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도시 스텅트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여행 4화

by 김지현

라오스로 넘어가려고 국경도시 스텅트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길 기다리는데,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행사에서 3달러나 더 주고 VIP버스표를 샀는데 와보니 VIP버스가 아니라 shit버스라는 거였다. 고함치던 호주인이 버스에 오르자 검표원이 따라 올라와 버스표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호주인은 버스표가 환불받기 위한 유일한 증거물이라면서 못 주겠다고 버텼다. 검표원은 그건 여행사에서 따질 문제고 자기는 버스표를 가져가야 된다고 했지만, 호주인은 여행사와 검표원이 한통속인 줄 잘 안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버스 안에 다른 관광객들은 모두 호주인 편이었지만, 나는 그가 겨우 3달러 때문에 지나치게 군다고 생각했다. 30분 가까이 실랑이가 계속됐지만 호주인은 끝내 버스표를 내놓지 않았다. 검표원은 씩씩거리면서도 버스에서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터미널을 빠져나가며 보니, 검표원은 오토바이 시동이 안 걸려 헛발질을 하고 있었다.

중간에 버스를 갈아탔다. 30분 후에 올 거라던 버스를 한 시간 반 넘게 기다렸고, 마침내 도착한 버스는 시도 때도 없이 승객과 짐을 싣고 내리면서 느릿느릿 갔다. 매일이다시피 장거리 이동을 했지만 내가 탄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확신 같은 건 한 번도 없었다. 차가 한 번에 목적지까지 가는 경우는 없었고, 언제든 내리라는 수신호에 내리고 기다리라는 수신호에 기다렸다가 타라는 수신호에 갈아타기를 거듭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은 점점 옅어졌다. 밤 10시에 스텅트랭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11시간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으러 강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된 창문 너머로 메콩강이 보였다. 그 식당에서 책을 읽으며 햇빛을 피하기로 했다. 책에는 자코메티에 관한 일화가 소개돼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자코메티는 이탈리 광장을 가로지르다가 자동차에 부딪쳐 쓰러졌다. 부상을 당하고 다리가 뒤틀린 그는 기절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드디어 내게도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저자는 놀라운 일을 좋아하려면 그 정도로 철저해야한다면서 무엇이든 맞아들이려는 자코메티의 의지에 탄복했다. 비록 자코메티만한 용기와 의지는 없지만 나도 가슴 한 구석엔 내 인생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인생이 권태롭기 때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한 순간도 떨어져 본 적 없는 나 자신이 권태의 이유다. 사람은 왜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몸으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할까. 곤충들처럼 살다가 한 번씩 탈피하고 탈피할 때마다 신체도 바뀌고 서식지도 바뀌고 먹이도 바뀐다면, 우리 삶은 지루할 새 없이 다채로울 텐데 말이다. 몸이 안 따라주면 생각이라도 때때로 탈피하면 좋겠는데 하루가 다르게 늙기라도 하는 몸에 비해 생각은 백배 더 고집스럽다. 어쩜 그렇게 매번 같은 문제에만 사로잡히고 똑같은 얘길 하고 또 하고 싶어 하는지 정말 지겨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지겨워만하다가 죽을 운명인 것 같았다. 변화를 부르짖다가도 막상 낯선 것과 마주치면 반기기는커녕 무작정 겁부터 집어먹고 거부감을 드러내니 말이다.

식당은 영업장소이면서 동시에 식당 안쪽에 있는 살림집의 거실이기도 했다. 식당 벽 가득 금빛 액자에 담긴 가족들 사진이 걸려있었다. 식당에 앉아있는 동안 사진 속 인물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흑백사진 속 조부모는 사진으로만 있었지만, 조모와 빼닮은 아버지가 사진 속 젊은 시절처럼 군복 차림으로 음식을 날랐고, 어머니는 여전히 고운 모습으로 주방 일을 봤다. 아버지를 닮은 아들이 사진에서보다 살찐 모습으로 일을 나갔고, 사진 속엔 없지만 부엌일을 하는 젊은 여자들은 며느리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사진에는 없던 사내아이가 플라스틱 칼을 휘두르며 돌아다녔다.

손님이 뜸해지면서 가족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다. 코미디 프로를 하고 있었다. 어느 집이나 텔레비전이 켜있었고 텔레비전이 유일한 볼거리였다. 극장도 없고 책도 없고 그 흔한 신문 쪼가리 하나 없었다. 크메르루주 시절에 집안에 책이 2권 이상 있는 사람을 인텔리로 몰아 잡아갔다는데, 책을 빌미로 잡혀간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여행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굳이 책을 읽거나 여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코미디 프로를 보며 웃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말을 못 알아들으니 그들을 따라 웃을 수 없었지만, 말을 알아듣는다 해도 같이 웃게 될 것 같지 않았다. 우리 사이엔 공통분모가 거의 없어보였다. 문득 그곳에 살게 될까봐 덜컥 겁이 났다. 공포에 사로잡힌 마음은 어두운 산길에 귀신을 만들어내듯이 망상을 만들어냈다. 나는 한국에 전쟁이 나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그곳에 살게 되는 망상에 사로잡혔고, 그러자 두려움은 한층 위력을 발휘했다.

스텅트랭까지 같은 버스를 타고 온 가이드가 매일 아침 8시 반에 ○○여관 마당에서 라오스행 버스가 출발한다고 알려줬었다. 저녁 때 라오스행 버스표를 사려고 가이드가 알려준 여관에 갔다. 그런데 프런트에 있는 청년은 영어를 전혀 못했다. 그가 A4용지에 출력된 영어문장들을 뒤졌지만 거기엔 'Do you have a room?' 같이 숙박과 관련된 문장뿐이었고, 나는 나대로 가이드북에 나온 캄보디아어를 뒤졌지만 거기엔 '크넘 목 삐 꼬레(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같은 쓸데없는 예문들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같은 버스를 타고 온 가이드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정말 '그 가이드'였을까? 우리는 다음날 아침 8시 반에 여관로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적어도 난 그런 줄로 믿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의 가로등 없는 거리는 어두웠고, 검은 하늘엔 그믐달이 낮게 걸려있었다. 그 하늘 밑 어딘가에 나의 시계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자꾸만 시계와 같은 처지가 되어 거기서 살게 되는 상상을 했다. 무서워서 그 상상을 떨치려고 애쓰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약속한 시간에 그 여관에 갔지만 가이드는 없었다. 버스는 오지 않았고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도 없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다른 여관에서 2시 30분에 출발하는 라오스행 버스가 있다고 했다. 아직 10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메콩강이 내려다보이는 그 여관 베란다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거기서 아침을 시켰다. 그런데 채 아침을 다 먹기도 전에 탤런트 윤상현 닮은 가이드가 오더니, 시판돈까지 가는 루트에 대해 여러 자료를 가지고 설명할 게 있다면서 자기 사무실로 가자고 했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후 그의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가 보니, 사무실이란 곳은 그의 집 마당이었다. 손바닥만 한 그늘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는 자기 라오스 지도를 친구에게 빌려줬다면서, 내게 라오스 지도가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했더니 종이 위에 서 너 개의 점과 선으로 된 시판돈까지의 루트를 그려 보이며, 바로 그런 걸 보여줘야 돼서 여관에선 얘길 할 수 없었던 거라고 했다. 그리곤 경비를 19달러나 불렀다. 여관에선 10달러라고 했다니까, VIP버스라서 가격이 비싸지만 17달러까진 깎아주겠다고 했다. 16달러에 표를 사면서 바가지 썼다는 생각에 기분이 안 좋았다. 가이드는 돈을 받아 챙기더니 시원한 그늘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의자를 들고 그늘을 따라 옮겨 다니며 장장 4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침내 가이드의 오토바이를 타고 낮은 잡목 숲이 우거진 국도변에 내렸다. 숲속에서 디링디링 워낭소리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 좀 더 있고 싶었지만 얼마 안 있어 앞 유리 가득 VIP라고 써 붙인 버스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렇게 캄보디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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