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사는 일에 익숙했다. 선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꿈틀대는 무언가를. 자신만의 질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고, 티비로 보며 살았다. 그러다 때마침 코로나로 사람들 간의 거리가 자연스레 멀어졌고, 혼자 있는 시간이 몇 배로 늘어났다. 뒤늦게라도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불량한 마흔 앓이였을까. 혹은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나를 조용히 흔들었는지도 모른다. 꾹꾹 눌러 담았던 주머니 속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물음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나는 그 ’ 누군가 ‘가 되고 싶었다. 나의 질문에 따라 살아도 괜찮을 용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 인생에 있어 어떤 해는 질문을 던지는 해이고, 어떤 해는 답을 주는 해이다 ‘ 미국의 작가 조라 닐 허스턴의 말처럼, 나에게 있어서 지난 몇 년의 시간은 질문하는 해였고, 지금부터는 답을 얻을 시기가 되었다고 믿었다. 해마다 관심 가는 주제를 따라서 심리, 미니멀, 환경, 경제에 대해서 고민했고, 떠나오기 전까지는 창의적으로 사는 일에 대해 골몰했다. 나만 빼고 남들은 다 가진 것 같은 창의성.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기꺼이 실패할 기회를 주는 일. 다르게 살아 볼 용기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온 가족 모두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강원도로 이사를 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는 이 질문이 좋았다. 도시의 선선한 관계에서는 무례할 수도 있는 이 질문이, 이곳에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니까. 단조로운 무채색의 일상에서 무지개 빛 여행자의 감각으로 지내는 일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생각해 보니 신기한 일이다. 도시에서는 사는 동네, 아파트 평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사를 왔다면 ‘어디에서‘가 중요하지, ’ 어떻게’라는 이유까지 깊숙이 파고들지 않았다. 내가 가진 질문들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현실성이 떨어졌다.
그런 면에서 로컬은 매력적이다. 의외의 모습을 어딘가에 꼭꼭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든다. 반듯한 도시에서는 보일 수 없었던 이상한 구석을. 보통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 용기라는 공통분모 이외에는 떠나고 싶었던 이유도, 이곳에 온 이유도 저마다 달랐지만.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가 인생 조금 다르게 살아봐도 괜찮다고 지지받는 기분이었다. 라이프 스타일, 교육의 방향성, 건강한 삶에 대한 각자의 고민을 열어 보이길 주저하지 않는 열린 사람들. ‘어떻게’ 왔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단답으로 끝나지 않는 질문들을 나누며 신이 났다. 그동안 묵혀 두었던 고민을 꺼낼 수 있다는 해방감에 숨이 트였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고, 어쩌면 로컬에서 답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괜찮을 실험적인 날들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떠나온 만큼 언제든 떠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로컬의 자유로움까지도 좋았으니까.
어디서 왔는지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
인생의 한 챕터를 내 마음대로 써 내려갈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
‘어떻게’ 살아볼까에 대한 설렘이 이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