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여행 2화
쩌우독에서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까지 배를 타고 갔다. 중간에 비자를 받기 위해 출입국 관리소에 내렸는데, 입구에 캄보디아 국기가 걸려있었다. 빨강 파랑 배경에 흰색으로 앙코르와트가 그려진 국기였다. 나는 국기를 보면 초등학교 국기 그리기 수업시간으로 돌아가 그 국기를 어떻게 그릴지 부터 고민하게 되는데, 앙코르와트의 묘사가 너무 세세해 캄보디아 어린이들은 국기를 그리기가 어렵겠구나 싶었다. 그림 그릴 걱정도 걱정이지만, 앙코르와트라니 국기에 그려 넣기에는 너무 직접적인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 나라의 국기라면 태극기만큼은 아니라도 보다 은근하고 추상적인 상징을 사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국기의 도안보다 더 뜨악한 건 그 내용이었다. 캄보디아 국기는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위대한 크메르의 후손이다. 크메르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지금 자신의 정체성과 비전을 과거에서, 그것도 천 년 전 과거에서 찾다니 그보다 더 궁색할 순 없었고, 나는 입국도 하기 전부터 캄보디아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말았다.
캄보디아의 정식 명칭은 캄보디아 왕국이고 지금도 왕이 있다. 프놈펜에 도착해 국왕이 살고 있는 프놈펜 왕궁에 갔다. 궁에는 여러 개의 황금탑과 황금건물들이 있었다. 대표적 건물인 트론홀에 들어갔다. 홀 안의 모든 것이 황금으로 칠갑돼있어, 첫눈에는 사물들이 잘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황금으로 된 바닥과 천장, 황금 샹드리에, 황금 테이블과 의자, 황금 동상, 황금 양산과 황금 꽃......어릴 적 그렸던 공주그림이 떠올랐다. 나는 높고 귀한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공주에게 레이스와 리본이 겹겹이 달린 화려한 드레스를 입히고, 금은보화로 된 장신구들을 목과 팔목은 물론이고 머리며 옷 위에도 주렁주렁 달았다. 그러나 커다란 장신구를 더할수록 공주의 품위는 사라졌고, 완성된 그림엔 공주가 부자고 귀하고 아름답다는 메시지만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나는 공주그림에 싫증나고 질렸던 것처럼, 황금으로 뒤덮인 그 방에 질려서 밖으로 나왔다.
궁의 정원은 긴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회랑을 가득 채운 벽화에는 지금의 궁전과 똑같은 모습의 궁전이 그려져 있었다. 실제의 궁전을 등지고 그림 속 궁전을 보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림 속에서 잘생긴 왕이 높은 곳에 앉아 위용을 뽐냈고, 일본이며 아랍에서 온 외국 사신들이 왕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갖 사건들이 지나갔다. 황금 관을 쓴 왕이 푸른 원숭이들이 모는 마차를 타고 전쟁을 진두지휘했는데, 마차가 하늘을 날자 구름 위에서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들이 칼을 휘둘렀다.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 여자들이 노니는 정원에선 키 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높은 나뭇가지에선 새가 노래했다. 그때였다. 등 뒤의 정원 어딘가에서 높고 맑은 소리로 새가 노래했다. 그 순간 등 뒤의 궁전을 배경으로 그림 속 사건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가는 길에 사진 전시실을 지났다. 국왕의 사진들이 전시돼있었는데 전시의도와는 반대로 사진은 왕실의 권위가 아니라 왕실의 가난을 증거하고 있었다. 사진 속 국왕은 잘 훈련된 배우처럼 보였고, 그를 주인공으로 한 왕실 행사는 초라하기만 했다. 그림에 취해있던 내게 사진의 적나라함이 찬물을 끼얹었고, 그렇게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계로 돌아왔다.
왕궁을 나와 크메르루주 학살 현장이었던 뚜얼슬랭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려는데 한쪽 눈이 흉하게 일그러진 남자가 달려들어 구걸을 했다. 그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박물관에 들어섰다. 원래는 학교였다가 크메르루주의 감옥으로 사용됐던 건물엔 당시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고문실과 감옥이 있었다. 입구에는 ‘웃지 마시오!’ 표시판이 붙어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도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둘러보니 다른 관광객들의 표정도 나만큼이나 어두웠다.
사진 전시실로 들어갔다. 첫 번째 방에는 소년들의 증명사진이 벽면 하나를 채우고 있었다. 희생자들인 것 같았는데, 소년들은 조금도 주눅 들어 보이지 않았고, 몇몇은 졸업사진이라도 찍는 양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한 소년의 미소 위에 나의 시선이 멈췄다. 유난히 아름다운 미소였고, 한동안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소년들의 사연이 궁금해 가이드의 설명을 귀동냥했다. 그런데 가이드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학살에 동원된 크메르루주 병사였다. 극단적인 폭력에 동원되는 건 늘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인 것이다. 가이드는 백구두로 멋을 낸 영리하게 생긴 청년이었는데, 어쩐지 그의 얼굴이 낯익었다. 사진을 다시 훑어보다가 가이드의 얼굴을 발견했다. 가이드는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소년병과 믿을 수 없을 만큼 닮은 얼굴이었다.
이어지는 방에는 더럽고 불행하고 말라비틀어지고 고통에 찌든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추한 것은 악이 아니라 마주보기조차 참혹한 희생자들의 겁먹은 얼굴과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그들의 신체였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대형 초상사진들이 놓여있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아래층에서 본 사진 속 인물들과 달랐고 길에서 본 사람들과도 달랐다. 그들의 얼굴은 지적이고 우아하고 자긍심에 차 있었다. 최근에 찍은 노인들 사진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크메르루주의 탄압을 견디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인 줄로만 알았다. 그들의 프로필을 읽어보았다. 대부분 해외유학파인 그들은 크메르루주 시절의 고위관리들로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에 고발된 전범들이었다. 그곳에선 오직 악만이 인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오는데 거지가 잘린 손목을 불쑥 내밀며 구걸을 했다. 황급히 눈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