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시티 루앙프라방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여행 6화

by 김지현

침대버스에서 12시간을 뽕짝에 시달린 끝에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여관에 찾아갔더니 이른 시간이라 아직 방청소 전이었다. 돌아다닐 기력이 없어서 로비에 앉아 청소가 끝나길 기다리다가, 한국에서 온 수진 씨를 만나 방을 같이 쓰기로 했다. 방에 들어가니 창밖으로 세탁기 세 대가 보였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세탁기 소음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겠구나 싶었지만 화장실이 급해 화장실을 썼고, 그러고 나니 물리자고 할 수도 없게 됐다. 수진 씨가 구경을 나가고 나서, 나는 프런트에 빨래를 맡기고 침대에 누웠다. 도미토리와 침대버스를 전전한 탓에 몸이 솜처럼 무거웠다. 막 잠이 들려는데 머리맡에서 세탁기가 웅웅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여행에서 내가 누리는 편의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과정을 숨기는 법이 없는데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불구를 과시하기까지 했다. 세탁기가 낡아 떨어진 뚜껑과 녹슨 몸체를 보란 듯이 뒤흔들며 큰 소리로 요동쳤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뒤척이며 손빨래를 하기에는 너무 피곤했고 손빨래를 할 마땅한 장소도 없었다고 변명해보았지만, 세탁기는 가차 없이 더 큰소리로 요동칠 뿐이었다.

온갖 소음을 견디며 힘겹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소문난 루앙프라방엔 그 소문을 듣고 멀리서부터 찾아온 관광객들이 들끓었다. 당연히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았다. 중심도로는 물론이고 골목 안까지 여관, 여행사, 식당, 카페, 기념품점이 빈틈없이 들어차있었다. 삼청동 같기도 하고 가로수길 같기도 한 그 길들을 걸으면서 세상의 모든 길이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걸 한탄했지만, 똑같은 입맛을 가진 소비자들이 그 변화의 이유였고, 나 역시 그 소비자 중 하나였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교보문고에 가이드북을 사러갔었다. 전체 칼라도판으로 된 가이드북들을 뒤적이면서 해외여행의 양상이 달라졌다는 걸 눈치 챘었다. 백화점 브로슈어 같은 그 책들은 여행가이드라기보다 쇼핑가이드였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사고 어디서 마사지를 받을지 소개하는데 대부분의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길에서 조마카페를 찾고 있었다. 가이드북에 커피가 맛있다고 소개된 집이었다. 너무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달리다시피 도착한 조마카페에는 빈 좌석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특히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다들 같은 가이드북을 가지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서울에서 마시던 바로 그 맛이었다. 만족스러웠다.

저녁 때 숙소로 돌아온 수진 씨는 하루 만에 루앙프라방을 다 봤다면서 다음 날 다른 도시로 떠날 거라고 했다. 나 역시 도착한 순간부터 루앙프라방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국인들의 주마간산식 여행법은 종종 비웃음거리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본래 여행의 목적에 충실한 여행이 아닐까? 일상에서 영원히 집으로 돌아갈 운명인 우리를 여행으로 이끄는 건 떠나기 위해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고, 비엔티엔이니 루앙프라방 같은 지명은 그저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므로.

이른 아침, 왓씨앙통으로 향했다. 루앙프라방을 소개하는 사진에 항상 등장하는 바로 그 사원이었다. 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거리에 사진기를 든 관광객들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주민들이 대나무그릇에 밥을 담아들고 앉아 탁발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시주할 밥과 과자를 파는 상인들도 보였다. 앙코르에서 본 원숭이들의 식사가 떠올랐다. 그 불경한 생각을 아주 털어내지는 못했지만, 탁발과 시주는 아침을 여는 경건한 방법이었다. 탁발을 마친 스님들을 따라 왓씨앙통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사원이었으나 감흥을 얻는 데는 역시 실패했다.

자전거를 타고 관광지구를 벗어나보기로 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어느 절로 들어가 마당을 가로지르자 화장터였다. 관 하나가 들어갈 크기의 소각장 위로는 4.19탑을 닮은 탑이 솟아있었고 그 위로는 만장이 휘날렸다. 화장터 한 쪽에는 화장터지기의 것으로 보이는 판잣집이 있었다. 집 앞에서 가족들이 숯불에 밥을 짓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대바구니에 수북이 담긴 찹쌀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밥이 다 되자, 대나무 꼬챙이에 끼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맛있어 보였다. 불가를 맴돌던 내게 젊은 남자가 자기가 앉았던 의자를 내밀었다. 염치 불구하고 앉기는 앉았는데, 숯의 열기만으로는 고기 익는 속도가 무척 더뎠다. 얼굴만 마주보고 있기가 멋쩍어서 공책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무 그루터기 위에 놓인 식칼도 그리고 검게 그을린 솥단지도 그렸다. 아이들이 이것도 그려봐라 저것도 그려봐라 하면서 주문을 했고, 온 가족이 몰려들어 그림 그리는 걸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음에 부담이 돼서 그림이 더 잘 안 그려졌다. 마침내 고기가 다 구워졌지만 아쉽게도 그 고기는 점심식사용이 아니었다. 말려서 나중에 먹으려는지 고기는 벽에 걸어놓고 나물 반찬으로 점심을 먹었다. 찰밥을 먹을 만큼 손으로 떼어서 국물이 많은 나물에 찍어먹었는데, 금방 한 찰밥이 맛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돌아갔다.

주택가를 돌아다니다가 골목 안 그늘에 앉았다. 아이들이 골목과 집 안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는데, 젊은 엄마가 창문 너머로 나를 보더니 물 한 컵을 가지고 나와 대접했다. 기품 있는 미인이었다. 기품이란 게 다른 지역에선 보기 드문 덕목인데, 놀랍게도 라오스인들은 대부분 기품이 있었다. 그들을 보니 기품이란 편안하고 여유 있는 성품에서 우러나는 것인 듯싶었다.

잠시 후 그녀의 남편이 다가와 앉았다. 그는 여행사에 다니고 그의 부인은 여행자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에게 관광객이 많아지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관광업에 종사하니 관광객이 많아지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루앙프라방의 옛 모습이 사라지는 건 문제라면서, 관광객들의 야한 옷차림이 여자아이들에게 줄 영향을 걱정했다. 그 얘길 듣는 순간 그가 지키고자하는 전통사회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남녀가 유별할 그 사회에 저항감을 느꼈다. 오래된 삶의 방식을 지킨다는 건 결코 낭만적인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날 밤 왕실로얄극장에서 전통극을 보았다. 악의 왕 톳사칸이 아름다운 시다를 흠모해 납치하려하자, 여러 신들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아름다운 시다는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무대 한 복판에 고개를 45도로 떨군 채 앉아만 있다가, 승리한 톳사칸의 손에 울며불며 끌려갔다. 시다는 내가 본 가장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였다.

keyword
이전 05화사바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