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두 달 반이 지난 지금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별의 슬픔쯤은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한편에 비켜두고 애들을 챙겨야 하고 생계를 위해 직장을 나가야 한다. 정신없는 하루하루가다시 시작되었다.
이민을 결정한 이상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사는 이상 목표는 하나다. 영주권을 받는 일, 나아가 시민권까지 받아 우리 가족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슬퍼할 겨를이 없다. 돈 없고 백 없는 놈이 깊이 내린 뿌리를 뽑고 태평양 바다를 건너 감히 먼 남의 나라에까지 와서 뿌리를 내릴라치면 이 정도 각오는 당연한 것이리라. 고향이 따로 있나 뿌리내리는 그곳이 어디든 고향이지... 라며 지칠 때마다 수없이 마음으로 되뇌었다. 만약 이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다면 답은 하나라고, 이 모험은 끝나는 거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 답은 없다고...
그건 내게 마지막 보류이자 생각할 건덕지도 없는 제일 쉬운 선택이라고...
레스토랑으로 컴백한 지 6일째가 되던 날 점심시간.
사장님 아내분이 주방 한편에 펼쳐진 직원 테이블에 점심을 차려 놓고 갔다.
그녀는 성격도 밝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종종 정성스러운 직원 밥상을 차려주는 정감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모든 직원들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유치원 교사를 했다는데 그 직업에 딱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파트타임으로 주방에 들어와 직원과 똑같이 손님 음식을 만드는 일도 한다 그러다 보니 손님 음식 내놓으랴 재료 손질하랴 일손 바쁜 직원들이 자신의 식사 시간을 기꺼이 반납해야 한다는 레스토랑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혹여 집에서 특별한 요리를 할 때면 만든 음식을 싸 오기도 하고 오늘처럼 직접 만들어 놓고 가기도 한다. 그녀가 차려주는 식사는 마치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따스함이 느껴져서 특히 집 떠나와 이국 생활을 하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그녀의 밥상은 음식을 너머 무언의 위로와 격려가 되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함께 일하는 젊은 친구들은 의례 물어온다.
"오늘 점심은 뭐예요?"
그러면 먼저 메뉴정보를 알고 있는 다른 직원이 대답해 준다.
"소고기 뭇국에 계란말이, 볶은 미역줄기야"
"오~ 맛있겠다!"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떠난다.각자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하나둘씩
식탁 앞으로 다가가는 동안
나는 시차 탓이려니 생각하고 밥생각이 없어 노닥 노닥 주방에서 그릇을 마저 정리했다.
호출을 몇 차례 듣고 나서야 맨 마지막 순번으로 식탁에 앉았다.
채썰기 그림 by sooin
내 몫으로 놓인 뜨끈한 뭇국이눈앞에 보이자 입맛 잃은 나는 천천히 뭇국을 눈으로 먼저 훑었다.
무를 2~3mm로 곱게 채 썰어 넣었고 잘게 썰은 소고기가 드문 드문 보였다.
'뭇국을채 썰어 넣기도 하는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보통은 나박 썰기로 하지 않나? 채썰기 힘드셨겠네~ '
뭔가 모르게 그동안 먹어왔던 뭇국과는 달리 이 소고기 뭇국이 참 낯설다 생각되었다.
'엉? 고춧가루가 하나도 안 들어갔네?'
'고춧가루가 빠져서 이상했구나~'
'그럼 소고기 누린내가 나지 않을까?'
' 냄새나는 거 별룬데...'
낯선 까닭이 무의 모양이기도 하지만 붉은기가 전혀 없는 맑은 국물이라는 것에 놀랐다.
국물을 반스푼 떠서 입가까이 대어 봤다. 입에 닿기 직전 먼저 코로 냄새를 낚아 채와 조용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눈으로 볼 땐 조금 낯설다 생각했던 뭇국이 금세 코로 들어간 향은 이상 하리만큼 편안하고 익숙했다. 연달아 두세 스푼을 아무 생각없이 먹었다.
입안으로 들어온 뭇국의 맛과 냄새는 과거 나의 기억 속에 저장된 수많은 미각 경험들을 자극했고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그 익숙함의 근원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맛의 기억. 이건 아버지가 살아생전 좋아하던 음식이다. 아버지 스타일의 뭇국.
비록 무 모양은 다르지만 향과 맛이 틀림없다. 약간의 고기 냄새가 베인 무향이 진~ 한 맑고 순한 이맛!!!
뭇국을 입에 넣을 때마다 아버지의 살아생전 모습과 밥상을 마주하던 가족의 모습이 생생히 되살아 났다. 어린 모습의 나, 노쇄한 모습이 아닌 여전히 건장한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오빠와 언니와 동생, 모두가 한꺼번에 훅~ 다가왔다.
밥을 한술 뜨기도 전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억누르며 다급히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 수도꼭지를 열었다.
쏴~ 물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선 지난 추억들이 풍선처럼 몽실거렸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싫든 좋든 자주 요리를 했다. 7,80년대를 부모로 살아가던 이들로서 밥때가 되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아버지들은 차려주는 밥상을 마치 왕처럼 가만히 앉아 받는다. 비록 때꺼리 없는 걸인의 찬이라 할지라도 왕처럼 맛나게 드셔주는 게 이 시대 아버지들의 예의이고 대장부다운 보편적 모습이다. 옆집도 앞집도 윗집도 작은아버지집도 삼촌집도 다 그랬다. 주방일을 남편이 건네받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나 나의 엄마는 요리에 별로 재주가 없었다. 때때로 엄마를 향한 아버지의 잔소리는 주방 입실 시와 밥상머리에서 제일 심했다.
"워메~ 어째 노상 좋은 때꺼리를 주면 요로콤 맛을 베래부까"
"요라니까 아그들이 밥을 안 묵제~ "
"뭘 조깐 섞어 불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한가 잉?"
"이것저것을 섞어불믄 맛을 베레 분당께!"
이렇듯 엄마가 만든 음식은 맛이 없었고 아버지의 요리는 항상 맛있었다.
아버지가 주방을 차지할 때면 엄마는 그깟 잔소리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줄을 잘 알았다. 그래야 까탈스러운 딸내미들 입속에 그나마 밥숟가락 든든히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딸내미들의 건강과 아버지의 잔소리를 맞바꾼 속 깊은 모성애랄까...
아버지의 뭇국은 무를 나박나박 썰기나 채썰기 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돌려 가며 모양새 없이 막 썰기를 한다.
삐져 썰기 그림 by sooin
모양은 그래 봬도 나름 전문 이름까지 있다. 일명 삐져 썰기이다. 텃밭에서 기른 어른 손바닥만 한 무를( 요즘 시장에서 파는 무는 어른 머리만큼 커서 놀랐다.) 깨끗이 씻어 숟가락으로 대충 껍질을 긁어 준 뒤 왼손으론 무를 꽉 움켜쥐고(무가 작아 손에 잡기 수월하다) 오른손은 칼을 비스듬히 잡고서 각진 모서리가 중앙에 오도록 눈대중으로 조정한 후 무를 돌려가며 순발력 있게 확! 확! 잘라낸다. 무가 썰림과 동시에 곧바로 냄비로 던져 들어가도록 하는게 기술이다. 물론 손이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느건 기본이다. 어릴 때 아버지의 이작은 퍼포먼스가 왜 그리 멋져 보이던지...
삐져 썰기한 무의 장점은 밑면이 얇고 위쪽으로 갈수록 좁은 모양 이어서 조리하는 시간이 빠르고 국물이 진하게 우러난다. 짧은 시간에 진한 국물을 원한다면 삐져 썰기가 안성맞춤이다.
아버지의 요리는 특별히 다지는 것 외에는 도마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고기 잡는 어부들의 요리 스타일인 듯하다 흔들리는 배안에서 매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손쉽고 간편한 게 제일이니까.
삐져 넣은 무와 굵게 썬 소고기를 조선간장과 참기름에 볶는데 이때 참기름이 고소하다고 많이 넣으면 무의 시원한 맛을 가려서 아버지는 딱 한 스푼만 넣으라고 알려줬다. 계속 볶다가 고기가 익으면 물을 두배로 올라오도록 붓고 무가 푹 익도록 더 끓여 준 뒤 파와 양파를 넣고 비법가루(미원)를 넣어주면 맛있는 뭇국이 완성이다.
모든 요리에 이 비법 가루도 한몫한다. 어릴 때 집집마다 양념 선반에 이 비법 가루가 없는 집이 없었다. 음식의 마무리 역할은 비법가루였다.
이렇게 갖은양념이 없이도 금방 맛난 국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아버지는 위장이 약해 특히 무 요리를 좋아했다. 자극적이고 간이 센 음식들을 피하고. 국물은 말갛고, 간은 싱거워야 하며, 파마늘은 아낌없이 들어가야 한다. 이기준에 맞춘 음식이라면 대중적인 인기를 기대하기 힘들 거란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오히려 담백하고 자연 재료 맛 그대로가 더욱 끌리는 마성이 있다는 거 다들 알터이다. 아버지의 음식이 그랬고 아버지의 손이 마성 자체였다. 그 어떤 음식도 아버지의 손을 거치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점점 음식에 손을 놓게 된 건 아마도 평생 자신의 손으론 도저히 그 심심하면서도 오묘히 까탈스런 레시피에 맞추어 기막힌 맛을 내기란 불가학력이라는 것을 일치감치 알았나 보다.
나는 어떻게 이 순수하고도 중독성 있는 맑은 뭇국의 존재를 오랫동안 잊고 살았을까? 참으로 의아하지만 생각해 보니 결혼을 하고 시부모님과 10년의 세월을 한 지붕아래 살면서 나의 음식 세계도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시어머니가 자타가 공인한 금손이다 보니 내가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고향 미각은 저 깊은 기억 속 어딘가에 단지 기록물로만 남게 되었다.
시어머니의 음식은 대체로 자극적이고 감칠맛이 극대화되는 맛이 특징이다.
고소한 음식은 더 고소하고 기름지게, 미역국을 제외한 모든 국물 요리에는 고춧가루를 넣어 매콤하고 칼칼 시원하게, 그리고 음식의 간은 약간 간간하게... 누가봐도 스타일리시한 퀸카처럼 시어머니의 음식은 누구든 한눈에 사로잡는다.
아버지와 정 반대인 음식 스타일.
나박 썰기 그림 by sooin
시어머니의 뭇국은 무를 나박나박 썰어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넣고 소고기와 볶은 다음 물을 붓는다. 그러면 고추 기름을 낸 것처럼 고운색 붉은 국물이 만들어 진다. 언제부터 인지 시어머니의 뭇국은 나의 뭇국이 되어 버렸다. 칼칼한 빨간색을 띄워줘야만 내가 알던 뭇국이라고 수긍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과거와 단절된 맛의 기억은 맑은 뭇국 하나로 되살아났고 과거의 모든 추억도 함께 되살아나 아버지와 나를 연결시켰다.
기억을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이를 프루스트 현상이라 한단다. 어떤 사람에게는 들깨 듬뿍 감자탕을 먹으면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고 어떤 사람은 고구마나 밤 굽는 냄새에도 추억이 밀려오는 현상. 추억에 얽힌 장면 전체가 순식간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현상 말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 이름에서 따온 용어라 하는데 그가 쓴 소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차와 함께 마들렌을 먹는 장면에서 이용어가 기인하였다고 한다. 주인공의 입속에 마들렌 한 조각이 들어오는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사로 잡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비단 책 속에서뿐만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도 흔히 경험되는 일임을 아버지가 떠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제철 겨울도 아닌 이여름에 왜 그녀는 뭇국을 끓였을까... 우연일까? 아마도 무가 소화가 잘되는 채소라 먹는 부담을 덜기 위한 그녀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우연치곤 너무나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아버지는 마지막 가는 길에서 조차 내게 당부하고 싶었나 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삶. 너무 애쓰지 말고 이제 멈추어 서서 숨좀 돌리며 살라고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고 길에 핀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나뭇가지 위에 매달린 바람도 보고 파란 하늘도 좀 봐 보라고... 혹 내가 걸어온 길에 슝슝난 구멍은 없는지 돌아보면서...
소소한 일상이라고 그냥 흘러 보내지 말고 자체만으로도 감격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라고...
그동안 세월 앞에 나는 참 교만했던 것 같다. 마흔 고개에 서보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 나이쯤에서 작별을 지나온 이들. 그 작별로 인해 주먹만 한 돌덩이를 가슴에 안고 사는 이들. 삶의 거리를 멀리 달려와 그리움이 사묻힌 이들, 여기도... 저기도....
모든 삶의 구석구석 숨겨진 보물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 여기 있었노라고 속삭이며 저마다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느낌이다.
아버지에 대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슬픔이긴 하나 지금 이시간에 내게 주어진 행복한 슬픔이고 더 선명한 아름다운 추억 위에 미래를 살 수 있으니 그리워도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