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식 수술
마침내 왔다. 우리의 영원을 만들어 줄 그 순간이.
수술실로 이동하실게요
그토록 기다려온 순간이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르르 한 떨림이 느껴졌다. 병실에서부터 침대에 누워 복도를, 엘리베이터를 병원의 구석구석을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심호흡을 해봐도,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해도 몸이 진정되지 않았다. 누워서 병원을 활보하는 기분, 참 별로였구나. 몇 시간 전 수술실에 먼저 들어간 남편 생각이 났다.
수술실 앞에 도착하자 침대를 바꿔야 했다. 방금까지 타고 왔던 침대가 딱딱한 들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식당 주방에서나 볼법한 스테인리스 사각 테이블 모양이었다. 올라타기도 전에 반질반질한 은색 질감에서 풍기는 찬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아 이번엔 진짜 수술실로 들어간다. 팬티 한 장 걸친 몸에 얇은 수술 옷 한 장이 전부여서인지, 공포의 순간에 압도되어서인지 온몸이 제멋대로 달달거렸다.
여기, 이 순간에 오기까지 이렇게 무섭진 않았는데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눈부신 조명을 바라보고 주변 의료진들의 분주함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새어 나왔다. 애써 모른 체했던 두려움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순도 100%의 공포. 어른이 된 후에는 느껴보지 못한, 내가 작은 꼬마였을 때도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감정에 오그라들었다.
선생님, 너무 추워요
무지막지한 떨림을 무서움 대신 추위로 표현했다.
이제 마취 주사 놓아드릴게요
내 몸을 가리고 있던 한 겹마저 벗겨지고 가슴팍이 훤히 드러났다가 구멍 뚫린 천이 덮였다. 여기저기 주렁주렁 선이 연결되고, 얼굴에는 호흡기가 부착됐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로지 살게만 해달라고 빌었다. 아이들 얼굴을 아른거렸다.
정신을 차렸지만 멀쩡한 정신이 아니었다. 아팠다. 세상 온 나라의 언어를 사용해도 그 순간의 아픔을 표현할만한 말을 찾기는 어려울 거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아프다고. 죽을 것 같다고. 아이 둘을 낳으며 남부럽지 않은 진통도 겪어봤고 제왕절개 후 통증도 호되게 치렀지만 출산의 아픔 따위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제 말 들리세요? 수술은 잘 끝났고요. 지금 회복실이에요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외쳤지만, 여전히 수십 명이 달라붙어 내 배를 가르고 장기 사이사이를 마구 헤집고 있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회복실을 나와 병실에 오기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눈떠보니 병실이었고, 엄마와 여동생이 있었다. 이번엔 오른쪽 어깨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고 들어왔다. 난 건물 잔해 속에 깔려있고 그 위를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듯한 고통이었다. 엄마와 동생은 쉴 새 없이 내 어깨를 주물렀다. 잠깐이라도 주무르는 손이 떼어지면 견디기 힘들었다.
나중에 간호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수술 후 어깨는 대체 왜 아팠던 건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배 오른쪽 부분을 열고 수술이 이루어지는 동안 오른쪽 팔을 위로 올리고 있는데 워낙 장시간 고정 자세로 있다 보니 통증이 있는 건 아닐까 반신반의하며 이야기해 주었다.
열 시간 가까이 수술실에 있던 남편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앞으로 우리의 앞날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각자 전쟁 같은 시간을 잘 치렀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낸 우리 둘, 이 순간이 우리의 영원을 만들 거라 굳게 믿었다.
어깨 통증이 잠잠해졌을 때 동생은 이럴 때일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 넷플릭스를 열어 강제로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엄청나게 재밌다며 한 편만 보면 계속 보게 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혼자 있을 때 꼭 볼 것을 몇 번이고 당부했다.
엄마와 동생이 떠나고 홀로 남은 병실에서 공포의 어깨 통증이 다시 찾아올까 봐 무서웠다. 천정만 바라보며 아픔을 견디기에는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갔다. 결국 주섬주섬 핸드폰을 열어 넷플릭스를 열었다. ‘시청 중인 콘텐츠’ 맨 앞에 놓여있는, 동생이 마르고 닳도록 얘기하던 그 드라마는 <사랑의 불시착>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 배를 활짝 열었다 닫은 환자인 주제에도 그 제목을 듣는 순간 콧수염 춤을 추는 박남정이 떠올랐다. 뭔 제목이 이렇게 구리냐,
이제 와 말하지만, 일주일간의 병원 생활은 <사랑의 불시착> 정주행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