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한나 Oct 05. 2020

여성학이 밥 먹여 주냐는 엄마에게

you are a lifesaver. 덕분에 살았어요.

언제 이 나이가 되었을까.

내 나이를 확인할 때마다 새삼스럽다.

엄마들은 다 원래 그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정작

중년이라는 언덕길을 오를 때에야 깨달았다.

엄마들 모두 놀란 가슴 가까스로 다독이며

이 길을 걸었구나.

맞지 않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차마 말 한마디 못하고

그 길을 힘겹게 올랐구나.


아직도 다 풀지 못한 응어리가 남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부하던 일상이 자연스러웠던 내게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아니 더 이상 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변호사 시험 오탈자라는 특수 신분이 되었을 때  

그야말로 당황스러웠다.

더 이상 시간 압박을 받아가며

공부와 가사와 육아를 병행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말처럼 전혀 편안하지 않았다.

마치 존재 의미가 사라진 사람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그 느낌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러다

뒤로 미뤄둔 여성학 공부를 시작했다.

10여 년 전에도 여성학 과정에 합격했지만

어린 딸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서울 부산을 오가며 공부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서는 언제나

여성으로 살면서 맞닥

불합리하지만 말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

체증에 걸린 것 같은 그 무엇을

알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이해하고 싶었다.


여성학 공부를 시작하고

다시 학교를 나간다고 하자

함께 살던 엄마가 대뜸 하시는 말씀,

"여성학이 밥 먹여 주냐?"

순간,

45년어치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네, 밥보다 더 배부를 것 같습니다!

평생 일한 엄마의 부재를 매우느라,

어린 시절부터 감당해야 했던 집안일이며

아버지 간병이며

왜 내가 엄마 일을 대신해야 했는지

알아야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늘 자신의 일에 집중하던 엄마를 미워하기만 하던

십 대로 살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 말이 감사했다고나 할까.

순간 내 마음에 불이 일었다.

엄마의 그 말에

나는 더욱 당당하게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이제, 내 마음에도 밥을 좀 먹여야 하겠습니다 엄마.'


여성들의 일 가정 양립의 문제는 내 경우처럼

결코 한 개인의 몫이나 책임으로

떠넘겨져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즉, 일하는 엄마가 독해서

딸에게 가사노동을 하게 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파레냐스의 '세계화의 하인들'이라는 책에서 지적하듯

가사노동의 계급화는

여성들 사이에서도 경제적인 차이를 원인으로

국제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자본의 문제, 가사노동의 가치 평가절하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이탈리아의 전문직 여성들의 가사노동의 빈자리를

필리핀 이주여성들이 맡고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가사노동을

여성의 영역으로 두는 것에서

문제의 원인이 시작됨을 엿볼 수 있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의 속옷 빨래를 하고

오빠 친구들이 왔을 때 음료를 내주자

 ' 저 애는 너네 집 일하는 애니?'라던 말을 들어야 했던

어린 나의 기억이 편하지 않은 것은

정작 일하는 여성으로

여성의 권익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은 엄마 역시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하던 시대를

통과한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어린 딸이 자신의 집안일을 대신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셨고

때로 착한 딸이라며 설거지를 너무 잘한다며

지인들에게 자랑하셨지만

정작 그 딸은 그 순간 접시를 내던지고 싶을 만큼

그 일이 하기 싫었다는 거다.

딸이라서 그 말조차 할 수 없었기에

엄마 역시 그 마음을 몰랐을 테고.

그리고 장성한 이후에도

집안의 허드렛일은

자아성취와  원대한 목표를 향해

밤낮으로 달리는 가족들을 위해

 딸의 몫으로 돌아갔다.

왜냐면 그들이 하는 대단히 유의미한 노동을 위해

딸의 무급 가사노동은 필요 불가결했으니.


여성학이 밥 먹여 주냐는 엄마 덕분에

나의 야성이 오래간만에 되살아났다.

우리의 오래된 갈등의 골이

우리 둘의 다른 성격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지조차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에

기인했음을 확인하는 공부를 하게 되니

숨통이 트였다.

일하느라 지쳐 늘 집에서는 화를 내던

엄마  나이를 이제 내가 산다.

그런 우리 엄마와 같은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엄마 말대로 애 뒷바라지나 하고 집에 있지 않고

여성학 공부하러 오늘도

손목 관절 마디마디가 아픈 중년의 몸을 재촉한다.

엄마는 이해받지 못하는 그 삶을 거칠게도 살았지만

그러나 정작

그렇게 화내며 살지 않아도 되었을  시간들이었는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밥 먹여줄지 않을지 알 수 없는

여성학 공부를 한다.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아니라

모성이라는 이름과 여성이라는 존재에게 요구하는

사회적인 압박과 편견을 날카롭게 분별하고

제도적으로 이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아직도 고민한다.

딸들이 행복한 세상이라는 엄마의 외침 뒤에서

외로웠던 나 같은 딸들이 없기를 바라며

밥과 상관없을지 모를 여성학을 오늘 다시 붙든다.









이전 08화 필모그래피의 첫 줄을 적어 넣은 딸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