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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파란 Aug 15. 2023

간기증자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바닥으로 나뒹군 자존감에 대하여


마치 ‘재난 문자’ 같다. 느닷없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남편의 응급상황은 늘 그렇게 찾아온다.

 

무엇보다 열이 문제다. 동시에 추위에 떤다. 종일토록 에어컨을 틀어놨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덥다는 말이 연신 입 밖으로 밀려 나오는 이토록 더운 날, 턱밑까지 두꺼운 이불을 당겨 덮고 있는 그의 뜨거운 몸을 보고 있으면 비로소 실감 난다. 남편은 나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간 이식환자에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후유증 중 하나는 담도 스텐트로 인한 염증이다. 간을 절제하며 함께 떨어져 나간 담낭에 이어져 있던 담도를 간에 바로 이어 붙이면서 담도 협착이 생길 수 있는데 이를 예방, 완화하기 위해 담도에 스텐트를 삽입한다. 담도가 막혀 담즙이 원활히 배출되지 못하면 황달, 간경변 등 여러 가지 위험 요인이 많다는 건 둘째 치고, 이 스텐트로 인한 염증 때문에 열과 오한에 시달리는 게 고역이다. 응급상황이 오거나 별 탈 없더라도 일 년 정도 주기로 스텐트를 교체한다. 몸 안에 이물질이 들어있는 이상 염증에서 자유롭지 않다. 스텐트를 빼면 좋겠지만 담도 폐쇄의 가능성이 커서 그건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며칠 전부터 남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열이었지만,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는 몸살감기 기운이라는 말에 둘 다 낌새를 챘다. 또 올 게 왔구나. 해열제와 소염제를 챙겨 먹는 남편을 보고 난 다시 아들 방에 들어와 아들 책상에 임시로 얹어 둔 노트북 앞에 앉았다. 불행히도 난 지금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방을 뺏겨 불평불만이 가득한 아들이 체념한 듯 이름 붙인 구 아들 방, 현 ‘코로나 방’에 자체 격리 중이다.     



나도 오롯이 환자이고 싶었을 뿐


그렇다. 난 아픔조차 쉽게 허락받지 못하는 보호자다. 남편의 간암 진단 직후 부여받은 ‘보호자’라는 역할은 간기증자였던 시절에도 떨칠 수 없었다. 수술 후 미처 회복이 되기 전, 나 역시 환자라고 불릴만한 시기에도 여전히 내 역할은 보호자가 우선순위였다.

  

애초에 간기증 수술을 할 때부터 오롯이 환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애매한 정체성은 겪은 바 있다. 하다못해 보험 혜택에서 소외받는 순간에도 그랬다. 이유는 간단하다. 질병도, 사고도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인 듯 환자 아닌 환자 같은, 기증자가 겪는 헷갈리는 정체성은 무려 세 번째 코로나에 공격당한 지금도 여전하다.



내가 먼저였다. 그리고 3일 후 남편의 열이 시작됐다. 내가 혼자 아픈 건 두고 볼 수 없다는 듯이.


물론 꼭 남편이 아니더라도 난 챙겨야 할 두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아플 수만은 없는 엄마다. 하지만, 무너진 몸과 함께 정신력도 사그라든 건지 내가 잠시 쉴 수 있는 순간도 봐주지 않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서글프다. 피해망상에 시달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제멋대로 삐걱대는 몸에 휘둘리고 있자면, 모든 게 원망스럽다.




잘 알고 있다. 이런 못난 마음은 바닥 나 버린 자존감 대신에 채워진 열등감 때문이라는 걸.

그리고 그 열등감에 불쏘시개가 되어준 '그 일'로 내가 잔뜩 날이 서 있다는 걸.



다시 임작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쉬 털어버리지 못하고 머릿속에 단단히 동여매고 있는 '그 일'은 사실 별일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는 중이다)


'OO제작사에서 OOO 프로그램 땄다는 데 네가 딱일 듯싶어'


방송작가 선배 S에게 온 카톡을 보자마자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애청자를 넘어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선배의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제작사인데 이번에 새롭게 해당 프로를 맡게 되면서 고맙게도 나를 추천해 주겠단다. 물론 워낙 하고 싶어 하는 작가가 많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나에게 기회가 오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다.


방송에 손을 놓은 지 벌써 5년이다.


2017년 남편이 암 선고를 받으면서 잠깐의 휴식은 기약 없는 휴직이 됐고 2018년 재발, 2019년 재발 그리고 2019년 간이식 수술과 함께 기나긴 공백기는 지금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난 감을 잃고 자신감도 잃은 전직 방송작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시 할 수 있을 거라 용기를 주는 동료들이 있고, S선배도 그중 한 명이다. 사실 얼마 전에도 같은 제작사의 다른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고, 이력서를 건넸다. 그리고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 기대했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공백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일을 놓아야 한다는 건 부정하고 싶다. 사실 '공백'이 내겐 '공백'이 아니었음을.


일을 쉬기 전까지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프로그램들을 해왔다. 나름 이력에는 자신 있었고, 파리목숨 같은 방송작가계지만 자리를 얻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 '일잘러'로 인정받으며 거절당한 적은 없다. 그래서 그간 몇 번의 '읽씹'을 받아들이는 건 매몰차게 뺨을 한 대 맞는 것보다도 어렵다. 내겐.


엄마 말고 아내 말고 보호자 말고, 나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시간은 말라비틀어진 자존감을 허공에 흩뿌려 놓았다.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은 돈을 벌고 싶은, 아니 돈을 벌어야 하는 때가 왔음을 인정하자 부풀어 오른 걸 지도 모르겠다. 일을 놓았던 당시 내가 받은 원고료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열정페이로 버틴 막내작가를 지나 돈 쓸 시간도 없이 일하던 서브작가를 거쳐 그나마 원고료 다운 원고료를 받을 수 있었던 메인 작가였다. 이제야 돈이란 걸 제대로 받는구나, 싶은 시기였는데 대책도 없이 댕강 끊어졌다. 더군다나 남편마저 수년을 쉬어야 했기에 우리 집 경제 사정은 기약 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의 몸집은 커졌고 돈 들어갈 일도 막대해졌다.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일만 남았다.



“시댁에서 엄청 잘해주겠네”

“맞벌이하다 남편도 일 못하고 너도 못하는데 생활비는 주셔야지”


남편에게 간 기증을 한 후 만난 이들은 우리의 안부만큼이나 시댁에서 내가 받았을 대가를 궁금해했다. 마치 최고의 협상가로 빙의된 듯 그들의 입은 구체적인 액수나 다양한 현물을 내 ‘몸값’으로 불러댔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간 기증을 결심했을 때에도, 수술을 하고 나서도 추호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지만 당장 내 삶이 고달프니 서운함을 넘어 피해의식으로 바뀌어갔다. 헛된 기대를 품었다 뻔한 실망이 반복되며 영혼을 갉아먹는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그렇게 순수했던 내 희생을 스스로 더럽혔다.



그러다 진짜 날 잡아 흔든 건 어차피 내 것이 아닌 돈 따위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정작 들어야 할 사람에게 듣지 못한 따뜻한 위로의 부재였다. 인정받아야 할 사람에게 무시당한 데서 온 상실감이었다. 진심이 묻어나는 말과 정성이 배어있는 배려면 됐다. 당신 아들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며느리가 아닌, 꺼져가는 삶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도 꺼질 수 있음을 감당했던, 그 후유증에 여전히 지쳐있는 한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였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소한의 도리 말이다.


응당 받았어야 할 감사의 결핍은 소모품으로 취급당하는 듯한, 하찮은 인간이 된 듯 한 모멸감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성공적인 수술을 축하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응원하는 이들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어야했다

난 겉과 속이 다른채 위태로운 시간을 겨우겨우 꾸역꾸역 견뎌내고 있었다.


기사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간기증자=자살'로 보였던 거 같다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우리가 수술을 받기 전이지만, 연구진 명단에 남편과 나의 집도의 그리고 주치의 교수님들의 이름이 있어 반가웠다



그래서 더, 그 누구도 아닌 내 이야기로 다가왔다




 마지막 문장의 잔상이 길었다





잡으려고 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알을 까는 바퀴벌레처럼 우울은 또 다른 우울을,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으며 나약한 인간이 되어가던 즈음 이 기사를 처음 마주했다. 충격을 넘어 공포 그 자체였다. 마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자살충동까지는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도 괴로웠음을 자신할 수 있어서다. 그리고 이내 안도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사정은 다르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그들 모두 '상실감'에 괴로웠을 것이다.


오래도록 곱씹고 내내 떠올렸다. 그리고 딛고 일어서야 함을 깨달았다. 이대로 날 방치했다가는 나 역시 간기증자 사망원인 1위를 굳히기하는 결과를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주변의 누구도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원래 그랬다.


남편은 평생을 수시로 아플 수밖에 없고, 나 역시 메인작가로 수많은 이력서를 받았을 때 누구에게도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는 연락을 취한 적 없다. 아버님 역시 처음 만난 순간, 아니 내가 모르던 때부터 본인의 감정과 본인의 삶에만 충실한 분이다.


결국 나만 달라졌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일을 하면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달라진 건 고장난 몸과 망가진 정신을 장착한 나 뿐이다. 난 그걸 인정할 수 없었던 거다.


나를 바로 세워야 한다. 하고 싶은 일도 의욕도 넘쳐나던 예전의 나로 말이다. 바닥으로 나뒹굴었던 자존감이 다시 싹이 트듯 움찔거렸다.  


고통스럽게 스스로를 갉아먹었으니 이제 보듬어줘야 한다. 날 위로해 줄 사람은 결국 나 자신, 단 한 명 밖에 없다.


남편을 살렸으니, 이제 나를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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