 그 시간을 잠시 지지해 줄 터이니.



내려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로컬에는 전혀 다른 직업들이 있다는 것을. 받았던 연봉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일 거라는 것도 예상했다. 실제 내려와서 깨달은 점은 창업이 아닌 이상 로컬의 직업은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이었다. 내려오자마자 일을 구했지만, 관광지의 특성상 주말 근무가 많다는 것도 간과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남편은 도시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는 걸, 여러 일과 경험을 통과하면서 본인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로컬의 여유로움을 누리는 일은 좋았지만, 남편에게 ‘일의 즐거움’을 되찾아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짧은 경험으로 새기고, 몇 달 만에 두 번째 퇴사를 결정했다.



다행히도 이후에 남편에게 좋은 운이 따라왔다. 도시에서 새로운 제안을 받게 되었는데, 예전부터 도전해보고 싶었던 분야의 일이었다. 두 가지의 갈림길이 놓여 있었다. ’ 어떻게든 가족이 함께 할 것인가 ‘와 ‘도전해 보고 싶었던 도시의 제안을 따라갈 것인가’. 결정은 남편에게 맡겼고, 남편은 도시를 선택했다. 나는 지지하기로 했다. 반년 동안의 경험과 시간이 남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고 믿었으니까.



과감하고 무모했던 두 번의 퇴사에 후회하지 않는다. 첫 번째 퇴사는 흐름을 바꾸는 단호한 결단으로, 두 번째 퇴사는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기에. 그 누군가에게 감히 권할 수 없는 일이다. 굳이 그렇게 부딪혀봐야 아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벽을 마주하는 일이 백 마디의 충고보다 와닿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번 경험을 통해서 얻은 의외의 수확은 마음의 여유였다.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에 상관없이, 다르게 살아 볼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를. 세상 어딘가에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고, 결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 지를.




새로운 일이 결정되고, 올라가기 전까지 한 달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진짜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홀로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고,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동해안의 새해의 일출을 함께했다. 올라가기 전에는 후진항 대보름맞이 행사에서는 함께 소원을 빌었다.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았다. 일의 즐거운 리듬에 올라탈 생기 있는 삶이 도시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나답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남편의 두 번의 퇴사는 그런 시간이었다고 믿는다.



매 순간 최선을 선택할 수 없더라도 괜찮다고.

잠시 들렀던 경유지도

에둘러 돌아갔던 우회로도

앞으로 걸어야 할 긴 인생 앞에서, 좋은 실패로 남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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