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여행 3화
캄보디아에 간 건 앙코르유적을 보기 위해서였다. 프놈펜에서 더 지체할 것 없이 앙코르유적으로 향했다.
앙코르유적으로 가는 도로에서는 묘기에 가까운 풍경이 펼쳐졌다. 오토바이가 아이들을 다섯 명 씩 태우고 달리는가 하면, 트럭버스가 변변한 난간도 없는 뒷자리에 승객들을 출근길 지하철처럼 빽빽하게 태우고 달렸다. 내가 탄 버스도 만원이었다. 통로에 놓인 플라스틱 보조의자에 몇 시간씩 앉아있는 승객들을 보면서, 기대 졸 수 있는 등받이 의자에 앉은 게 그렇게 감지덕지할 수가 없었다. 버스에선 차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 차장이 길가에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창문을 열고 큰소리로 행선지를 확인했다. 방향만 맞으면 차장은 어떻게든 앉을 자리를 만들어냈고, 승객들이 타고내릴 때마다 크고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리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버스는 택시처럼 승객들을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승객이 내리면 마중 나온 가족들이 짐을 받아들고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버스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천천히 달렸고, 예정보다 5시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대 크메르 왕국의 수도였던 앙코르유적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은 1일 권(20달러), 3일 권(40달러), 7일 권(60달러)이 있었다. 보통은 3일 권을 끊는데 나는 7일 권을 끊었다. 워낙 유명한 세계적 문화유산이고, 사진과 영화로도 많이 본데다, 다녀온 사람들도 칭찬 일색이라 기대가 컸다.
제일 먼저 앙코르와트에 갔다. 앙코르와트는 2천개가 넘는 앙코르 유적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벽하다고 꼽히는 사원이다. 그런데 사진과 영화를 통해 너무 익숙한 탓이었을까? 실제로 본 앙코르와트는 어쩐지 실제 같지가 않고 할리우드 세트 같았다. 파란 하늘 아래 과장되리만치 선명한 풍경이 그랬고, 조명이며 구조물들의 배치가 그랬다. 나뭇가지 사이로 떨어지는 하얀 빛 줄기는 일부러 세팅이라도 한 듯이 정확하게 돌기둥을 비췄고, 돌기둥의 기울어진 각도며 무너진 돌무더기의 배치도 우연이라기엔 너무 딱 적당했다. 나는 아무래도 이 폐허가 질서 있게 무질서를 가장한다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바이욘도 정교함이 떨어지는 플라스틱 소품 같았다. 화룡정점은 새소리였다. 높은 곳에서 숲 전체를 울리며 퍼지는 그 소리는 밀림 속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을 로우앵글로 비출 때 나는 바로 그 새소리였다.
그곳은 실제로 ‘툼레이더’의 촬영 장소였다. 가이드들이 각 장소에서 영화의 어떤 장면이 촬영됐는지 소개하면서 주인공 안젤리나 졸리가 서있던 자리를 가리켜 보였다. 관광객들은 번갈아 그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또 다른 촬영장소를 향해 몰려갔다. 유적지 곳곳에 크메르 왕 보다 더한 존재감으로 안젤리나 졸리의 흔적이 산재해있었다.
호찌민에서부터 시작된 닭 우는 소리가 매일 아침 나를 깨웠다. 처음에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이어서 온 동네 닭들이 합창을 했는데, 어찌나 목청들이 좋은지 안 일어나고는 못 배겼다. 눈을 뜨면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서늘한 오전에 조금이라도 더 다니기 위해서였다.
매일매일 화창한 날씨만 있었다. 가히 식물들의 천국이었고 식물들은 어디 한 구석 찌든 데가 없었다. 한국에서 보던 식물들도 그곳에선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몇 배나 크게 자랐고 몇 배나 큰 꽃을 피웠다. 그곳에선 정원수로 큰 가시가 있는 꽃기린을 많이 심었는데, 꽃기린은 한국에서 보던 작고 앙증맞은 모습과는 딴판으로 장미나무만큼이나 덩치가 크고 무성했다. 정말로 나를 놀래 킨 건 채송화다. 너무 꽃이 커서 유전자 조작 식물을 볼 때처럼 거북했다.
정반대의 의미로 개들도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하나 같이 비루먹은 데다 갈비뼈만 앙상한 개들이 길거리에 죽은 듯이 드러누워 있었다. 누워있는 개들의 듬성듬성 털 빠지고 벌겋게 헌 상처 위로 햇볕이 따갑게 내리 쪼이는 광경은 보는 내가 다 고통스러웠다. 개들은 더위와 굶주림과 가려움에 지쳐 사람처럼 신산한 표정을 지었다. 갓 태어난 새끼들에게조차 천진한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도 개를 쓰다듬어주지 않았고, 개도 사람에게 꼬리치며 다가가지 않았다. 아파트와 원룸에 갇혀 종일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서울의 개들이 떠올랐다. 어느 쪽이 더 괴로울지 마음속으로 한참이나 저울질해보았지만 좀처럼 결론을 내리기 힘들었다. 어느 사회나 개에겐 사람 사는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 개들을 보며 개를 먹이고 돌볼 약간의 여유조차 없는 캄보디아의 생활을 짐작했다.
캄보디아에서 관광은 거의 유일한 돈벌이 수단으로 보였다. 아이들도 돈을 벌기위해 관광객을 상대로 이런저런 일에 뛰어들었다. 그 중 하나가 가이드였다. 아이들은 관광객에게 다가가 친한 척 길 안내를 하고 돈을 요구했다. 큰 아이들은 제법 가이드다운 가이드를 하기도 했지만, 일고여덟 살 남짓의 아이들은 그냥 관광객을 따라다니는 수준이었다. 몇 차례 겪으면서 그 아이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됐는데, 아이들은 판매실적이 저조한 판매원 같이 비굴한 억지웃음을 웃었다. 이번에 여행한 세 나라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널리 퍼진 그 웃음을 웃는 건 오직 그 아이들뿐이었다.
사람뿐 아니라 숲에 사는 원숭이들도 관광객을 상대로 먹고 살았다. 원숭이들은 아이들과 한 팀으로 움직였다. 원숭이들이 길에 나와 관광객을 유인하면 꾀죄죄한 아이 둘이 그 옆에서 바나나를 팔았다. 관광객들은 기꺼이 바나나를 사서 원숭이에게 주고 바나나 먹는 원숭이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내 주위에도 원숭이들이 모여들었다. 가방에서 토마토를 꺼내 주었더니 원숭이가 긴 손가락으로 토마토를 집어 들고 냄새를 맡았다. 나는 나와 똑같은 그 손놀림에 거울을 보듯 매혹되었다. 토마토를 다 먹고 나자 원숭이는 먹을 걸 찾아 가방 지퍼를 열려고 했다. 못 하게 하자 가방을 만지다가 잡히는 부분을 이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원숭이들은 겁이 없고 영리하고 난폭했다. 원숭이가 내 옷을 잡아당기고 머리끝까지 올라타기에 장난을 하자는 줄 알고 슬쩍 등을 쳤더니, 원숭이는 이빨을 드러낸 채 긴 팔을 흔들며 달려들었다. 꾀죄죄한 두 아이와 원숭이들은 동업관계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얼핏 원숭이 포주 밑에서 두 아이가 앵벌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원숭이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캄보디아인들은 돈벌이와는 상관없이 사는 것 같았다. 다니다 보면 나무에서 과일을 따거나 강에서 물고기와 게를 잡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세 끼를 해결하는 것 같았다.
강가에서 사내아이 셋이 낚시를 했다. 큰 아이가 그물을 들고 무릎 높이의 강물로 들어갔다. 큰아이가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덩굴 줄기에 앉아 그네를 타거나 강가에서 노래를 불렀다. 신중하게 물속을 살피던 큰 아이가 그물을 던졌다. 능숙한 솜씨였다. 그물은 치마폭처럼 넓게 퍼지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큰 아이는 그물 위를 조금씩 밟아나가며 발에 닿는 감각으로 잡힌 물고기를 찾아내서 땅 위로 던졌다. 강가에 있던 아이 둘이 그 물고기들을 주워 한 군데로 모아놓았다. 퍼덕거리며 물을 향해 가는 물고기가 있으면 바닥에 여러 번 패대기쳐 기운을 빼놓기도 했다. 낚시가 끝나자 아이들은 자전거 바구니에 그물과 물고기를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
앙코르유적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유적보다는 오가는 길 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는 100년 전 아니 50년 전을 상상하는 게 불가능한데, 캄보디아에서는 1000년 전 모습도 쉽게 상상이 됐다. 사람들 사는 모습이 천 년 전과 다를 게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이엉으로 지붕을 올린 간소한 집이 그렇고, 황금에 대한 한결같은 취향도 그랬다. 지금도 사원은 마을에서 제일 크고 화려한 건축물이다. 사원입구에는 높은 금문이 서있고 금지붕이 반짝이는 대웅전 안에는 금 보리수와 금 파라솔에 둘러싸인 금부처님이 계셨다. 집집마다 입구에 금탑 제단을 모셨고, 금빛 액자에 넣은 가족사진이 거실을 장식했다. 귀하게 여기는 걸 귀하고 귀한 황금으로 장식하는 태도엔 사랑스런 구석이 있고, 그건 아이들의 직접적이고 단순한 태도와 닮아있었다. 내가 묵는 방 천장에도 금박 장식이 모서리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 방에 묵는 엿새 동안 나는 그 금장식이 좋아졌다.
유적보호를 위해 유적근처에는 숙박시설이 없어서 관광객들은 유적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씨엠립에서 먹고 잤다. 씨엠립은 경주의 보문단지 같은 관광단지인데, 내 평생 그렇게 많은 관광객은 처음이었다. 현지인들은 관광 다닐 돈도 관광 취미도 없기 때문에 관광객은 오직 외국인뿐이었다. 모든 시설은 서구적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져 있었고 그것은 곧 나의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했다. 씨엠립은 관광객들이 자기 집에서 먹고 놀고 쓰던 게 다 들어있는 커다란 여행용 트렁크 같았다.
씨엠립에선 주민들 대부분이 관광업에 종사했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해서 굳이 캄보디아어를 쓸 일이라곤 없었다. 그래도 현지어를 해보겠다고 가이드북에 적힌 대로 또박또박 말해보았지만, 상대방은 내가 캄보디아어로 말한 줄도 몰랐다. 그의 본토 발음을 듣고는 나도 내 발음에 실소하고 말았는데, 가이드북의 캄보디아어 한글표기는 닭 우는 소리를 '꼬꼬댁'이라고 적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도 따라할 수도 없는 이상한 소리로 말했고, 그건 한글표기가 불가능한 소리였다. 처음 듣는 말은 들어도 들리지 않고 처음 보는 것은 봐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아름답다’는 ‘아는 듯하다’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나는 앙코르유적에 차츰 익숙해졌고 거부감도 옅어졌지만, 여전히 앙코르유적을 아름답다고 느끼진 않았다.
사흘 만에 주요 유적들을 다 돌았지만, 60달러나 주고 산 입장권 본전 생각에 하루만 더 머물기로 했다. 뭔가 놓친 게 있길 바라는 심정으로 앙코르와트에 다시 갔다. 그날 하루는 다른 데 가지 않고 앙코르와트만 보기로 하고 입구에서부터 찬찬히 벽화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성소의 회랑을 빙 둘러싼 벽화에는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가 새겨져 있다. 한국인 가이드 말이 라마야나는 적어도 5일은 걸리는 이야기라 짧게 해도 도입부만 30분짜리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긴 라마야나를 짧은 시간에 전하느라 놀랍도록 말을 빠르게 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로 가득 찬 회랑에선 라마야나가 온 세상의 언어로 구술되고 있었다.
지옥도 앞을 지났다. 온갖 종류의 형벌들이 묘사돼있었다. 거짓말 한 자는 혀를 뽑히고 남의 가슴에 못 박은 자의 가슴에는 대못이 박혔다. 가장 큰 벌은 간음한 여자에게 내려졌다. 옥졸들이 간음한 여자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다.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은 간음한 여자에 이르자 결말을 앞둔 80년대 한국영화처럼 장황해졌다. 간음하는 건 남의 가슴에 못 박는 짓인데, 같이 간음을 해도 남자보다 여자의 죄가 더 무거운 건 여자는 아이를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말을 마치자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선창을 했다. "남의 가슴에 못 박는 행동을 하지 맙시다. 간음을 하지 맙시다."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질서는 돌덩이들보다 더 견고한 것이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도 나는 계속 회랑에 남아있었다. 지옥도는 크메르 루즈의 학살 현장이었던 뚜얼슬랭을 연상시켰다. 지옥도가 상상화가 아니라 실제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 앙코르에는 백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많은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건이 있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 나는 외계인이 그들을 데려갔을 거라는 동화적 상상 대신 이 지역에서 반복됐을 대량학살을 상상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사라진 일이 또 있다. 크메르루즈의 학살이 그것이다. 캄보디아에서는 앙코르와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념물이 크메르루즈의 학살을 기억하는 것들이다. 뚜얼슬랭이 그렇고 전국에 수 만개나 된다는 해골탑이 그렇다. 나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서늘했다. 캄보디아인들이 유난히 순한 인상이라서 더 그랬다. 그런 죄 없는 얼굴로 잔혹한 학살을 저질렀다는 게 가슴 서늘하도록 끔찍했던 것이다.
해가 지고 숙소에 들어가니 도미토리에는 장기투숙 중인 미국인 혼자 있었다.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는데, 그는 앙코르와트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간접적으로라도 그 감동을 나누고 싶어서 설명을 부탁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매우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 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보면서도 같은 종류의 감동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둘 사이엔 유사성이 있었다. 캄보디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국기에 앙코르와트를 그려 넣고, 귀한 것을 나타내기 위해 금으로 칠갑을 하고, 남녀성기를 숭배하는 식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상징들이 불편했는데, 그건 김기덕 영화언어의 특징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그 단순성과 직접성은 군더더기 없이 곧장 근원에 가닿는 힘일 수 있고, 그게 코드가 맞는 사람들에겐 큰 감동을 주는 걸 거라고 짐작했다.
이제 앙코르 유적을 충분히 봤으니, 캄보디아를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