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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Oct 16. 2023

 국수의 위력

되살아난 맛의 기억  

  우리는 국수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갑자기 국수의 기원이 궁금해졌다.

사실 궁금해졌다기보다 애들이 국수를 먹다가 질문을 해왔다.


"엄마, 왜 우리나라는 결혼이나 생일 같은 잔치날에 국수를 먹어요? 다른 맛있는게 많이 있잖아요."

'국수가 면이 길잖아 그래서 장수하라는 의미가 있고, 잔치에는 특별히 음식이 많이 필요하니 조리가 쉽고 경제적이어서 국수를 먹게 된 게 아닐까?'

라고 대답해 줬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장수의 의미는 맞지만 그 옛날 결코 국수가 저렴하거나 서민적인 음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밀은 재배하기가 까다로운 작물이라 한다.

 중국은 땅이 넓다 보니 오래전부터 밀 재배를 해왔고 기원전 6천~5천 년 전부터 국수를 만들어 먹어 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밀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어렵다 보니 밀이 귀하고  밀가루가 매우 비싸서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잔칫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한다. 대신 메밀 재배가 용이해 메밀에 전분을 섞어 만든 메밀국수가 널리 이용되었다 하니  경제적인 국수는  밀로 만든 국수가 아닌 메밀국수인 것이고   지금 아이들과 내가 먹고 있는  이 잔치 국수는 값비싼 고급 음식이었던 것이다. 또한  만드는 법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작업인지 국수 만드는 재래 영상을 보니 손쉽고 저렴한 음식이라고 단정 지었던  나의 무지함이 부끄러워졌다.

여전히 밀재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그 옛날 귀하던 국수를 저렴하고 손쉽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6.25 이후 식량 부족을 겪을 때 미국으로부터 밀가루를 들여와 보급하면서 국수가 특식이 아닌 식량으로 보편화되었고 점점 혁신적 가공기술과 결합되어 현재 이렇게 값싸고 조리 편한 대중적인 음식으로 발전하게 된것이다.   

'양식표 잔치 국수'


  언젠가부터 내가 끼니에 국수를 찾는다는 것을 알았다. 허기지진 않아도 건너뛰기엔 왠지 허전할 때, 부담 없는 끼니를 해결하고 싶을 때,  마땅한 꺼리가 없을 때,  국수는 참 요긴하다. 때로는 매콤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달콤하게  때로는 쨍하도록 시원하게 때로는 온몸이 녹아들듯 뜨끈하게...


  내가 국수를 내 손으로 해 먹기 시작 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워낙 면종류, 특히 소면처럼 식감이 흐물 맹맹한 것은 딱 질색이라 시아버지가 잔치 국수를  참 좋아하시는데도  십 년이 넘도록 함께 살면서 국수를 내 손으로 끓여 드려 본 적이 손에 꼽는다. 내 나름은  정성을 들여 몇 번 만들어 드렸지만 국수의 찐 맛을 모르다 보니 아무리 레시피를 알려 줘도 조리 순간 순간 마다의 포인트를 놓치니 늘 실패다. 

  그렇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아버지가 국수를 드시는 시간이 야식 타임이라 며느리에게 부탁하기 미안한 감도 있었을 터 내게 부탁을 잘하지 않으셨다.  결국 국수가 드시고 싶을 때는  손수 만들어 드셨는데 솜씨가 꽤 좋으셨다. 

  가끔은 아들이, 가끔은 어린 손자, 손녀가  둘러 앉아 아버님의 야식 타임을 함께 즐겼다.

 '호로록 호로록 촵촵!!'  소리 만큼은  참 맛나게 들렸다.

 국수 별로인 나로서 야식으로 국수를 드시는 아버님이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야식은 가장 맛있고 가장 아껴둔 메뉴로서 최후의 통첩 ( 다이어트 관리차원에서 갈등조정 마지막 단계 ) 순간까지도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하건만 매번 아버님은 국수가 최선이고 최고였다.


  내게도 드디어 국수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된 때가 왔다.

앞장에서  언급했듯이 국수 종류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두 그릇을 먹을 정도로 끝내주는 국수 애기를 빠뜨리고 갈 수는 없다. 그녀의 국수 일명

  양식표 잔치 국수
 

  어느 날 국수를 해주신다기에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내가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반면 남편은 면 요리는 뭐든 다 좋아하고 국수는 비빔국수건 장국수건 가리지 않고 그의  아버지처럼 즐겨 먹는다. 분명 남편을 위한 초대겠거니 하며 나는 맛만 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국수는 육수 모양새부터  아버님이 끓이시던 국수와는 몹시 달랐다.


  보통 고명채는 호박 당근 계란지단 등을 얇게 채 썰어 소면 위에 살짝 올리는 것이 아닌가?

 야채는 그야말로 고명 역할이라 알고 있는데 ...


  그녀의 육수에는 굵직하게 채 썰은 애호박과  버섯 양파가 이미 섞여 있었다.  그것도 듬뿍.

 야채와 잘 어우러진 육수 한냄비가 색고운 자태로 물받이 싱크대위에서  한 김 날리며 대기 중이었다.


  그녀만의 맛의 비결이 여기에 숨겨져 있었다.

첫 번째 비결은  다른 야채들보다 호박을 넉넉히 듬뿍 넣는다는 것이다. 또한 가늘고 고운 채를 썰지 않고 굵은 채를 썬다는 것이다.  그래야 호박의 달큰한 맛을 식감과 함께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육수를 한 김 식히는 것이다. 

  국수는 아무리 잘 삶는다 하여도  말았을 때 육수의 남은 열기가 국수의 쫄깃함을 앗아가 금세 흐물 딱 퍼진 국수가 되고 만다. 그러나 한 김 나간 국물은 마지막 남은 젓가락까지  탱글 하게 해준다.

  잔치 국수를 싫어한 이유가 국수의 물컹한 식감 때문이었는데  그녀의 국수는 쫄깃함이 살아있다.

 물론 뜨끈한 국물에 잘퍼진 국수를 좋아하는 이도 많겠지만 뜨거운  국물 대신 쫄깃한 식감을 잡은 '양식표 국수'에 나는 한표를 던진다.  

  그 길로  나는 '양식표 잔치 국수'의 팬이 되었고  레시피도 고이 모셔왔다.  

 

  굵은 국물멸치와 표고, 양파껍질 파머리, 무를 넣고  진한 국물을 낸 후  찌꺼기를 깨끗이 걸러내면

 이것은  잔치국수의 기본 육수가 된다.

걸러낸  맑은  육수를 다시  끓이다가 조선간장과 액젓으로 슴슴한 밑간을 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국수와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양식표 국수'의 키 포인트는 이때 부터다. 

육수가 끓어오를 때 위에서 말했듯이 호박과 야채를 넣어주고 한번 끓어 오르면 빠르게 냄비 뚜껑을 열고 한 김 빼준다. 육수를 급하게 사용해야 한다면 싱크에 찬물을 받아 냄비째 물에 담가두자 그러면 뜨거운 기를 빨리 보낼 수 있다.

  

  국수를  삶을 때도 비법이 있다.  물은 넉넉히 넣고 물이 끓으면 국수를 주먹으로 한 줌씩 잡되 (한 줌=1인분)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잡아  지그 재그식, 가로 세로로 차례차례 넣는다. 한꺼번에 한 방향으로 면을 때려 넣었다간 서로 붙고 뭉쳐서 쫄깃한 국수를 만들 수 없다.

  국수를 다 넣으면 바로 휘젓지 말고 물이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리자.

서로 붓지 않도록만 살짝씩 젓가락으로 건드려 주듯 저어주면 물이 탁해 지지 않고 삶는 내내 맑은 물을 유지 할수 있다. 

  면이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면  물 반컵을 붓고 계속 끓인다. 다시 두 번째 끓어오를 때 한 번 더 물 반컵을 붓고 휘리릭 저어준다.

 이와 같이 얇은 면은 1~2회 굵은 면은 2~3회 찬물을 끼얹어 주고 면이 잘익었는지 확인후 꺼내준다.  

   확인하는 방법은 국수를 몇 가락 꺼내 찬물에 헹궈 투명해지면 잘 익은 거다. 시원한 물을 미리 받아두어 두세 번  깨끗이  헹궈 내주면 국수 삶기는 끝이다.

 이렇게 국수를 삶으면  실패 없는 쫀득 탱글한 국수를 먹을 수 있고 한두 번만 해보면 국수가락을 굳이 꺼내어 확인하지 않아도 국수가 잘 익었음을 확신할수 있다.

아,  국수를 헹굼질 할 때 빠뜨리면 안 되는 동작 하나가 있다. 바로 주먹크기만큼 사리를 지어 소쿠리에 담아 놓는 것이다. 이 작업도  깨알 포인트이니 잊지 말자.  


 세 번째 비법은 국수를 삶아내는 타이밍이다. 미리 준비해 놓은 육수가 너무 식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알맞은 적정온도 약 80도로 내려갈 즈음에 그녀의 국수 삶기도 마무리된다.


  이보다 앞서 이미 완료되어야 할 순서는  양념 장을 만드는 일이다.  

이 양념장이 또 비법 중에 비법이다.

 액젓과 간장을 잘 배합해 다진 파, 청양고추, 파프리카를 듬뿍 넣는다. 간장이 짭조름하므로 배합하는 야채를 충분히 넣어주어야 양념장을 크게 한술 넣어도 짜지 않고 아삭아삭 야채가 씹히면서 맛이 상큼해진다.  여기에 깨를 듬뿍 넣고 고춧가루 마늘 설탕 참기름을 잘 섞어 주면 비법 간장 완성이다.   

육수 넣은 국수 위에 양념간장을 한 숟갈 얹어 휘리릭 말아준 뒤 한 저가락 야무지게 감아 입에 쏙 넣으면  양념 육수에 멱을한 쫄깃한 면과 호박의 달큰함이 들어 올린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국수를 먹으면서 감초처럼  딸려 오는 그녀의 젊은 주부 시절 괴짜스런 이웃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때마다 웃음이 터진다. 가끔 그녀가 건너뛸라치면 내쪽에서 먼저 꺼낸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 그녀가 풋풋한 육아맘 시절 강남 개나리 아파트에서 살던 애기다.


" 이국수가 이래 봬도 강남에서 소문난 국수야~"로 운을 띄운다.

"내가 만든 국수를 이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면 내 젊은 시절 우리 앞집에 살았던 ㅇㅇ씨가 생각나.

그 가 내 국수를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두그릇은 뚝딱이었어.  국수로 친해진 집이 그 집이야. 처음 이사왔을때는 서로 쌩뚱 했는데  어느 날엔가 앞집 남자가 술이 잔뜩 취해서는 우리 집 대문을 자기 집인 줄  착각하고 벨을 잘못 누른거야~ 그게 앞집이랑 트고 사는 계기가 되었지.

  그 다음 날 우리집에 국수를 했는데 앞집이 생각 나더라고 술독도 풀 겸 좋겠다 싶어  한 그릇 갖다 줬지.

 나는 맛없으면 절대 남 안 주는 사람인데 그때도 내가 만든 국수에 자신이 있었나 봐~  

그 남자가 내 국수가 너무 맛있었다고 오고 갈 때마다 인사를 하는데  그말이 진심이더라고 

그래서 그 담부턴 국수를 할 때마다 집으로 불러 같이 먹게 되었지. 

 여름엔 열무김치가 얼마나 맛있어~  열무김치를 맛있게 담가서 국수랑 말아주면  그걸 또 그렇게 맛나게 먹더라고 그러니  내가 김치나 반찬을 만드는 때는 꼭 그 집 것도 같이 해서 줬지.

 인물도 훤~하니 잘생겼고 예의도 바르고 그렇게 점잖을 수가 없더라고 ~

 살면서 그렇게 남자답고 괜찮은 사람은 첨봐"


 그녀의 입에서  멋있는 남자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나는 그녀의 성격을 오래 보아와 잘 안다. 쉽게 외모를 칭찬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의 외모가 아무리 출중해도  손짓 발짓 같은 미묘한 동작이나  말투에서 그 사람의 인격을 잡아내는 순간 미달이면 아웃이다.

 요즘엔 오랜 습관처럼 가져온  잣대의 눈이  잘못되었다 심히 반성하는 눈치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더욱 그 잣대가 엄격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정도면 외모는 둘째치고 사람 됨됨이 부터 나무랄데가 없는 사람이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할아버지 집사님 보다 더 잘생겼어요?'

"저 할아버지는 쨉도 안되지~ 니 보기에는 할아버지가 잘생겼냐?"

' 어머나 완전 아드님이랑 똑같이 생겼잖아요~ 아드님 잘생겼다고 다들 그러시지 않나요? '

나는 맞은편 벽 쪽에 걸어 놓은 진열대위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호호호 그렇네~ 우리 아들은 참 잘생겼지...  몰랐던 사실을 네가 알려 주니 고맙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셨던 건지 고맙다는 말에 나는 다시 물어보았다.

' 어찌 그 좋다고 좇아 다니던 이들 다 마다하시고 할아버지 집사님과 결혼하셨어요? '

"생긴 건 엄청 못생겼는데 저 사람은 무섭지가 않더라고,  따라다니지도 않고, 내게 관심도 없고, 예쁘다고 말한 적도 없고, 직장에서 오랫동안 봐왔는데 말없이 조용히 나를 도와 주드라고 그래서 신뢰가 갔지. "

  그녀가 하는 말에 의심 없이 수긍이 갔다.  그 성격은 지금도 변함 없으시니 말이다.


  "알고 봤더니 충청도 사람들은 여자를 똑바로 못 보더구먼~  충청도 문화에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코 밑으로만 봐야 된데~ 고 위를 보거나 눈을 마주치면 아주 예의 없는 상놈이래~  그러니 뭔 여자들한테 관심이나 갔겠어?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앞집 여자를 2년이 넘도록 몰라봐 그래?

맨날 마주치고 맨날 인사해도 몰라봐~ 맨날 누구냐고 물어~ 아이고!  처음엔 앞집 여자한테 미안해서 속삭이듯 알려 주다가 나중에는 하도 답답해서  물으면 바로 귀에다 대고 악을 썼지  ' 앞집 여자 잖어!!' 하고

  하! 하! 하! 하! 그녀가 그 시절을 옆에 남편분을 앉혀두고  똑같이 재현해 보이시니 어찌나 재밌던지   허리를 제치고 웃어댔다.

이렇듯 두 분은 자타공인 자신과 상대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미남 미녀임에도 불구하고 50 평생 함께 살면서 여태 그것도 모르고 사신듯하다 아마도 그 정도로 외모를 뛰어선 또 다른 강한 매력이 서로에게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리라.  



'맛난 국수덕에 이웃을 얻었는데 그래서 그 멋진 분은 직업이 뭐였길래 ㅇ?  

"알고 보니 그치가 선장이었더라고 아이 낳고 선장을 그만두고 회사로 들어갔는데 접대가  일이라 일주일에 삼사일은 술을 먹어야 한데~ 얼마나 힘들겠서~ 그런데 이 여편네는 신경도 안 쓰더구먼, 국수 먹을 때도 그 여자는 안와, 늘 혼자 와서 먹고 가지 같이 오는 법이 없더라고. 얼굴은 달덩이같이 생겨갖고  밉상은 아닌데  새치름한 게  나도 별로 니랑 친하고 싶지 않다 쳇! 했지.

그 여자는  집에서 요리도 잘 안 해 먹는지 가끔 그 집에 들르면 주방이 요리하는 흔적이 없어  시간만 나면 운동하러 가느라 도통 살림에는 관심이 없더라고. 


 "어떻게 저런 멋진 사람이 저런 여자랑 결혼을 했을까? 항상 의아했지.  그 여자가 얼마나 웃기는 사람이냐면

 어느 날 집에 있는데, 앞집의 아랫집 여자가 찾아온 거야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제발 윗집 (그녀의 앞집) 여자에게 애기 좀 해달래~ 자기 집에 천장에서 물이 새는데 고치려면 먼저 윗집 바닥 어느 부분에서 물이 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기술자를 동원해 찾아가서 몇 번이고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봐도 도대체 문을 안 열어 준다는 거야 나더러 문을 열어 주든가 아니면 물이 새는 부분을 체크해서 알려주든가 둘 중 하나를 좀 해달라고 그 여자한테 말을 전해 줘라는 거야.

그래서 앞집으로 당장 쫓아 갔지 그리고는 손가락을 얼굴에 딱 쳐들고서 '아니 , 너 왜? 문을 안 열어주냐?  밑에 집이 물이 샌다는데 네가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냐?  네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답답하지 않겠어? 니 편하자고 남 불편한걸 그냥 모른척하면 되냐 안 되냐?  ' 하고 호통을 쳤지  

'  그래서 뭐래요?  모르는 사람들이 서있으니  무서워서 그런 거래요? '

  나도 이해가 안 되어 나름 어림짐작 다시 물었다.

"아니 모르긴 뭘 몰라 ~  귀찮아서지~ 아이고~내참!!"

그 여자가 하는 건 맘에 든 게 하나도 없어 뭘 알고 사는지 모르고 사는지  내가 답답해가지고 막 나오는 대로 퍼붓고 보는 거야~

'그래도 서운함도 없이 권사님 말에 고분 고분 하는 게 신기하네요~'

" 나이는 저나 나나 비슷한데 시시 콜콜 가르치니 나는 그 여자 시엄마야! 시엄마! 

 그러니 내가 얼마나 싫겠어 그런데 싫어하지 않더라고~ 오히려 좋아하더라고 그게 나도 신기해.

   깊은 사연은 잘 모르겠지만  있는 집안에서 걱정 없이 곱게 자라다 집이 망했는지... 암튼 이때껏 이웃해 살면서 가족이든 부모든 친구든 한번 찾아오는 사람을 못 봤어~ 가끔  가뭄에 콩나듯 시어머니가 아들보러 오긴 한것 같던데 시어머니가 왔다 가기만 하면 부부 싸움을 하는 거야

'시어머니가 잔소리를 많이 하셨나 보죠?'

아니! 그 할머니가 얼마나 점잖으셨는데~ 지 신경 쓰이고 귀찮아서 그렇지 뭐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요즘은 반찬이나 음식들 먹고 싶은 대로 포장해 오면 되지만 그때는 파는 곳이 없었어~

 그 여자 눈치 보느라 그 할머니에게 인사 한번 못건넨겐  마음에 이리 남네 그래?"  그녀의 눈살이 더욱 찌푸려졌다. 

알고 보니 그여자  진심으로 마음 터놓을 사람도  없었더라고~  외로웠더라고...

 그러니 내식구처럼 국수 만들어 먹여, 반찬 갖다 줘~ 신랑 챙겨줘~  고마웠던 거지 내가...

  

  어느 날은 그릇을 찾으러 갔더니만 뭔 일로 미역국을 끓이고 있더라고 그 여자가 요리 못하는 걸 아니까 가까이 가서 봤지 세상에나 미역국이 기름투성인 거야 그래서 며칠 전 봤던 참기름 통을 얼른 확인했지 가득이었던 참기름이 반도 넘게 사라졌더라고 그때도 내가 호통을 치면서 미역국 끓이는 법을 가르쳐 줬어.

 

  또 한 번은 시장을 가는데 어느 가게 앞에서 도둑으로 몰려서 주인에게 팔목이 잡힌째 망신을 당하고 있더라고 저 여자가 저런 일을 당할 사람이 아닌데 뭔 일인고  하고 가까이 갔더니 그 여자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가지고서는 내 옷을 살며시 잡는 거야  아, 도와 달라는 신호구나. 뭔가 오해가 생긴 거구나 생각했지.

얼른  앞에 나서서 저 여자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주인에게 이 사람을 대변해 줬지.  겨우 오해를 푼 후 달래서 집으로 데려다줬어"


'아니, 오해라고 본인이 말하면 되잖아요 왜 말을 못 했데요? '


그 여자가 좀 그래, 말주변도 없고 표현도 잘못하고, 근데 악의나 잔머리는 없어 순수해  그날도 물건하나 살려다가 이것도 만져보고 저것도 만져보고 뭔가 우물쭈물 하다가 오해를 산 것 같더라고~

그 담날 앞집 남자가 와서 또 고맙다고 얼마나 머리를 조아리던지...


'지금도 연락하세요?'

국수로 맺은 따뜻한 이웃의 연이 캐나다 이민으로 끊어진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에 얼른 물었다.

"가끔 연락하면 너무 좋아하지~ 이제 우리도 이리 늙어가지고 옛날 얘기 하면 웃지 뭐~"


예나 지금이나 강남이나 변두리나 한국이나 캐나다나 '양식표국수'의 힘은 대단하다.

이 국수의 레시피를 전해 받은 자로서 나의 소망은 비법 레시피와 함께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위력까지도 고스란히 내게 전해오기를 바라본다.






  




 

'양식표 잔치 국수' 에 깨소금과 양념장 얹기





< 재료 >


소면 5인분, 호박 1개, 양파반 개, 표고버섯 3개, 송이버섯 5~6개, 물 1000L

육수용 - 물 1300L, 멸치 30g, 양파껍질 1개, 파머리, 무,

양념장 - 액젓 3T, 간장 6T, 초록색 파프리카 1/4쪽, 청양고추 2개, 족파4줄기 고춧가루 2T, 다진 마늘 1t,

참기름 1T, 설탕 1/2T

통깨를 넉넉히 갈아둔다.





< 만드는 방법 >


1. 육수재료를 모두 넣고 끓어오르면 불을 약불에서 10분간 더 끓여 진한 육수를 낸다.

멸치는 중간에 꺼낸다.

2. 육수가 끓는 동안 파프리카 청양고추 쪽파를 잘게 썰어 양념장 재료들을 모두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 놓는다.

3. 우러난 육수를 깨끗이 채에 받치고 맑은 육수만 다시 냄비에 붓고 끓인다.  다른 불판에는 국수삶을 물을 끓인다.

4. 육수와 국수 삶는 물이  끓는 동안에 호박과 양파 표고, 송이버섯을 채 썬다. 이때 호박은 0.4~5m 두께로 굵게 채 썬다.

6. 육수가 끓으면 양파를 먼저 넣고 버섯 호박 순으로 넣고 끓어오르면 바로 불끈 후 뚜껑을 열고 불판에서 옮겨 열기를 한소끔 식힌다.

7. 국수를 삶아낸다. (2회 찬물 끼얹기)

8. 찬물에 국수 헹구기 마지막 헹굴 때 사리 지어  소쿠리에 담기.

9. 사리지은 국수 한 뭉치씩 그릇에 담고 육수를 건더기와 함께 넉넉히 부은 다음 빻은 깨소금 한쪽에 뿌려주고  양념장을 올린 후 맛있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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