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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파란 Jul 20. 2023

나도 시어머니가 있으면 좋겠다

시어머니가 해주는 밥은 어떤 맛일까?


“저 병원에서 아빠의 엄마가 아플 때 입원해 있었어”


원자력병원 앞을 지날 때면 남편은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 ‘남편의 엄마’ 그러니까뵌 적은 없지만, 살아계셨다면 나의 시어머니가 되셨을 그분도 아들보다 먼저 간암 진단을 받았고, 결국 그 병으로 돌아가셨다. 암의 크기를 줄이는 방사선 치료차 잠깐 머문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위독하다는 소식으로 급하게 휴가를 얻어 나온 군인 아들을 앞에 두고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아들의 결혼도, 아들의 아들도 보지 못한 채 할머니 시절 없이 저문 그녀의 삶. 그래서인지 남편은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아닌 ‘아빠의 엄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엄마가 된 후 가장 필요한 건 엄마’라는 글을 보고 시큰했던 적이 있다. 출산 못지않은 일을 겪은 남편에게도 가장 필요한 건 엄마일 거다. 내 아이의 고통을 제 몸같이 고스란히 느끼는 사람은 아마도 엄마가 유일하지 않을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존재인 엄마가 없는 기분을 난 아직 알지 못한다. 평생 알고 싶지 않은 그 기분을 수년째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남편이다. 친정엄마는 그런 사위가 딱해 어쩔 줄 몰라한다. 아무리 노력하고 정성을 들여도 어디까지나 장모님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송서방 엄마가 있었으면 아들 좋아하는 음식 날마다 해 먹였을 텐데”


친정 엄마는 무엇보다 남편이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지 못하는 걸 가장 마음 아파한다. 아플 때 가장 간절한  건 아마도 엄마의 밥일테니 말이다.       


남편이 제일 그리워하는 것은 엄마의 오징어볶음이다. 양파나 파 등 채소는 넣지 않고 순전히 오징어와 양념으로만 만든 것이라고 했다. 보통 요리를 할 때 채소를 많이 넣는 내가 만드는 물이 흥건한 것과는 다르다고 누누이 말했다. 채소 없이 오징어에 양념만 넣어 만든다고 해서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번이라도 먹어본 적이 있다면 반절이라도 흉내 낼자신 있는데 ‘요알못’인 남편이라 시범 삼아 만들지도 못해 여전히 미궁 속에 빠져 있다. 반찬가게에서 오징어볶음이 보이면 사 오곤 한다. 혹시라도 그 맛일까 싶어 물어보면 역시나 아니다. 아무래도 그분의 오징어볶음 맛을 찾는 것은 평생의 숙원사업이 될 것 같다.



나 역시 남편의 엄마, 시어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분이 계셨다면 나에게도 아주 큰 위안이 됐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암선고를 받고 이식에 이르기까지, 여기까지 오면서 내가 느낀 비참함과 외로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가 있었으면 너한테 진짜 잘해줬을 텐데”


아이를 낳았을 때, 그리고 이번 수술을 했을 때. 진짜 큰일을 해냈을 때 남편은 종종 얘기했다. 그럴 때 나도 희미하게나마 짐작해 봤다. 진심을 담아 날 보듬어 주는 또 다른 엄마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수술 후 집으로 돌아오고 며칠 후 언니가 왔다. 계좌를 묻더니 50만 원을 보내주었다.


“우리 어머님이 주셨어. 너 주라고”

“언니 어머님이? 왜?”

“너 수술했으니까”


갑작스러웠다. 결혼식 때 한 번 뵌 적이 있다. 감사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달라 했다.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너무 무서웠죠?, 어떡해요. 너무 애썼어요”


그러더니 우셨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참고 참다 결국 어찌할 도리없이 터져 나온 울음이라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처음이었다. 내게 무서웠냐고 물어봐 준 사람은. 어쩌면 우리 엄마와 남편을 제외하고는 날 떠올리며 울어 준 유일한 사람일 수도 있다. 수술을 앞두고 들었던 오만가지 마음의 갈래 중 가장 큰 건 분명 ‘무서움’이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무서움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남편 앞에서는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했다. 그 마음을 감추기 위해 괜찮은 척, 의연한 척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정확히 찔러준 말에 나도 따라 울 수밖에 없었다.


“남편 말고 애들 말고 본인 먹고 싶은 거 사 먹어요”


그분이 계셨다면 이런 마음으로 날 대해 주셨을까? 당신 아들을 위해 기꺼이 용기를 내어준 나를 보며 눈물을 참지 못하셨을까.


그분이 해주지 못한 따뜻한 한 끼를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짧지만 진한 울음 끝에 묘한 행복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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