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여행 7화

by 김지현

농키아우까지 트럭버스를 타고가면서 공항에서 벗어버렸던 겨울 점퍼를 꺼내 입었다. 비좁은 트럭 뒷자리에서 세 시간이나 바람을 맞았더니 너무 피곤해서 농키아우에 도착하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문득 잠이 깼다. 꽤 오래 잔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직 닭이 안 울었다. 그렇다면 5시도 안 됐다는 건데, 중간에 잠을 깬 것치고는 조금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덧창을 닫아놓았다고는 해도 방안은 빛 한 점 없이 깜깜했다. 어둠 속에 누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나는 죽은 것 같았다. 죽는다는 건 이렇게 어둡고 고요한 거로구나. 그런데 나는 왜 죽었을까? 자기 전에 먹은 고추와 돼지고기가 심장에 부담이 된 걸까? 그러고 보니 심장이 조금 두근거리는 것도 같았다. 내가 있는 곳이 중간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조바심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기저기서 닭들이 따라 울기 시작했다. 나는 죽은 게 아니었다.

농키아우는 병풍처럼 치솟은 산들에 둘러싸인 산골마을이다. 산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모양으로, 90도 각도로 가파르게 깎아지른 산에는 바위라곤 없이 나무만 파랗게 빽빽했다. 올라가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어딘가에 있을 산길을 찾다가 오르막길을 발견하고 따라가 보았다. 강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두개의 산줄기가 마주보고 있었다. 강과 나란한 산비탈 위로 황톳길이 이어졌다. 황톳길을 따라 한 시간 여를 걸었다. 산은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똑같이 그저 파란 나무들뿐이었다. 단조로운 풍경에 싫증이 나 빨리 마을이 나왔으면 싶었지만, 아무리 가도 인적은커녕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부터 길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있었다. 덜컥 겁이 나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있었다. 두려운 마음을 누르며 가다보니 길에 소똥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에 민가가 있구나 싶어 걸음을 재촉하는데 저만치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덕을 넘자 눈앞에 대나무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펼쳐졌다. 오리들이 헤엄치는 물웅덩이를 지나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보았다. 마을의 끝이기도 한 그곳에는 교실 두개짜리 학교가 있었다. 작은 운동장에는 놀이 기구들이 놓여있었는데, 모두 나무로 만든 것들이었다. 세 개의 나무기둥으로 된 철봉, 널빤지로 만든 시소, 대나무를 이어 만든 구름다리, 나무계단을 올라가 나무판자를 타고 내려오는 미끄럼틀. 약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타보았는데 내 무게를 끄떡없이 견뎌냈고 재밌었다.

학교를 나와 마을로 내려갔다. 그 전에도 후에도 그보다 활력 있는 마을을 본 적이 없다. 모든 주민들이 밖에 나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아이를 보거나 물레질을 하거나 짚을 엮었고, 남자들은 그물을 짜고 대나무를 다듬었다. 사내아이는 자전거 바퀴로 굴렁쇠를 굴렸고, 여자아이는 자기만한 아이를 안고 다녔다.

식탁 위에서 양념을 쪼아대던 닭을 쫓아내고 국수집에 앉았다. 주인여자가 먼지가 덕지덕지 낀 사발을 들고 씩 웃더니 안으로 들어가 사발 하나를 새로 가지고 나와 국수를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식탁 밑으로는 오리새끼들이 오갔고,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강아지들은 마당 곳곳에서 잠을 청했다. 내가 국수를 먹는 동안 맞은편 집에선 할머니가 아들의 귀지를 정성스레 파주었고 그 옆에선 한 남자가 손바닥만 한 거울을 들고 면도를 했다. 그 앞으로 아이들이 대나무로 만든 장총을 들고 뛰어다니는가 하면, 어른들은 진짜 장총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산으로 향했다. 생산과 놀이의 수단이 컴퓨터로 획일화된 세계에서 온 내겐 그들의 활기와 역동성이 경이롭기만 했다.

후딱 국수를 먹고 동네 구경을 다니는데, 아이들이 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두 아이가 넝쿨의 양쪽 끝을 한쪽씩 잡고 돌리면 다른 한 명이 넝쿨을 뛰어넘으며 노래를 불렀다. 줄넘기 끈 대신 넝쿨을 사용한다는 것 말고는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도 나 어릴 적 하던 줄넘기 놀이랑 똑같았다. 아이들은 공기놀이도 하고 오자미 놀이도 했는데, 공기놀이는 공기 대신 플라스틱 사슬 묶음으로 했고, 오자미놀이는 오자미 대신 주먹만 한 휴지뭉치를 넣은 비닐봉지를 던지며 놀았다.

어느 집 너른 마당에선 영화 상영을 했다. 십여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좀비영화를 보고 있었다. 다리미가 날아가 좀비의 목에 박히자 피가 분수처럼 솟았고, 믹서에 갈린 손이 케첩처럼 흘러내렸다. 화면을 피해 고개를 돌리니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며 흐흐 웃는데 입안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어리석게도 나는 좀비들의 소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도망갈 엄두조차 못 내고 핏물로 검게 물든 입을 보고만 있는데, 아주머니들은 나에게 달려드는 대신 바닥에 피를 탁탁 뱉었다. 아주머니들은 빈랑을 씹고 있었던 것이다. 빈랑은 껌처럼 씹는 열매인데 씹으면 입안이 핏빛으로 변한다. 길에서 본 핏자국도 빈랑자국이었던 것이다.

좀비영화를 보기가 끔찍해 딴청을 부리다 돌아보니 애부터 어른까지 동네사람들이 모두 강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덩달아 달려가 보니 옆구리에 시신을 매단 배 한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을사람이 물에 빠져죽은 것이다. 100여명의 주민들이 모두 강변에 모여들었다. 시신을 모래 둔덕에 끌어올리자 한 두 명이 울음을 터뜨렸지만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옷을 벗기고, 시신이 깔고 덮을 장판이며 이불을 가져오는 동안, 청년들은 그 옆에서 작은 목선을 잘라 관을 짜기 시작했다. 관은 빠른 속도로 제 모양을 찾아갔다. 시신을 눕힐 편안한 자리가 만들어지자 곡이 시작됐다. 그 소리를 들으며 마을을 떠났다.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비 때문인지 정전이 됐다. 화장실에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데 불이 꺼졌다. 그 순간 발코니에 모여 놀고 있던 투숙객들이 놀라움과 즐거움이 뒤섞인 비명을 질렀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그 소리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됐지만, 그래도 눈을 감은 것 같은 어둠이 무섭기만 했다. 더듬더듬 밖으로 나왔다. 주인집 창가에 촛불을 켜놓은 게 보였고, 투숙객들은 갑작스런 어둠에 신이 나 더 큰소리로 떠들어댔는데, 나만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말할 상대가 없었다. 고아의 서러움이 그런 것이리라. 나 어릴 때도 자주 정전이 됐다. 방에 혼자 있다가 정전이 될 때면 죽도록 무서웠지만, 언제나 집안엔 가족들이 있었기에 큰 소리로 서로를 불러 손을 더듬어 잡고나면 마음이 놓였다. 그때부터 어둠은 내가 느꼈던 두려움의 크기만큼 커다란 매혹이 되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멈춘 어둠 속에선 모든 소리들이 과장되게 커졌다. 흥분된 말소리와 자신감을 잃은 발자국 소리, 문이나 가구에 가볍게 몸이 부딪치고 양초와 성냥을 찾아 서랍을 여닫는 소리에 이어 확하고 성냥이 켜지면 엄마가 촛불을 들고 다가왔다. 일렁이는 촛불에 비친 안방과 마루와 부엌은 평소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단박에 그 세계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껌벅껌벅 안방의 형광등이 켜지고 텔레비전이 목소리를 되찾으면 순식간에 모든 것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고, 촛불은 좀 전까지의 카리스마 넘치는 광휘를 잃은 채 쓸쓸히 부엌 서랍으로 돌아가야 했다.

더듬어 마주 잡을 손이 없었기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늦도록 떠들던 투숙객들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씻고 침대에 눕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는 오직 빗소리뿐이었다.

또 새벽에 잠이 깼다. 집이라면 일어나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싶었다. 책상에 앉아 뭔가를 끄적거리고도 싶었다. 그러나 커피도 책상도 없었으므로 그냥 이불 속에 누워있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긴긴 밤을 지새울 게 걱정인데 멀리서 닭이 울었다. 나 혼자만 깨어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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