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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Oct 17. 2023

고려인김치 마르코프차

되살아난 맛의 기억

교회  파트락


  며칠 전 교회에서  땡스 기빙  파트락 행사를 했다.

매해 하는 행사지만 이번 파트락은 더욱더 풍성하고 감사가 되었던 특별한 경험의 시간이었다.

끝이 없이 펼쳐진 다국적 음식이며 그 많은 숫자에도 혼선 하나 없이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봉사자들의 손길. 무엇보다 놀라운 건 김치를 이제 웬만한 외국인들도 익히 알고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온 식구가 분주히 움직여 초밥롤을 한 상자 만들었고 김치를 만드는라 내손은  하루 전부터 이미 바빴다.

교회 입구에 도착하면 각자가 가져온 음식들은 바로 카트에 실려 주방으로 내려가 봉사자들의 손에 들려진다.

음식 세팅은  가져온 당사자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각파트별 담당 봉사자들이 있어 우리는 가져온 음식이  따뜻하게 해야 할 음식인지 차갑게 그대로 내어도 되는지만 알려 주면 된다.

 내 요리가 어디에 어떻게 놓였는지는 식사줄에 서지 않는 한 아직 알 수가 없다.

 

  샐러드는  세계인의 무난한 음식으로서 보통 파트락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그 종류도 다양하여 테이블 초반부를 한상 그득히 각종 샐러드가 채워 준다.

  샐러드를 시작으로 여러 고기종류의 음식과  수프, 빵 등 각기 자신들의 나라의 레시피로 만든 음식들이 테이블의 꽃을 이루면 또 다른  테이블에선 각종 베이크 음식과 케이크 쿠키들이 디저트를 책임진다.

 내가 가져온 김치는 야채임에도 샐러드 파트에  놓여 있지 않았다. 설마~냄새나고 요상 타고 한쪽 귀퉁이에 추리하게 박혀 있는 건 아니겠지... 순간 걱정이 스쳤다.

  그럼 그렇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온갖 멋진 메인 요리들 틈에 한자리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내 김치를 보자마자 가슴이 뛰고 자랑스러웠다.

이날 동물이 아닌 식물임에도  특별 취급을 받은 요리는 김치가 유일 무이했을 것이다.

  


 사실 김치는 처음이다. 나의 파트락 메뉴는 언제나 초밥롤이었다.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으니 파트락 메뉴로는 이만한 게 없다. 초밥은 이미 북미에서 값비싼 음식으로 통하고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검증된 음식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초밥은 한국 음식이 아닌 일본 음식이라는 게 늘 아쉬웠다.


배추막 김치와 무김치

  

  요즘 SNS 나 뉴스 기사를 보면  한국문화가 세계에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옳거니 좋은 기회다. 한번 시험 삼아 가져가 볼까? '

김치의 반응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시와 함께  파트락 테이블 위에 놓인 김치가 긴 줄이 절반도 채 오기 전에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다. 이 것으로서 세계의 관심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이작은 도시, 이작은 교회 안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내 식사 접시는 아직 올라온 게 없고 김치가 이미  동이 나고 말았으니 아직 남아있는 샐러드 파트에 다시 눈길이 갔다.

뒤에서 따라오던 한 우크라이나 분이 손가락으로  컨테이너 하나를 가리키며 이것도 김치라고 알려주었다.

김치라는 말에 눈을 번쩍 뜨고 자세히 보았다.


마르코푸차 소금절이기와 완성

채 썬 당근이 앙증맞은 볼에 곱게 담겨 있었다.  당근색이 주황색이어서인지 빨간 고춧가루를 사용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색깔만큼은 김치처럼 빨간 고운 색이었다.

'이 김치 이름이 뭐지요?' 내가 물었다.

"마르코푸차에요" 그가 대답해 주었다.

꼭 사람 이름 같은 게 외우기도 어렵고 차가 자꾸 치로 발음이 되었다.  

마르코프차는 고려인들이 즐겨 먹는 그들의 전통  김치다. 그들이 고향 조선을 떠나 새로운 땅에 이주해 살면서 그나마 쉬이 얻을 수 있는 재료가 당근뿐이었다 한다. 김치가 그리웠던 그들은 당근 김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한다.

  그 옛날부터 고려인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한 당근 김치가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중앙아시아에서 누구나 아는 인기 음식이 되었다 한다.


  '마르코푸차'의 '마르코푸'는 러시아 어로 '당근'이라는 뜻이고  차는 우리나라말 '채', 당근채, 무채 할 때 그 '채'가 변형된 말이다. 뜻인즉 당근채 김치라는 뜻이다.

 눈으로도 입으로도 어디를 봐도 우리나라 김치와는 영 거리가 있다고 나름 확정했다. 겉에는 오일감이 짙고  맛은 매운기가 하나 없이 새콤달콤 한 맛만 나는 게 오히려 프랑스 당근샐러드 '라페'를 닮은 듯했다. 그러나 모양이나 맛이 어쨌든 간에 그는 김치라 하였고  salad 혹은 salat로 부르는 영어나 러시아 이름이 아닌 한국어 Kimchi, 단어를 사용하여 '마르코푸 김치'라고 다시 한번 강조해 주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는 한국인이 합류하기 7년 전  캐네디언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두 가 정의 러시아 인들로만 이루어진 작은 교회었다. 한 할머니께서 애기해 주시기를  매주 일요일 뒷좌석에서 예배자들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여기저기 듬성듬성 보이는 건 백발노인의 머리들뿐... 너무 안타까웠단다.

 불현듯 위기감을 느낀 어르신들은 한마음으로 대대적인 눈물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한다.

 믿음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젊은이들을 보내 달라고...

윤기 좌르르 생기 넘치는 젊은이들의 머리로 이 빈자리들을 채워달라고...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이 젊은이들을 서포터 하는 일에 남은 인생을 걸겠다고...


  이 분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그 기도의 바람을 타고 우리 한인 그룹이 제일 먼저 합류하게 되었고 곧 러시아 그룹, 아프리카 그룹이 이어  합류 하였다. 정말로 이분들은 기적이 일어났다며 좋아하셨고 문화도 언어도 다른 새로 영입된 신자들을 위해 물심양면 최선을 다해 섬겨 주었다.

지금은 그분들 중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없지만  당시 사랑으로 품어주셨던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이렇게 시골 마을 작은 교회는 국제적인 교회로 거듭났다.


 작년과 올해(2022~2023 )는 캐나다 정부의 난민 수용정책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인들이 대거로 입국했고 교회의 남은 빈자리도 우크라이나 인으로 모두 채워졌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우리 한민족을 뿌리로 둔 고려인 가족이 합류하였다.

할머니와 아들과 어린 손주 3대가 함께 사는 가족인데  조상들이 러시아로 정착한 이후 자신이 무려 4대째라 했다. 19세기 격변하는 조선과 이데올로기 냉전시대를 거쳐 어떤 이는 먹고살기 위하여 어떤 이는 독립운동가로서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고된 여행길에 몸을 실었을 테다.  그 당시에는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 길이  결국 대대로  긴긴  타국살이 삶을 살게 될 줄은...


 끈질긴 생명력은 제아무리 춥고 척박한 낯선 땅으로 거듭거듭 내몰려도 꿎꿎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또 열매를 맺었나 보다.

 이들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시대적  비운아들이요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역사 속 슬픈 주인공들이었지만 오늘날 이들의 후손들은 고려인이라 불리며 이렇게 꿋꿋이 세대를 이어왔고   또 멀고 먼 캐나다 까지 왔으니 그러고 보면  한민족의 투지와 생활력은 대단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들에게 또 하나 감동된 것은 그 수차례 이주에 이주를 거듭하면서도  그다지 좋을 게 없을듯한 모국의 문화를 그들 나름 최선으로 지켜온 모습이다.



  


  식사가 끝난 후 한고려인 청년이 내게 다가와 자신의 인스타 피드를 보여주었다.

여러 가지 한국음식과 특히 김치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마르코프차는 물론이고 배추김치, 무 김치, 토마토와 브로콜리를 함께 담은 아이디어 신선한 김치도 있었다. 자신의 할머니가 한국음식을 기억하므로 한국 음식을 때때로 만들어 주시는데 자신도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아 늘 할머니와 함께 만든다고 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해 살 때 언어는 제일 먼저 잊히고 음식은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다고 한다. 음식은  가족이고, 고향이고, 영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김치, 전용 김치 냉장고까지 갖추고 일 년 내내 아니 그 이듬해까지 넉넉히 먹을 수 있는 김치가 통마다 그득그득하다.  아마 한국에서 파트락에 김치를 가져간다면  성의 없다고 웃음거리만 될게 뻔하다

제일 만들기 번거롭고 한국주부들이 힘들다고 만들기 꺼려하는 음식 1순위임에도 한국에서는 그다지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치가 뭐 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김치는 별거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단단히 세워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 흔한 김치가 지구 저편 누군가에게는  영락 샐러드 같아 보여도 굳이 김치가  되는 이유이고  비록 맵지 않아도 기어코 김치가 되는 이유이고 당근이든 브로콜리든 꼭 배추가 아니어도 꼭 김치라 불리어지는 이유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나는 그에게  전통 한국식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고 그는 나에게 고려인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아주 특별하고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아  벌써 기대가 된다.

     

  한국에서 살 때는 고려인을 봐본 적이 없다. 고려인은 고사하고  고려인에 대한 정보하나 들어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 이들을 보고 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과 러시아 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겉으로 보기에 모습은 꼭 우리 한국인과 다를게 하나 없는 영락 한국인인데  비록 한국어는 못할지라도  우리가 러시아인과 소통 시 애를 먹어가며 오직 영어로만 소통하는 한계가 있는 반면   이들은 러시아 어로 구애 없이 시원시원 소통이 되고  영어권과도 걸림이 없다. 이들의 모국어가 러시아 어라는 사실이 당연함에도 '와우! 한국사람이 러시아어를 참 잘하네!!'라는 느낌이다. 또한 하나같이 영어도 잘하니 그 모습이 신기하고 그들이 얼마나 이국땅에서 힘을 다해 살아냈는지  참으로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마음은  달랐다.

러시아에도 한국에도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정체성이 이들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든다고 했다.

비록 우리가  한국어로는 단 한마디도 통하는 게 없지만 너나 나나 이곳 캐나다에선 외국이요 같은 이방인이니  그냥 그 한마디 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온전한 러시아 커뮤니티에도 온전한 한국인 커뮤니티에도 그렇다고  영어권에도 속할 수 없는 이들이 최선으로  선택한 건 이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네 것도 내 것도 고집하지 않는 범 국가적 공동체. 이들에게는 편안하게 그들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 같은 공동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7년 전 이곳 어르신들이 하염없이 부어주셨던 사랑을 이제는 우리가 흘러보내야 할 때가

드디어 온 것인가!!!  


마르코프차를  서양에서는 샐러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러나 마르코프차는 확실히 김치가 맞다

고려인들의 김치!!!!!!










                                                       고려인김치 마르코푸차



마르코푸차




< 재료 >



당근 2개, 양파 1/2, 소금 1T, 설탕 1T, 식초 1T, 고춧가루 1T, 식용유 2T, 올리브유 1T, 마늘 1/2T

고명 - 송송파, 통깨






< 만드는 방법 >



1. 당근을 깨끗이 씻은 후 껍질을 벗기고 채칼로 채를 썬다.

2. 1에 소금을 뿌려준 후 골고루 간이 되도록 손으로 섞어준다.(30분 경과)

3. 절인 당근을 물기를 꼭 짜준다.

4. 넉넉한 볼에 당근을 담고 설탕, 식초,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준다.

5. 양파를 채 썰고 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뜨거워지면 마늘과 채 썬 양파를 넣고 매운기가 없을 때까지 볶아 준다.

6. 볶아낸 양파, 마늘을 4의 양념된 당근에 섞는다.

7. 모양을 낼 수 있는 용기에 꾹꾹 눌러 담고 플래이팅 접시나  볼에 거꾸로 엎어 모양을 유지한다.

8. 통깨와 송송파를 위에 솔솔 뿌려 장식 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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