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후(17)
마음이 번거로웠다.....
점차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했었으나 그럴 리가... 그럴 수는 없었다.
통역공부를 앞두고 있기도 하고 6개월간 수입 없이 생활을 유지하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꿈에... 늘 젊은 모습으로 나타나던 그가 떠나기 직전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또한 변화였다. 그런데 이후 현저하게 출연 횟수는 줄었다. 소천 후 한동안 누군가의 꿈에도 빈번히 나타나주었던 그는 한동안 뜸하더니 최근 한 친구분의 꿈에 또 출연하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친구분의 손을 꼭 붙잡고 우리 가족을 잘 부탁한다고 얘기했었다고 한다. 꿈의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여 그 친구분은 우리 가정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여 연락을 해왔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무슨 일이든 꼭 연락해 달라는 따뜻한 당부를 거듭하였다. 그랬었겠지! 여전히 그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겠지! 어느 아침, 우리 교회 부교역자셨던 목사님께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그 목사님이 다른 교회로 옮기신 후에도 그는 가끔 점심 식사를 함께 했었고 유쾌한 농담과 함께 종종 서로 통화도 하던, 특별히 가깝던 분이었다. 나와 우리 아이들의 안부를 물으신 후, 목사님은 그가 정말 그립다고 말씀하셨다. 어느새 반년이 지났으나 형님 같았다는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은 옅어지지도 않은 채 계속 떠오른다고 했다. 최근 며칠간은 더욱 그립더니 그날은 새벽녘에 잠이 깨어 더욱 그를 생각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목사님 역시 무슨 일이든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연락해 달라는 따스운 당부를 거듭하셨다. 참으로... 마성의 인배 씨!!!
우리는 여전히 그의 전화번호를 유지 중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나는 여전히 그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어느 주일 교회에 다녀와 무심히 그의 전화기를 충전하려고 펼쳐 보았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그의 친구로부터의 전화와 보이스톡의 부재중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카톡으로 메시지를 남기도록 부탁하였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므로 그의 모든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못했었는데 다른 친구분들을 통해 소식을 들었던 모양이다. 아들은 아빠의 천국환송예배 영상과 묘비 사진을 카톡 메시지를 통해 보내드렸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미국과 캐나다에 살고 있는 세 분의 친구들이 아들에게 우리 가족을 위로하는 메시지와 함께 "인배는 워낙 착하게 살았어서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있을 줄 믿습니다."라는 내용을 남겼었다. 그날도 아이들과 나는 오랜 친구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그를 떠올리고 웃기도 살짝 눈물이 맺히기도 하며 그의 추억을 서로 나누었었다.
두 아이와 나, 우리 가정은 아직 유쾌 모드로의 전환은 섣부른 듯하지만 다소 조용한 가운데 모두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를 진행 중이다. 특히 아들에게는 괄목할만한 변화가 있었다. 최근 특별한 여자친구가 생긴 거다.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는 친구로 실은 같은 학교를 다닌 아들의 1년 선배이다. 아이들이 다닌 학교는 기독교 재단으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캠퍼스에 모여 있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까지 다니다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로 옮겼었으나 아들의 여자친구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그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주로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는데 어느 날인가 우리는 버스를 놓쳐 다음번 정류장을 향해 차로 달려 버스를 기다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날 같은 교복을 입고 나란히 서서 배시시 웃고 있던 금발의 두 자매를 만났던 기억이 있다. 내게는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전에 우리 가정은 한 신규 주택단지의 부지를 구입하여 집을 지어 살다 이사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바로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았고 심지어는 같은 골목에서 우리는 90번지 그 친구의 집은 91번지로 맞은편에 살았다는 것도 재미난 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두 아이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포인트는 그 친구의 아버지도 10년 전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집에서 소천하셨기에 같은 슬픔을 공유한 때문은 아닐지. 더욱 재미난 것은 키위인 그 친구의 어머니가 둘째 딸인 친구 동생이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 둘째의 생일날 서프라이즈 선물로 홀로 한국어를 공부하여 한국어로 대화를 해 본 후 재미 삼아 한국어를 배우셨었다는데 맏딸이 만나기 시작한 남자친구가 한국계라는 소식에 반색하며 속히 만나 심지어는 나와도 만나 한국어로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이 또한 좀 이례적이 랄 수 있는 재미난 일이다. 5년여 전쯤 그 친구의 가족은 남섬의 도시로 이사하였고 전일 재택근무 중이던 친구의 근무 형태가 작년부터 출근과 재택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혼자 올라와 지내고 있는 중으로 크리스천 여자 친구들과 함께 플랫메이트라는 형태의 자취 중이다. 그래서 작년부터 그 친구는 다니던 교회로 다시 돌아왔고 두 아이들은 반가운 옛 친구로 만나 가끔 여러 친구들과 어울려 예배 후 점심 식사를 하는 정도의 친분이었으나 그가 떠난 후.... 같은 아픔을 겪은 두 아이들의 만남이 시작되었던가보다. 주일 저녁 예배는 번갈아 서로 픽업을 하기로 했다며 아들을 태우러 온 모습을 보니 정말 20여 년 전 모습이 다시 새록새록 떠오를 만큼 그 친구는 여전한 모습으로 그날처럼 배시시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었다.
아들은 문득 "아빠가 계셨더라면...." 그렇다! 정말 아쉽고 또 그립다. 많이 좋아했을 거고 누구보다도 신나 했을 텐데... 주님 안에 우연은 결코 하나도 없으니 혹시 두 아이의 만남은 하늘나라에서 만난 두 아빠들의 바람으로 주님께서 허락하신 작품이었을까? 아들은 우리의 삼겹줄 예배 시간에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공교롭게 MBTI도 INFP로 같다는 두 아이의 만남을 주님 안에 축복한다.
나는 내일부터 드디어 통역 공부를 시작한다. 나이 때문일까? 절실함 때문일까? 인생최대의 긴장감을 감수하는 중이다. 딸아이는 아직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지역 종합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분명 마음을 다해 일하고 있을 줄 믿는다. 여전히 열심히 기도하며 구직 중으로 좋은 사람들과 안전한 곳에서 복된 일을 시작하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람을 살리고 복음을 증거하고 일을 통해 제 삶을 구체적으로 시작하게 되길 기도한다. 이렇게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앞으로 나아가자. 주님 안에....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