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이웃 나라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여행 1화

by 김지현

12월 16일 새벽 2시. 택시를 타고 호찌민 시내의 여행자 거리에 내렸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여관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둘러보니 여관간판이 여럿 보였다. 여관 초인종을 누르자 종업원이 자다 깬 얼굴로 셔터를 올렸는데, 더운 나라답게 입구엔 문 없이 덜렁 셔터만 있었다. 방에도 창문 없이 덧창만 있었는데 창문 없는 창에 덧창을 닫고 누우려니 속옷을 안 입고 겉옷을 입은 것처럼 허전했다.

21시간의 긴 여정 끝이라 몹시 피곤했다. 그런데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지척에서 닭이 울기 시작하더니 30초 간격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아아아, 정말이지 닭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간신히 잠이 들긴 들었나보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잠을 깨보니 아침이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종업원이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를 하고 있었고, 밖에서는 오토바이들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질주하고 있었다.

도로마다 수십 수 백 대의 오토바이가 한꺼번에 내달렸고, 승용차와 버스는 쉬지 않고 경적을 울렸다. 다들 미친 것 같았고, 나는 그 소음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영화 첫 상영을 하자마자 떠나온 길이라 조용히 쉬고 싶은 바람뿐이었는데, 그만 세상에서 제일 시끄러운 도시에 오고만 것이다. 도로를 피해 뒷골목을 찾아들어갔다. 그러나 오토바이들은 좁은 골목길을 자유자재로 누비고 다녔고, 문이 없이 열린 집 안에서는 집주인들이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중심가를 벗어나보기로 했다. 한산한 변두리를 찾아 한 방향으로만 걸었다. 그러나 한 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곳은 백화점이 있는 시내 한 복판이었다. 안 되겠어서 시내버스를 탔다. 가다가 어디든 한산한 곳에 내리려고 했지만, 내릴 곳을 찾지 못한 채 종점까지 가게 됐다. 종점은 서울의 동대문시장 같은 곳이었다. 가게마다 플라스틱 바구니며 장난감들이 거대한 꽃다발처럼 매달려있었고 도로에선 높은 짐을 실은 오토바이들이 차선을 무시하고 달렸다. 당연히 사고가 났다. 수 십대의 오토바이들이 경적을 울리며 아우성치는 걸 보면서, 호찌민을 떠나기 전엔 그 소음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걸 알았다.


도망치듯 호찌민을 떠났다. 바로 캄보디아로 넘어가기로 했다. 버스로 6시간을 달려 캄보디아와의 국경도시 쩌우독에 도착했다. 숙소를 정해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깼을 때는 창밖으로 동이 트고 있었다. 쩌우독은 메콩삼각주에 있는 시골마을이다. 어디나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이지만 인구가 적어지니 오토바이 수도 적어졌다. 오토바이 소음에서 놓여나자 비로소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더운 나라에선 아침이 일찍 시작됐다. 거리에는 아침을 파는 노천식당들이 들어섰고 식당마다 국수를 먹는 손님들로 붐볐다. 손님이 제일 많은 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천식당에서는 쉽게 접고 펴고 그림자를 따라 들고 이동하기 좋게 가벼운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썼다. 플라스틱의 광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오래된 것들이었다. 플라스틱 그릇도 오래 돼 잔 상처가 많았는데, 상처가 나 패인 홈마다 까맣게 때가 껴있었다. 모든 게 정말 더러웠다. 음식에 머리카락이 든 건 기본이고, 주인은 이 손님이 먹다 남긴 소스를 저 손님 소스에 합치거나, 바닥에 쏟아진 다진 고추를 낱낱이 주워 음식에 넣는데 아무 주저함이 없었다. 어느 집이나 휴지통 없이 쓰레기는 일단 바닥에 버렸다가 한꺼번에 쓸었다. 그러다보니 장사가 잘 되는 집일수록 바닥이 난장판이었다. 화장실도 따로 없었다. 손님은 물론 식당주인도 아무 데서나 오줌을 누고 그 손으로 음식을 날랐다. 한국에서라면 숟가락을 탁 놓고 일어설 상황이었지만 한국이 아니기도 한 데다, 그런 걸 문제 삼고 싶지 않을 만큼 국수가 맛있었다. 현지의 쌀국수는 서울에서 먹던 것보다 허브가 다양하고 풍부해서 맛이 훨씬 가볍고 상쾌했다.

후루룩 국수를 먹고 일어나 걷는데 카페에서 큰 소리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들여다보니 9시가 안 된 시간인데도 카페 안이 손님들로 가득했다.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러 온 것 같았다. 그들 틈에 끼어보고 싶어서 겨우 빈자리를 하나 찾아서 앉았다. 뜨거운 블랙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말이 안 통해 설명 그림을 그려 종업원에게 보여줬다. 그러나 종업원이 가져온 건 아이스 카페 라떼였다.

10시가 가까워지면서 카페엔 하나둘 빈자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시간에 만나 밥 먹고 차까지 마신 친구들은 3차로 어딜 갈지 궁금했다.

밖으로 나오니 벌써 햇볕이 뜨거웠다. 근처 고등학교 마당에 나무 그늘이 시원해보여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늘 아래 시원한 돌 의자에 앉아있자니, 어디선가 수위가 나타났다. 키가 작고 만만한 인상의 그는 내게 무슨 말인가를 전하려 애썼다. '외부인은 나가주세요.'라는 말인 줄 짐작하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었더니, 그는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답답해하면서 가버렸다. 잠시 후 학생들이 빗자루를 들고 나와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교정은 금세 학생들이 재잘대는 소리로 가득 찼다. 2층에 올라가 교실을 기웃거리는데, 수위가 계단을 올라오는 게 보였다. 수위는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눈치였다. 학생들은 수줍어하며 고개를 젓기만 했다. 그쯤에서 밖으로 나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학교가 맘에 들기도 했고 나가봐야 달리 갈 데가 없었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돌 의자에 앉아있자니, 이번에는 수위가 웬 여선생님을 데리고 왔다. 영어 선생님이었다. 마침내 수위는 할 말을 전하는데 성공했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 있다가 어두워진 후에 거리로 나섰다. 숙소 가까이엔 강이 흘렀다. 미국영화에서 보던 그 메콩강이었다. 강가는 밤바람을 즐기는 주민들로 붐볐다. 아이들이 유행가요에 맞춰 춤을 췄고, 흰 도복을 갖춰 입고 태권도 훈련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국영화에서 메콩강은 깊고 어두운 심연 같은 밀림 사이로 무겁게 흐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눈앞의 메콩강은 오히려 밝고 뜨겁고 가볍고 열려있었다.

해가 진 거리는 낮과는 딴판으로 활기가 넘쳤다. 어디선가 꽹과리 소리가 들려 따라가 보니 장례식을 하고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관 앞에서 악대가 연주를 하는 동안 문상객들이 절을 했다. 머리에 흰 띠를 두른 상주들이 음식을 날랐는데, 술은 없고 소포장된 과자 몇 개와 냉 녹차 한 잔이 다였다. 나도 냉 녹차를 한 잔 얻어 마셨다. 이번엔 어딘가에서 북소리가 들려 따라가 보니, 사당 마당에서 소년들이 북소리에 맞춰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사자춤이었다. 그런데 사자탈 모양이며 춤동작이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경내를 둘러보았다. 벽화에 도원결의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란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때까지 우리의 이웃 아시아라고 하면 중국과 일본만을 떠올렸는데 뜻밖에도 베트남의 문화는 우리와 꽤나 가까웠다. 그곳에서 나는 악기의 구성, 사당과 절에 모셔진 신상, 결혼식과 장례식에 쓰는 도구와 의례를 아무 해설 없이도 이해하고 있었다.

자기 전에 알람을 맞추려고 보니 시계가 없었다. 호찌민 여관에서 알람을 끄고 나서 시계를 트렁크에 넣은 것 같은데, 트렁크를 싹 뒤집고 방 안을 몇 번씩이나 샅샅이 뒤져도 시계는 나오지 않았다. 나와 19년을 함께 한 시계였다. 1992년 파리 리용역 근처의 작은 시계방에서 그 시계를 샀다. 차분한 파란색에 정사각형 모양의 그 시계는 그 후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단 한 번도 나를 깨워주는 걸 잊은 적이 없다. 핸드폰이 생기고 부터는 자명종 역할을 할 일이 적어졌지만 그래도 해외여행은 늘 같이 다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같이 탔고 중국여행과 일본여행도 같이 했다. <앞산전>을 찍는 동안 홍천의 진경이네서도 같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계를 잃어버린 것이다. 자리에 누웠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프런트에 내려가 호찌민 여관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방에 돌아와 불을 끄고 누웠다. 어딘가에서 환청처럼 낮고 구슬픈 멜로디가 들려왔다. 알람소리와 닮은 전자음이었다. 먼 곳에서 시계가 부르는 슬픈 노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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