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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파란 Jul 11. 2023

준비된 보호자는 없다

나약한 보호자의 변명


예상치 못한 불행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과거를 되짚어보며 곱씹든지 미래를 내다보며 불안에 사로잡히든지. 난 아무래도 전자에 가깝다. 우리 가족이 뭘 잘못했길래 이런 비극이 찾아온 건지, 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서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건지 이미 가버린 날에 파묻혀 괴로워했다. 


암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아버렸지만 당장 병원 입원실에 자리가 생기고 수술 일정이 잡히기 전까지는 암을 몰랐던 날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은 1분이 한 시간 같았고, 그 사이 암 덩어리가 더 자라면 어쩌나 생각하면 시간 가는 게 무서웠다. 하루하루가 더디게 갔고 그러면서 쏜살같이 흘렀다.      



환자복을 입은 남편은 졸지에 낯선 사람이 됐다. 옷이 날개라 좋은 옷을 입으면 사람이 달라 보이겠지만, 환자복은 멀쩡하던 사람도 수척하고 퀭하게 만드는 무서운 기운을 가졌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병을 이제야 제대로 맞닥뜨린 것 같았다. 이로써 남편은 이름 뒤에 ‘환자’라는 호칭을 얻었고, 나 역시 누군가의 ‘보호자’로 불리는 여정이 시작됐다. 



의사를 통해 처음으로 듣게 된 남편의 상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암 크기가 8cm란다. 8mm가 아니라 8cm. 기수를 물으니 이 정도 크기면 사실 기수에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어쩌면 ‘말기’라는 말보다도 더 잔혹했다. 암세포는 간의 끄트머리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의사는 전이가 염려되지만 배를 열어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으니 일단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은 더욱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걱정하라는 말로 들렸다.     




수술을 하루 앞두고 나서야 문제의 건강검진결과서를 마주했다. ‘건강진단 결과 보고’라는 표지 제목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봤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겨우 표지를 들췄다. 첫 장부터 형광펜으로 그어놓은 줄이 여러 개였다. 우측 상단에 ‘종합 판정’이라고 쓰여 있다. 한마디로 한눈에 보는 이번 검사의 줄거리였다.     

‘혈압이 상승되어 있습니다. 외래 상담 및 적절한 관리’

‘공복혈당수치가 높습니다. 혈당 재검사 바랍니다’

‘흉부촬영-우상엽에 폐소결절 의심소견이 관찰됩니다->진료 보시고 정확한 진단 위해 저선량 흉부 CT 검사 바랍니다’ 

‘위 내시경 검사-경도의 위축성 위염이 관찰됩니다’

‘백혈구의 수가 증가되어 있습니다’ 

‘혈청 검사에서 HS-CRP 증가 소견이 관찰됩니다’

‘고지혈증-중성지방 농도가 증가되어 있습니다’     


한 줄 한 줄 쉬 넘어갈 만한 게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눈앞에서 걸리고 머릿속에서 덜컹댔다. 나야말로 혈압이 솟구쳐 바닥으로 꼬꾸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상복부 초음파 검사상 거친 간실질에코가 관찰되고, 다발성 재재성 혹 이형성 간결절 의심으로 보이는 다발성 작은 고에코 간결절 소견, 간세포암 의심으로 보이는 간우엽에 6.8*6.5*8.8cm 크기의 저에코 종양 소견이 있어 당일 복부 조영제 CT 검사를 시행하였고, 검사 결과는 만성 간질환, 간세포 암 추정 소견이 관찰됩니다.’ 


마지막 줄 ‘상급병원 내과 진료 바랍니다’ 문구 양옆에는 별표가 각각 두 개씩, 총 네 개가 그려져 있었다. 친절하게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별을 그린 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토록 한꺼번에 많은 경고를 받은 결과서의 주인이 또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다음 페이지부터는 각 검사별 세부 내역이었다. 대충 쓱 넘겨봐도 빨간 글씨 투성이다. 선명하게 박힌 ‘간세포암’ 글자가 ‘네 남편은 암이고 넌 그 아내’라고 쐐기를 박았다. 




남편 수술은 오전 7시, 첫 시간으로 배정됐다. 단식으로 인한 허기짐에 수술을 앞둔 긴장을 생각하면 수술 시간은 빠를수록 좋다. 마취와 수술 준비를 고려해 예정 시간보다 빨리 이동했다.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하는 남편 곁에서 함께 걷는 나, 각자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늘이 드리워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자 아픔이었다. 수술실 앞에 도착하니 친정 아빠가 와 계셨다. 푸석한 피부를 보니 한숨도 못 주무신 얼굴이다. 일의 고단함에 수술을 앞둔 사위와 곁을 지켜야 하는 딸 걱정이 더해져 보냈을 괴로웠던 새벽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아빠는 아파트 경비원이다. 새벽 6시부터 다음날 같은 시간까지 24시간을 일하고 24시간을 쉰다. 고달픈 하루를 보내고 병원으로 바로 오신 참이었다. 당신이 오기 전 사위가 수술실에 들어가면 어쩌나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달려오신 모양이다. 같은 시간, 집에 있는 친정엄마는 더 애가 탈지도 모르겠다. 당장 병원에 달려와서 앞을 기약할 수 없는 사위 얼굴 보고, 딸 손 한번 잡아주고 싶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엄마에겐 챙겨야 할 두 손주 그러니까 우리 부부의 두 아들이 있다. 엄마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그 일이 어떤 의미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손주들 보느라 진이 빠진 몸으로 긴 새벽을 보냈을 엄마다. 엄마의 기운 없는 목소리가 창백한 얼굴을 눈앞에 그려 주었다.       


수술현황판에 남편 이름이 ‘수술 중’으로 바뀌었다. 내가 아빠 얼굴을 보고 들었던 마음을 아빠도 내 얼굴을 보고 느꼈을까. 


“아빠가 여기 있을 테니까 넌 송 서방 침대 가서 좀 누워있어”


아빠 말을 들으니 신기하게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두려움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리고 눈치 없게도 잠이 쏟아졌다. 병실로 가는 길, 잠깐 돌아본 수술실 앞 아빠의 뒷모습은 수척했다. 나이 든 작은 몸에 걱정과 불안이 꾸깃꾸깃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난 시집을 가서도 엄마 아빠를 불안의 세상에 가두고 있구나.    


  



무겁게 흐르던 시간이 지나고 수술은 끝났다. 다행히 전이는 없었다. 암 크기가 야구공만 해진 뒤였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것도 기적이었고, 수술을 받을 수 있던 것도 기적이었고, 또 수술을 잘 마친 것도 기적이었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남편은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기적의 사나이’가 됐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을 견딘 ‘기적의 사나이’에게 가슴 벅차게 고마웠지만 마취에서 깬 후 통증에 몸부림치는 그를 지키는 일은 몹시 힘겨웠다. 엄마로서 아이들 보호자 역할에는 도가 텄다 생각했지만, 다 큰 환자를 간호하는 건 다른 차원의 난이도였다.      


일단 물 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갈등이 컸다. 수술 후 8시간까지 절대 금식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갈증을 호소할 때마다 가재 수건에 물을 묻혀 입술에 발라 주었다. 그렇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깨작거림일 뿐이었고 오히려 화만 뻗치게 하는 것임을 나도 안다. 하지만 어쩌랴. 나도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일개 보호자일 뿐인걸. 그렇다고 그냥 재울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8시간은 다시 잠들지 못하도록 눈이 감길라치면 흔들어 깨워야 했다. 물도 안 줘, 잠도 안 재워. 정말 못할 짓이었다. 그 와중에 시간이 갈수록 통증 강도는 점점 세졌다. 수시로 간호사를 불러달라 하고 진통제를 요구했다. 물론 링거 줄에 연결된 진통제가 있긴 했다. 버튼을 누르면 진통제가 배출되는데, 한번 나온 뒤 재배출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2시간이 지나야 했다. 아프다고 버튼을 아무리 눌러대 봤자 2시간 내에는 헛수고일 뿐이라는 거다. 아마도 진통제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일 거다. 물론 아파죽겠는다고 몸부림치는 남편에게는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1분에 두 번을 누르든 10분에 세 번을 누르든 그때마다 진통제가 본인 몸속으로 쭉쭉 흡수되는 걸로 굳게 믿고 줄기차게 눌러댔다. 이런 게 플라시보 효과인 건가. 한동안은 별말 없이 열심히 눌러대더니 몸의 반응이 어째 이상했는지 간호사를 불러 진통제를 놔달라고 졸랐다. 처음엔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 득달같이 간호사 데스크에 달려갔다. 그리고 잽싸게 돌아와 당신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했노라고 보고하며 곧 진통제를 놔주러 올 테니 조금만 참으라며 다독였다. 그런데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간호사들의 반응은 느슨해졌고 좀 참아야 한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진통제라는 한 줄기 빛을 기다리고 있을 남편에게 차마 전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그럴 땐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운 간호사를 기다린 척하기 위해 복도를 몇 바퀴 돌고 오거나 곧 간호사가 올 거라고 하얀 거짓말을 해가며 시간을 끌었다.     


수술 후 환자를 괴롭히는 것은 또 있다. 일명 ‘공불기’. 수술로 쪼그라진 폐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폐활량을 늘리는 운동이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된 통 안에 빨강 노랑 파랑 세 개의 공이 들어있는데 연결된 호스를 불어 공 세 개를 공중부양 시켜야 한다. 배의 정 가운데를 세로로 긋고 다시 오른쪽으로 꺾인 L자 모양 자국이 선명한 개복수술을 한 남편이다. 배에 힘을 주어 숨을 내뱉으라는 건 가혹한 형벌이다. 소싯적 담배 빨던 힘까지 쥐어짜 불어 대도 공 한 개가 겨우 올라간다. 하지만 간호사들에게 이런 사정이 통할 리 없다. 보호자에겐 수시로 연습시켜 세 개의 공을 모두 띄우게 하라는 미션 임파서블이 주어진다. 결국 아파서 못 하겠다는 남편과 그래도 해야 한다는 나의 팽팽한 신경전은 입원 기간 내내 지겹도록 이어졌다.        


병원 생활은 단조로우면서도 신선했다. 매일 아침 나의 환자를 일으켜 세워 체중을 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떤 날은 엑스레이, 다른 날은 CT. 날마다 검사를 받으러 병원 내를 오가고 시간 맞춰 끼니와 약을 챙긴다. 소변 양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소변 통은 바로바로 비워 침대 난간에 끼워 둔다. 나의 환자가 걷기 운동을 하게끔 이끄는 것도 보호자의 큰 책무다. 복도를 얼마만큼 자주, 얼마나 많이 도느냐에 따라 방귀가 나오는 시기도 회복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보호자는 그저 환자 곁에 있어만 주면 되지만, 동시에 옆을 비우면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환자보다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잠드는 보호자의 시간은 고됐다. 날이 갈수록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괴로웠다. 그저 살아만 달라고, 살아서 나와 우리 아이들 곁에만 있어 달라고 애원했던 그 마음은 다 어디로 간 건지, 겉으로는 남편의 몸짓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지만, 속으로는 힘들다고 투정하는 내가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보호자 침대에 구부정한 자세로 누워 불편한 밤을 보내는 내내 힘들어 끙끙대는 내가 미웠다. 


기꺼이 나의 환자만을 바라보는 성실한 보호자가 아니었음을, 마음이 단단하지 못한 보호자였음을 이제라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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