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림이나 국물을 낼때 시원하고 감칠맛을 내는 재료로는 뭐니 뭐니 해도 멸치가 널리 사용된다.
된장찌개, 청국장, 무국...아, 김치찌개에도 멸치를 대여섯마리만 넣어주면 칼칼한 국물맛이 개운해지니 멸치육수는 유독 김치와 잘 어울린다. 비릿하면서도 구수한것이 거의 모든 한식 국물 요리에는 멸치가 효자 생선이다.
노르끼리하고 통통한 배사이로 거무튀튀한 내장을 빼꼼히 내놓은채 막대처럼 단단히 말라 죽은 이 작은 생선의 몸에서 이렇게 엄청난 힘이 나오다니...
그 어떤 화학 조미료 보다 압도적인 국물 맛에 놀라 바가지에 담긴 작은 멸치들의 똥을 빼낼때 마다 나는 경의를 표하며 하얗게 번뜩이는 눈들 하나하나에 작별을 고한다.
세상의 이치가 아무리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원리로 돌고 돈다 하더라도 마른 멸치는 작디 작은 몸집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태 자체로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저 국물로서 그 수임을 다할 뿐이요 혹 다른 용도로 (볶음이나 무침용 )쓰일라치면 그 몸이 누군지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헤체 되어야 한다. 그리 분리 시켜도 식탁위에 올라오자마자 멸치라는것을 단박에 알아차리니 그이름 참 유명도 하다. 제아무리 유명해도 다 우려낸 멸치는 한번이면 족해 더이상 쓸모가 없다. 왜그리 비릿하고 식감은 또 흐물거리는지 세상 볼품없고 맛대가리 없어 조리가 다 끝난 음식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그 모양새가 식욕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하고 혼신을 다해 넣은 정성까지 의심받기 십상이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눈치 없이 늘어져 있는 이 작은 생선에게 그 누구도 따사로운 눈길을 건네지 않는다. 머리에서부터 몸통까지 온전히 붙어있는 완전체 멸치여도 이아이는 그냥 멸치대가리 라 불린다. 멸치 대가리는 임무를 다한 즉시 누가 볼세라 얼른 건져내 음식물 쓰레기통에 여지없이 버려줘야만 센스있고 솜씨좋은 주부다.
밥때는 매번 왜이리 빨리 오는지... 때꺼리를 찾는중 마땅한게 없어 있는 감자로 간단히 고추장 찌개를 하기로 했다. 실은 장보러 가기 싫을때 종종 해먹는 음식이다.
고추장 찌개의 유래가 장문화와 고추장의 원산지인 전라도 에서 생성 되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고향이 전라도이고 전라도에서 30년을 살아온 이로서 확실히 말해 두건데 전라도는 된장을 넣은 음식이 발달되었지 고추장을 이용한 요리는 그리 많지 않다. 고추장 찌개의 원조가 어느 지방인지는 알수 없으나 전라도 내 고향식 고추장 찌개는 감자만이 아닌 호박을 함께 넣기도 한다. 고추장 조금에 고춧가루를 약간 풀고 국간장으로 간을해 국물을 시원하게 만드는게 특징이다. 그러나 나는 후루룩 국물같은 맛이 밋밋하여 살짝 레시피를 달리 한다. 국물은 자작자작 찌개 같고, 간은 고추장과 간장으로만 간을 하여 달달 짧조름하며 감자외에 두부나 호박 같은 다른 재료들을 섞지 않는다 . 그래야 감자가 제철인 6월에 감자의 꾸덕꾸덕 포슬한 식감과 고소한 맛을 제대로 즐길수 있기 때문이다. 순전히 내입맛에 맞춘 나를 위한 나만의 고추장 찌개 레시피 인 것이다.
먼저 냄비에 감자를 반달 썰어 넣고, 양파 반쪽도 채썰어 넣는다. 물을 자작 자작 감자가 잠길 정도로만 부은 다음 마늘, 고추장 듬뿍, 간장으로 양념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국물내기는 역시 멸치를 한움큼 집어 한쪽에 넣어준다. 나중에 건져내야 하므로 집기 쉽도록 흐트러 지지 않게 한쪽 귀퉁이에 살짜쿵 넣는다. 고추장 찌개에 국물은 꼮 멸치 여야만 맛이 좋다. 더 고급스런 맛을 내보고자 혹 돼지고기며 소고기며 각종 해물을 넣어봐도 결국엔 멸치만한게 없다는 사실에 도달한다.
드디어 칼칼하고 구수한 감자 고추장찌개가 완성되었다. 냄비째 식탁으로 가져와 이미 때 늦은 식사를 시작했다.
김이 모락 모락 오르는 뜨거운 감자를 밥에 척올리고 자작한 국물을 한숟가락 뿌려준뒤 쓱쓱 비벼 한입 먹었다. 여유작작 혼자만의 식사시간이 얼마 만인지... 입가에 스물스물 흩어지는 김처럼 행복한 미소가 함게 퍼져나왔다.고추장찌개는 한겨울 보다는 여름에 더 잘어울리는 음식이긴 하지만 손쉬운 요리라 사시 사철 때없이 해먹기 좋고 맛나다.
얼른 먹고 싶은 욕심에 '키포인트 멸치 건져내기' 작업을 건너뛰고 그대로 냄비째 식탁에 올려놓았다. 투정부릴 아이들도 없고, 눈치볼 남편과 어른들도 안계시니, 멸치 건지기가 뭐 일이라고... 입이 즐기는 동안에 젓가락으로 천천히 저 멸치 대가리들을 건져내면 될것이다. 밥그릇에 밥을 반정도 비우고서야 이제야 하나, 둘, 느긋하게 멸치를 건져내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시 외삼촌이 식탁으로 급히 나오는게 아닌가! 어머님의 막내 동생인 시외삼촌은 직장때문에 잠시 우리집에 머물러 계시는 중이었다. 외삼촌이라고 해봤자 나이차이가 다섯살 밖에 안난 터라 남편과는 형처럼 어떨땐 친구처럼 스스럼 없이 지낸다.
내내 게임에 푹빠져 있느라 방이 너무 조용해서 나는 줄곧 혼자 있는줄만 알았다. 삼촌 역시 출출 하셨는지 숟가락 하나와 밥그릇을 냉큼 챙겨들고 밥통있는 곳으로 가서 밥을 담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이 외삼촌의 동선을 따라가다가 불현듯 좀전까지 젓가락질로 멸치 대가리를 주워 담던 손에 닿자 여유롭던 젓가락질이 갑자기 부지런해졌다. 한공기 가득 담은 밥그릇을 식탁에 놓을때쯤엔 나는 밥먹는걸 멈추고 멸치작업에 가속도를 붙였다.
그런데 이시대를 거스르는 외삼촌의 당황스런 발언!!
"아니, 아까운 멸치를 왜다 건져?"
삼촌은 나보다 겨우 다섯살 위이다. 결코 옛날 어른이 아닌 나랑 별반 다를바 없는 같은 세대 사람이다.
"버릴건가? "안먹을라면 나!나!" 나나는 전라도 광양 사투리로 '그냥 나둬'라는 뜻이다.
순간 할말을 잃고 갑자기 동작그만. 애꿎은 멸치만 쿡!쿡! 찔렀다.
"드세요?" (설마 ...)
"맛있잔애"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냄비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남은 멸치들을 감자와 함께 정말로 맛있게 드셨다.
멸치의 흠을 모든 미식가들이 이런 식으로만 처리해 준다면 나같은 어설픈 주부들이 왜 고민을 하겠는가? 왜 철망이며 걸름국자며,천주머니 이런것들을 주방필수템으로 구비하겠는가?
정말로 좋아해서 인지 번거로운 일거리 하나 줄어주고 싶은 마음에선지는 알수는 없지만 삼촌의 이 어이없는 멸치 섭식이 나에게 국물뺀 멸치의 고정관념을 와르르 무너지게 하는 신세계 였다.
사실 물에 빠진 멸치를 맛있게 먹는 또 한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친 언니다.
오랜 옛날 내가 갓 20살 이제 성인이 되었다고 자부할때( 노,노,신혼집에 얹혀사는 눈치없고 철없는 동생 이었음) 언니는 갓 결혼한 꽃같은 새댁이 었고 배속에 아기가 7~8개월쯤 된 예비 엄마였다.
그날도 언니와 나는 둘이서 4인용 동그란 작은 밥상앞에 마주 앉았다.
형부를 기다리다 늦는다는 연락에 9시를 훌쩍 넘긴 때늦은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배는고픈데 이미 허기를 넘겨버려 먹기에도 안먹기에도 애매한 시간 공복상태이긴 하지만 입맛이 영 나질 않았다. 그날따라 꼬물꼬물 뭔지모를 심통이 올라왔다. 밥상머리에 앉자마자 언니를 향해 반찬 투정을 해댔다. 김치밖에 먹을게 없다 느니, 맨날 콩나물 대가리다 느니, 형부가 없으니 맛있는게 하나도 없다느니, 동생에게는 신경도 안쓴다 느니...
젓가락은 깨작깨작 된장찌개속 멸치를 건져내고 입은 쉴새없이 폭풍 불만 질이었다.
된장국에 맛도 없는 멸치는 왜 또 이리 많이 넣었냐 느니 하면서 불만이 끝날줄 몰랐다.
평소같으면 투정을 정도껏 들어주었을 언니다. 입맛 없으면 우리 길건너 떡볶이 먹으러 가자 라고 했을 언니다 그 날 따라 언니의 심기도 편칠 않았는지 내 투정따위를 받아줄 여력이 없었는지 퉁명스럽게
"아까운 멸치 건져내지 말고 다먹어!"
하며 쐬기를 박았다.
무슨 억지란 말인가? 아까울것 하나 없을것같은 이찬들과 밥. 심지어 국물빠진 맹맛 멸치까지 아까워 하는 마음이라니 언니가 나를 위해 베푸는 모든 것들에 혹 아깝다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아, 언니가 나를 대하는 마음이 꼭 이 보잘것 없는 밥상 같겠거니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르고 서러웠다.
"농담이지? 맛때가리도 없는 이 멸치대가리를 먹으라는 거야?"
질세라 나는 말투에 바늘보다 가늘고 뾰족한 가시를 달아 언니 에게 곧바로 날렸다. 배부른 언니가 무거운 몸으로 밥을 차려다 준것만으로도 감지 덕지지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꼬박꼬박 말대꾸에 반말치며 싹수 없이 구니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언니는 급기야 단어선별에까지 이성을 놓았고 오붓한 좀전의 밥상머리는 온데간데 없이 난리 굿판이 되고 말았다.
그날 옥신각신 서로에게 꽂고 꽂은 화살은 이랬다.
나 : " 뭣하러 가뜩이나 밥맛없는 입맛에 맛도없는 멸치 대가리를 먹으라고 하느냐! "
언니 : "아까우니까 그냥 먹어, 언니도 먹고 있잖아"
나 : " 싫어! 국물도 다 빠져서 영양도 하나 없는거를 뭐가 아까워!"
언니 : "국물이 다빠졌어도 영양이 1%라도 아니 단 0.1%로라도 남아 있으면 먹어주는게 내몸에 도움되지! 버리면 쓰레기일 뿐이다."
나 :" 싫어, 그래도 난 싫어, 칼슘이 필요하면 차라리 우유한컵 먹고 말지, 이건 도저히 못먹어 ,안먹어!!"
언니: "그래도 이것이 말을 안듣고 말대꾸 꼬박꼬박이네, 영양가가 하나 없어도 먹으면 배부르기라도 할거니까 그냥 먹어라고!!!"
나 :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 지금이 보릿고개야? 지질히 궁상은! 결혼하더니 구질구질 궁상만 늘었어!!
언니처럼 사느니 난 결혼 안하고 만다!!!!"
언니 : "뭐? 이게 말 다했어? 그래 나는 사는게 이래서 궁상에 구질구질이다!!!!!"
엉! 엉! 엉! 흐 흐 흑!
논리도 개념도 이성도 없는 독설끝에 언니는 그동안 악바리 처럼 견딘 설움을 쏟고야 말았다.
밤새 언니도 울고 나도울고 뭣땜에 우는지도 모르고 서로 부퉁켜 안고 계속 울었다. 다음날 우리는 퉁퉁부은 눈이 서로 똑닮아서 한참 웃고 세월은 아무일 없었던듯 그렇게 흘러갔다.
그때 그시절 형부는 거의 매일이 늦었다. 미리 연락이 오는 날이면 우리는 개의치 않고 우리의 시간을 즐겼다. 광주 천변 근처 일본식 다다미 주택 2층 우리는 그 2층 집 창가에서 도로를 내려다 보는것을 좋아했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도로 한쪽에 즐비하게 서있는 포장마차들, 포장마차에서 이것 저것을 사가는 손님들, 도로 너머에 공원속 거대한 나무들의 그림자와 가로등,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우리가 구경하던 집앞 도로는 새벽녁까지 늘 분주하고 소란했다. 언니는 형부가 늦는 날이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밖을 내려다 보며 하염없이 종이학을 접었다. 그러다 야식이 땡길라치면 함께 길건너 포장마차로 가서 어묵탕이며 김밥,순대 떡볶이 같은 분식류를 세상 행복해 하며 먹었었다. 아니면 후다닥 언니가 뛰어가 포장을 해오기도 했다. 왜 나는 한번도 포장 심부름을 하지 않았는지 늘 그 수고는 당연히 언니만해야 하는것처럼 받아만 먹었는지 지금생각해 보니 언니에게 참 많이 미안하다. 밖을 내려다 보며 언니와 먹는 야식은 꿀맛이었다. 2층 다다미 마루에서 내려다 보는 풍광은 어떨땐 운치있고 어떨땐 쓸쓸했다.
이번 주말엔 아이들을 데리고
언니집에나 놀러 가야겠다.
서른에 쓴 일기를 보며 이십대와 삼십대를 살던 나를 추억하니 행복해진다.
50이 된 지금 나는 바다향이 그립고 바다생물들의 비린내가 그립다. 서른살 그때 나와 함께 고추장 찌개와 찌개속 멸치를 맛나게 먹어준 시 막내 삼촌도 그립다.
나의 풋풋했던 이십대도 언니의 새내기주부시절도 우리가 함께 살았던 그때도 가슴저리게 그립다.
지금의 심정이라면 언니와 즐겁게 저녁을 먹고 후식으론 언니가 좋아하는 바닐라 아이스 크림을 먹은후 출출해지면 야식으로 순대를 포장해와 맛있게 먹으면서 형부를 기다릴텐데 기다리면서 언니와 오붓시 밤새 이야기 꽃을 피웠을텐데...
이곳 캐나다 위니펙은 크고 작은 아름다운 호수가 셀수 없이 많지만 바다가 없어 순간,순간 나를 비릿한 바다가 있는 고향땅 그시절로 이끈다
위니펙 토박이들은 멸치맛도 멸치 국물 맛도 당연히 전혀 모른다. 특히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다른나라의 음식이나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것 조차 부담스러워해 생소한 식재료의 쓰임새를 알 턱이 없다.
나는 다민족이 함께 예배하는 교회에 출석한다. 내가 속한 교회는 일흔이 훌쩍 넘은 어르신들이 많다.
가끔 우리 한인들은 예배후에 한인들끼리 남아서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따끈한 잔치국수 한그릇과 한인들끼리의 교제는 외국 생활에 어려움과 애로 사항을 겪는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이때 쓰기 위해 육수용으로 멸치 한봉지를 구비해 한인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었다. 그런데
한국을 다녀와 보니 멸치 봉지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 들은 사실은 여름동안 습기로 곰팡이가 핀 냉장고를 어르신 몇분이 청소를 하였는데 청소를 하다가 멸치 봉지를 발견 하고는 썩은 생선인줄 알고 쓰레기 통에 버렸다 한다. 분명 냄새며 색깔이며 썩은 생선임이 틀림없었다며 자신들의 결정에 확신에찬 기세로 만족해하며 전해주었다. 육수용 멸치와 그용도를 이분들에게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단지 나는 이말 밖에는 할수 없었다. 그건 국물을 내는 용도로 앤초비를 말린것과 같은것이라고, 여기서는 구할수도 없어 한국에서 공수해온것이라고 엄~청 비싼것이라고...
'아쿠! 아까워라!'
멸치가 하잘것 없이 취급받는 이 탐탁잖은 기분이 그시절 언니의 마음과 같다 할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언니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는 중이다.
한 지인분은 이곳에 이민하고 임신 초기 입덧중 아무것도 못먹고 있을때 어느날 멸치가 눈앞에서 날개단것 처럼 슈~우웅 하고 지나 가더란다, 어찌나 멸치가먹고 싶던지 한국에서 마른 멸치 박스를 조달받자 마자 아무조리도 않고 그자리에서 한바가지를 먹었더란다 입덧기간 내내 멸치가 살렷다 한다. 그때는 그분의 이야기가 공감이 안되어서 나는 이렇게 물었다.
'평소 한국에 살때 비릿한 회를 좋아하셨나봐요'
그분은 전혀 아니라고 했다.
향수병은 못먹던 고향음식도 먹게하는 능력이 있나보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정확히 딱 1년이 지나자 내 눈앞에도 멸치가 푸드득 푸드득 날아가는걸 보니 그제야 그말이 뭔 말인지 알게 되었다.
일기장을 덥고 곧장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하여 멸치를 종류별로 부탁하였다. 2주만에 물건너 꽁꽁포장된 멸치소포가 배달되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날로 저녁메뉴로 감자고추장찌개와 멸치볶음을 하였다.
물론 어렵게 공수한 귀한 멸치 를 머리하나 떼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멸치 대가리에 낯설어 하지도 않고 온식구가 너무나 맛있다고 잘먹는다. 대가리 하나 남김없이 냄비를 싹싹비웠다.
정말로 왜 그때는 그리도 멸치를 골라냈는지...
사람의 생각이라니... 이 오묘한 인생의 변화라니...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붙잡고 있는 그어떤것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 그럴거라고 확신하지말자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이 어떻게 변해갈지 아무도 모르고 알수도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