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이사였다. 태풍 끄라톤의 북상을 예의주시하면서 하루에 몇 번씩 일기예보를 새로고침했다. 맑음에서 비로, 비에서 다시 흐림으로, 변덕스러운 예보 따라 마음도 불안정한 한 주였다. 이사 당일 아침은 다행히도 맑음. 아침 8시 20분 이사 트럭은 도착했다. 전날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둔 나의 준비성과 일사불란한 신속함을 장착한 이삿짐센터의 콜라보로, 이사는 1시간 만에 끝났다. 9시 20분 트럭은 다시 출발했다. 이삿짐은 도시로 향했다. 남편을 향해서.
쓰다 만 매거진, <조금은 느슨하게 살고 있습니다>를 놓아두고 죄책감과 자괴감 사이에서 열심히 놀고 새롭게 살았다. 핸드폰 앨범의 수 천장의 사진을 백업하면서, 그 증거들을 추억한다. 다소 어색했던 아이들의 표정은 사진 속에서 만개한 꽃처럼 피어있었고. 언제나 활짝 웃는 남편에 비해, 좀처럼 웃지 못하던 내 얼굴에도 제법 입꼬리가 힘껏 올라가 있었다. 모두 조금씩 달라진 우리가, 그곳에 남겨져 있었다.
강원도에 이사 온 지 2년이 지났다니. 과연 이렇게나 흠뻑 즐겼던 날들이 내 생애에 몇 번이나 있었을까. 옭아매고 있던 의무와 시선을 벗어던지고 내 맘대로 살았던 시간이. 여러 관계들에는 물리적 거리가 생겼고. 조금씩 희미해지는 사람들과 멀어도 더욱 진해지는 관계로 나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에게서 새로운 영감을 얻고 배웠다. 삶에는 다양한 모양이 있다는 것을.
‘자, 그럼 앞으로도 이곳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살겠습니다’라고 해야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강원도로 이사 온 이야기를 쓰다가 멈췄는데, 어느덧 강원도에서 다시 이사 가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니. 홀가분하게 내려왔지만, 다시 올라가는 마음에는 아쉬움이 먼지처럼 달라붙는다. 그럼에도 알고 있다. 가족 모두를 위한 결정이었으니, 이제는 의견을 조율하면서 최선의 답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곳에서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싶다는 첫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올 겨울을 마지막으로 도시로 올라갈 결심을 했고, 이삿짐만 먼저 올려 보내는 기이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유한함이 가져다준 애잔함을 동력 삼아 거꾸로 써 내려가기로 했다. 덕분에 나에게도 글을 정리할 몇 달의 여유가 생겼다. 마음이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다.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써야 하는 이유와 쓰지 않아도 괜찮을 이유가 매일 만나 부딪힌다. 그럼에도 쓰고, 정리하고, 추억하고 싶다는 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쓰기의 원동력은 언제나 마음이니까. 불씨가 사그라들기 전에 바람을 호호 불면서 써 내려가야 한다. 쓰지 않아서 남을 후회가 더 괴롭기 때문에.
사람과의 이별만이 슬픈 게 아니였다. 정든 도시와의 헤어짐도 생각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았던 이유는 오롯이 누리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였다고. 그리고 이제는 쓰면서 잘 떠나보내야 할 때라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이곳의 창은 거대한 액자이다. 매일 아침 다른 그림이 걸리고 살아서 움직인다.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바다와 하늘,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라데이션이란 마법을. 이제는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쓰면서 다시 추억해야지. 이곳 양양에서의 생활은 쉼이었고, 소풍 같은 시간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