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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나 May 08. 2021

'아버지'라는 자리를 지켜낸다는 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8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 중

결코 잊혀지지 않는 장면  하나.

비가 갑자기 억수처럼 쏟아지던 어느 저녁

퇴근 후 귀가하신 아버지는

비를 그냥 뒤집어썼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흠뻑 젖은 채 문 앞에 서 계셨다.

"전화를 하시지 그러셨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불쑥 말이 튀어나온 나에게

아버지께서 이내

"두루마리 휴지가 집에 없는 것 같고 해서

 필요한 장을 봐 온다고 마트에서 물건을 사서

나서는데 비가 갑자기 온다아이가.

양 손에 짐이 가득한데 우짜겠노?

그냥 비 맞고라도 짐은 들고 와야지"

순간,

'아버지'라는 이름 안의 삶의 무게가

내 마음을 서글프게 뚫고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뭐라고,

비를 쫄딱 맞고서라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별 거 아것들의 부재로

행여 가족들의 불편함이 거칠까 싶어

그 안쓰럽고 짠한 아비의 심정으로

비가 퍼붓던 그 저녁

아버지는 한 손에는 두루마리 휴지 뭉치와

또 다른 한 손에는

과일 등의 식료품이 담긴 종량제 봉투를  들고

우산을 쓸 수 없이 그 큰 비 속을

터벅터벅 걸어오신 거였다.

내게 아버지의 부성애가

가장 구체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모습이다.


다음 장면은 그 이후 몇 년이 흘러

1인실 병실에 누워 계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항암제 투여  후유증으로

극심한 빈혈이 온 아버지에게 수혈 처방이 내려졌다.

수혈 중 저체온증이 오신 아버지가 춥다 하셔서

따뜻하게 해 드릴 수 있는 이불과 덮을 것은 총동원하여

아버지의 체온이 조금이라도 오를까 덮어드리고

그 덮인 이불을 부여잡고 있던 내게

한기로 인해 덜덜 떨고 계시던 아버지의 외로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해드릴 것 없던 자식과의

보이지 않는 그 거리가

얼마나 사무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삶은

일평생 가족을 위해 골수까지 내 줄 정도의 수고함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그 추운 병실의 덜덜 떨고 계셨던 아버지처럼

결국 고통 또한 홀로 지고 계셔야 하는 삶이셨다.


남편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은 또 달리 애잔하다

매달 말일 직원들 월급이다 뭐다 돈 맞출 일에

마음이 조여 환장할 노릇인데

눈치 없는 아내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딸아이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며

같이 밥  먹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은 가져야 한다는

우아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건넨다.

(아이고 두야! 두야!)

그 마음속 기가 차다는 소리가 비집고 나와

내 귀에도 들릴 지경이다.


친정 오빠는 또 어떤가?

서울에  있는 새언니와 딸을 보러

2주 3주마다 KTX에 몸을 싣는다.

코로나 이후 학생들을 위해

동영상으로 수업내용을 촬영하는 일이라는

수고가 더해진 근로현장에서 지친 몸을

쉴 겨를도 없이 그 피곤한 몸을 쳐서

직장이 있는 부산에서

가족들이 있는 서울로 가는 KTX에 오른다.

그 차 안에서 피곤함에 입을 벌리고 졸고 있을

오빠의 얼굴을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가족의 울타리라는 소중함을 지켜내기 위해

내가 아는 내 주위의 남성들의 인생은

달픔 그 자체다.

물론, 그 자리를 기뻐하며 지켜내는 것 같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책임감 앞에

너무 자주 불평의 말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이해가 되는 것은 왜일까?


아버지라는 자리의 무게를 감당한다는 것은

누구나 해낼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모성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아버지를 향한 우리의 기대치는 항상

그러나

그들이라고

얼마나 강건하여 그 삶을 버티고 있을까?

아버지라는 이름에 자신을 맞춰보려고

닿지도 않는 높이의 물건을 꺼내기 위해

연신 펄쩍펄쩍 뛰어야 하는 아이처럼

이 남성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숨이 찰까?

껍데기같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내가 자식들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산다던

나의 아버지 생각하면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비신앙인으로 사셨지만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는 성경 말씀 언제나 떠오른다


어버이날,

천국 가신지 8년 세월

한시도 잊은 적 없는

비 오던 그 날의  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마구 그리워


천국 가면  수 있으리라는

그 소망으로 삽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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