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도 딸 정치인 엄마를 다시 생각한다
마흔 일곱 일흔일곱
딱 삼십년. 그 세월의 간격만큼이다.
너무 다른 서로이지만
여성으로 분투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화해하게 되기까지 힘 빼기가 걸린 시간
혹은 서로의 잘못이 아닌
다른 어떤 이유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걸린 시간.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님에도
서로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시간
그 소중한 시간들 안에 쏘아 올린
허공을 향한 분노. 회한. 절망. 낙심. 배신감 등
우리는 모두 속았던 거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안에는 이미
갈등이라는 삶의 방식을 내포하고 있음을
진작에 알았어야 했는데.
그 싸움을 일으키는 당사자는 서로가 아닌
여성에게 요구하는 정형화된
여성성 내지는 모성이라는
관념들이었을 뿐이었는데.
자기 일을 가진 엄마는
딸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똑같이
그 딸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아버지보다
더 큰 비난이 예고되어 있던 현실
그것이 우리를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걸린 지난한 세월 삼십 년.
우리의 나이만큼의 간격이다
따라가기만도 숨 가쁜
삶의 속도에 지친 부모는
위로마저 말라버린 세상 속에
자녀들의 성장과정 속 원망과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때로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서는
성질 급한 수용성 제로의 어미로
혹은 이기적인 자기 성취 지향의 어미로
비난을 견뎌야 했다
딸은 그 어미를 미워하고 밀어내느라
그 세월의 에너지를 낭비하였고
그 어미 또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딸을 포기하며 살았던 숱한 세월.
이제 이 싸움을 거둬야 할 때.
여성들을 갈등케 하는 이 고단한 삶의 환경을
이제는 거두고
서로를 위로해야 할 때,
'힘들었지:'
한마디를 건네야 할 때,
주저하지 말자
바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