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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파란 Jul 13. 2023

암은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다

그 무엇도 따라잡을 수 없을만큼


재발이 됐다. 벌써 두 번째다.


암 진단 후 21일 만에 간절제술을 받고 그로부터 1년 3개월 뒤 첫 번째 재발이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1년여가 흐른 뒤 죽은 줄 알았던 불씨가 되살아났다.      


통상 암 치료 후 5년간 재발이 없으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 하지만 간암은 완치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절제술로 암과 그 주변 일부를 떼어내긴 하지만 남아있는 간에도 기존 암에 영향을 받은 변형 세포들이 숨어있을 수 있고 또 그것이 언제 기세를 보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간암을 두고 간에 암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했다. 보이는 암을 제거했다고 해도 보이지 않은 씨앗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절제술 당시 남편의 주치의 역시 암의 뿌리까지는 완벽히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라도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암과의 동행은 아슬아슬하다. 주기적인 외래 일정이 되면 여전히 마음은 두근대고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응급상황으로 생사를 오가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평생을 이른바 ‘암 보균자’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재발은 역시 첫 수술 때 뿌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위치에서 자라난 암세포였다. 다행히 크지 않아 고주파 열치료 시술을 받았다. 전극이 부착된 바늘을 간 종양에 직접 삽입해 순간적인 고열을 발생시켜 종양을 괴사시키는 방법으로 3cm 이내의 작은 간세포암 치료 시 주효하다고 한다. 생각보다 재발이 된 시기가 빨랐지만 시술 통증도 크지 않아 보였고 바로 다음 날 퇴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재발로 인한 충격도 덜했다.


그런데 두 번째 재발은 달랐다. 발견된 암세포가 무려 다섯 개였다. 3개월마다 CT와 MRI를 찍고 있는 남편이다. 지난 검사에서 걱정할만한 내용을 듣지 못했는데 느닷없이 3개월 만에 다섯 개의 암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인가. 주치의는 지난 검사 때는 크기가 워낙 작아 확신할 수 없었는데 이번 검사로 확실히 알게 된 거라고 했다. 처음 8cm의 암세포를 떼어낸 후 ‘기적’을 운운했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암이라는 녀석은 지치지도 않고 부지런히, 그것도 크기와 개수를 부풀려가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이미 남아있는 간도 제구실을 못할 거란다.     


‘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구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서른여섯 살의 젊은 의사 폴 칼라니티는 본인이 암진단을 받고 생애 마지막을 기록한 책 <숨결이 바람이 될 때>에서 뇌암 진단을 받은 자신의 환자에게 처음 암을 고백할 때를 이렇게 묘사했다. 지금 우리 역시 한 숟가락씩의 비극을 떠먹임 당하고 있다. 다만 그 숟가락이 점점 커지고 있어 곧 입을 벌릴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해지는 게 아닐까 두렵다. 지금의 비극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다음 숟가락에 담긴 것은 얼마나 더 크고 무서울지 예견할 수 없음이 그 자체로도 비극이다.    


  

두 번째 재발 치료는 색전술로 결정됐다. 색전술, 정확히 말해 간동맥색전술은 일종의 항암치료라 할 수 있다. 간동맥에 항암제와 색전 물질을 섞어 투여하여 동맥으로의 혈액 공급을 차단하고 종양의 괴사나 병변 축소, 그리고 성장 속도를 늦추는 시술이다.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완전한 치료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마저도 감사한 형편이었다. 색전술은 첫 번째 재발 때 했던 고주파열치료보다 시술 시간도 길고, 허벅지 부위의 동맥을 뚫어 진행하기 때문에 통증도 훨씬 더 심하다.      


시술을 마친 남편은 몹시 괴로워했다. 지혈을 위해 3시간 동안 움직임 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고 온몸을 타고 흐르는 약물의 기운이 느껴져 연신 구토 증상을 보이며 지쳐갔다.


하지만 날 가장 힘들게 한 건 그의 눈물이었다. 감긴 눈에서 흘러나와 얼굴을 타고 흐르는 소리 없는 눈물. 그간 몇 번의 눈물을 보였던 그였지만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여리고 서글픈 눈물이었다. 애써 소리를 삼키고 있는 꽉 다문 입이 그가 얼마나 슬픔을 참아내고 있는지 말해 주었다. 지금 남편이 잡고 싶은 손은 어쩌면 내가 아닌 엄마, 그러니까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이 아닐까. 모질고 험난했던 지난 2년여간 얼마나 외로웠을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나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솟구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 감은 그를 두고 병실을 나와 화장실로 갔다. 변기 물을 연달아 내려가며 한참을 생각했다. 그의 엄마를.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너무나도 그리운 그분을.     




색전술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다섯 개 암세포 중 세 개만 치료했고 나머지는 크기가 너무 작아 별다른 조치를 못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암세포 두 개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3개월 만에 5센티가 자라난 암세포의 위력을 이미 경험한 우리였기에 절망적이었다. 문제의 두 개가 얼마나 더 커질지, 또 새로운 암이 생겨나면 어쩌나. 앞으로의 일분일초가 무서웠다. 이제는 끝이 보이나 싶다가도 언제나 새로운 고난의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낭떠러지 코앞에 다다른 우리에게는 이제 단 하나의 선택만이 남아있었다. 간이식이다.    

 

간이식라는 말을 주치의를 통해 처음 들은 건 이미 오래전, 간 절제술을 하고 난 직후였다. 앞서 얘기했듯 간암은 완치가 없다. 우리가 이미 겪은 것처럼 재발도 잦다. 때문에 처음부터 간이식을 염두에 두라고 했었다. 재발 그리고 또 재발 때에도 계속해서 간이식을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는 반복됐고 결국 기어코 때가 오고 말았다.


간이식이라고 해서 간암을 물리칠만한 완벽한 치료는 결코 아니다. 남아있는 생을 늦추는 것일 뿐이다. 치료가 아닌 생명 연장이라고 하니 덜컥 겁이 났다. ‘연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오래까지 인지, 대충이라도 몇 년쯤이라고 말해 줄 수는 없는 건지 애가 탔지만 겁쟁이처럼 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치료라는 것도 어차피 오래 살기 위한 거고 이식도 더 오래 살기 위한 거니까 그게 그거 아닌가.


이제 진짜 내가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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